윤금숙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0
전체:
16,423

이달의 작가

올 때마다 이민가방

2007.02.12 11:45

윤금숙 조회 수:915 추천:87

올 때마다 이민가방
                                                        
  
  이주 동안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잠이 깨니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돌았다. 이번에 어머니와 헤어지면 몇 번이나 더 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잠을 설쳤나 보다.
  몸살을 눈치 챈 어머니는 빈속인데도 판콜 하나를 기어코 먹인다. 밤에 내복 입고 자지 않아서 감기 들었다며 아침부터 성화시다. 어머니 앞에서 나는 재채기도 마음대로 못한다. 팔십이 넘은 어머니는 아직도 나에게 양말 신어라, 속옷 든든히 입어라, 참견을 해 가끔은 너무 짜증이 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 내몸 내가 알아서 하게 내벼려 둬 좀.” 하고 화를 내버리고 만다. 어머니는 섭섭해서 토라져 버리시고 나는 또 내 인내심 없음을 후회하게 된다. 어머니를 뵈러 왔기 때문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어머니의 뜻대로 해드려야겠다는 내 다짐과는 달리 일이 번번이 틀어지고 만다.
  갑자기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내 아이들 생각이 났다. 나는 자식들에게 내 의견이나 내 뜻을 강하게 밀어부치지를 못한다. 그래도 자식들은 엄마가 자기네들의 인생을 콘트럴하려고 한다며 말문을 막아버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아이들은 두 번 말하면 열 번 말했다고 하는 바람에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고도 더 먹으라는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게 된다.
  자식이 삼십을 넘으면 앞에서 이끌려 하지 말고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그들 스스로가 판단하게 믿고 맡겨야 된다는 것도 잘 알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만일, 나의 어머니가 했듯이 내 자식들한테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매일 불화가 났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범하더라도 그들의 뜻을 존경하고 믿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한국을 나가봐도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데, 한국적인 관습에서 자란 일 세들과 미국에서 자라고 있는 이 세들과의 문화적인 격차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이주 동안 어머니와 지내려던 계획은 무너지고 틈만 있으면 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날도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왔더니, 어머니는 하루종일 쪽파, 꼬들배기를 혼자 다듬다 피곤했는지 그 자리에 엎드린 채 주무시고 계셨다. 앙상한 어깨에 조각이불을 덮어 드리고 나니, 자식을 일곱이나 두었어도 말년을 혼자 외롭게 지내고 계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떠나오기 전날,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이민가방은 예외없이 등장한다. 책크무늬 이민가방은 지퍼로 싸이즈를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고 무엇이던지 쑤셔 넣는데로 들어가 편리하기는 하다. 어머니는 가방 손잡이에 빨간색, 노란색 헝겁으로 묶어놓아 눈에 띄게 해놓는다. 복잡한 책크 무늬에 울긋불긋한 끄나풀이 산발한 무당 머리채 같다.  
  LA에 있는 한국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해도 어머니는 토종과 맛이 다르다며 고집을 부리신다. 고추를 하나하나 마른행주로 닦아 방앗간에 가서 빻은 고추가루, 손수 담그신 노란 햇된장을 비닐백에 넣은 다음 프라스틱통에 담아 가장자리를 테잎으로 칭칭 감는다.
  “나보다 짐 더 잘 싸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하시며 신바람나게 싸시니 아무도 말릴 수가 없다. 자식들에게 줄 짐을 쌀 때가 어머니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밤에 끙끙 앓느라고 잠을 못 주무시기 때문이다.
  제발 다음부터는 그만하시라고 자식들이 성화를 해도 어머니는 “죽을 때는 짐 안 싸고 빈손으로 갈 테니 걱정 마라” 고 엄포를 놓아 우리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결국은 어머니 소원대로 싼 이민가방을 싣고 공항엘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너 사루마다 입었냐?” 하고 느닷없이 묻는 것이 아닌가. 앞에 앉은 기사와 남동생이 동시에 뒤를 홱 돌아보았다. 나는 얼떨결에 여권이랑 비행기표가 들어 있는 핸드백으로 손이 먼저 갔다.
  그 전날 어머니는 싫다는 나에게 비행기 값을 부득부득 주셨다. 어머니는 속옷에 헝겁을 대어 호주머니를 만든 다음 그 돈을 안에 넣고 주둥이를 꿰매버렸다. 자식이 많다보니 이 일은 둘만의 비밀이라고 신신당부 해놓고 나중에 알고 보면 다른 형제들한테도 다 똑같이 하셨다.
  비행기 안에 자리를 찾아 앉으니 다시 열이 나고 몸이 쑤셨다. 핸드백을 열었더니, 판콜, 훼스탈, 청심환까지 몰래 들어와 있었다. 생전 먹지 않던 감기약 판콜을 또 마시니 정신이 어릿해지며 감겨오는 눈에 어머니가 떠오른다. 무릎이 아파 절뚝거리며 아무도 없는 텅빈 집을 향해 걸어 가는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내 집이라고 LA에 돌아왔다. 촌스러운 이민가방 안에는 어머니의 손끝 맛으로 간을 맞춘 음식이 가득 들어 있었다. 여독에 비실비실 하다가도 쌉스릅한 꼬들배기 김치에 입맛이 돌아오고, 손수 만든 유자차를 끓여 어머니와의 추억을 몇 방울 똑 떨구어 마시고 나면 기운이 절로 났다. 씹을수록 찰지고 쫀득쫀득한 쑥떡을 오래오래 입 안에서 음미하며 어머니 생각을 하니, 갑자기 옆에서 “꼭꼭 씹어 먹어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싸주신 촌스런 이민가방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머니가 평생 살아온 뜻이 그 가방에서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었다. 결코 나를 위한 삶이 아닌 가족과 이웃을 위한 삶. 이 가방에도 이웃들에게 어머니의 정성을 맛보게 할 넉넉한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피곤해 있던 몸은 어느새 날아갈듯 가벼워지고 시차로 흐릿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며 초대할 이웃들의 환한 모습이 떠올랐다. 가져오느라 힘들었던 이민가방은 힘든 만큼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과연 어떤 종류의 이민가방을 내 자식에게 싸줄 것인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 백양사 가는 길 윤금숙 2007.03.04 1089
35 보라빛 희숙이 윤금숙 2007.10.22 1045
34 민수의 편지 윤금숙 2007.10.22 1042
33 녹색 우편함 윤금숙 2007.03.04 929
» 올 때마다 이민가방 윤금숙 2007.02.12 915
31 잿빛 노을 윤금숙 2007.10.16 906
30 제비꽃 어머니 윤금숙 2010.04.06 876
29 상처 (2006년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 단편소설 당선작) 윤금숙 2007.07.09 872
28 둥지 윤금숙 2007.01.23 850
27 다도해로 떠난 삼촌 윤금숙 2007.02.06 847
26 그 숲속의 둥지 윤금숙 2007.01.22 805
25 꽃배 나무 윤금숙 2007.01.23 778
24 별을 접는 아이들 윤금숙 2007.02.04 736
23 2000년의 봄 윤금숙 2007.11.10 730
22 종이별 윤금숙 2008.10.16 698
21 노인네라니 윤금숙 2007.02.06 692
20 기다림이 있는 둥지 윤금숙 2007.02.18 686
19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 윤금숙 2011.12.28 676
18 시어머니의 마음 윤금숙 2007.01.31 669
17 그래도 행복하네요 윤금숙 2009.08.18 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