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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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상처


  “한국어 통역. 익스텐션 3234.”
  병원 안을 쩡쩡 울리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의사진들의 아침 회진이 막 끝난 시간이었다.
어제 입원한 마약 아기의 처방이 내려져 나는 아기의 발에서 피를 뽑고 있었다. 이 아기는 엄마가 복용한 마약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마약에 중독이 됐다. 나는 일을 끝내고 빨리 통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했다. 그 때 수 간호사인 신디가 나를 불렀다.
  “마이영, 전화!”
  내 이름인 ‘신명자’의 ‘명’자 발음이 잘 안 되는 미국인들은 나를 ‘마이영(myung)’이라고 불렀다. 부모가 지어준 내 이름이 졸지에 국적불명으로 둔갑을 해버린 것이다.
  “여기는 정신과 응급실인데 한국어 통역이 필요하니 도와줬으면 합니다.”
  “정신과 응급실이라고요! 몇 호죠?”
  “이 층 201 호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급한 일만 끝내고 곧 가겠습니다.”
  나는 신디한테 내 대신 할 일을 맡겨놓고 이 층 응급실로 내려갔다. 정신과라니 겁이 덜컹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겼다. 경비가 철저하게 되어있는 세 개의 문을 통과해서 간호실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나를 젊은 여의사에게 안내했다. 이름표에 닥터 챈(chen)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중국 사람 같았다. 가냘픈 몸매의 그녀는 쌍꺼풀 없는 눈이 쌜쭉하게 옆으로 길게 찢어져 이지적으로 보였다. 정신과 의사라기보다는 소아과 의사가 더 적격일 것 같았다.
  여의사는 내게 반가움을 나타내며 앞장 서서 걸어갔다. 챠트를 가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의외로 당찼다. 정신과 응급실로 들어서니 한 환자가 수갑에 채워져 경찰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병실에는 몸이 침대에 꽁꽁 묶여 있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멀뚱멀뚱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젊은 여자도 있었다. 침대에 걸터 앉아 있던 백인 청년이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빤히 쳐다보며 희죽희죽 웃었다. 긴장이 되었다. 혹시 발이라도 걸어 넘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나는 여의사의 뒤를 바짝 붙어 따라갔다.
  간호학교 때, 실습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신과병동을 지나는데 한 환자가 갑자기 뒤로 묶은 내 머리채를 잡아챘다. 나는 벌렁 나가 떨어졌다. 환자는 손벽을 치며 병동이 떠나가게 웃어제겼다. 넘어져 아픈 것보다 그 웃음이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그 때 앞서가던 인턴이 달려와 내 손을 잡아 일으켜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영 일어나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온 몸이 날카로운 웃음 소리에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까. 직원 서너 명이 순식간에 달려와 그 환자를 결박하다시피 해서 끌고 갔었다.  
  그 때의 일이 자꾸 생각나서 수시로 주위를 살폈다. 여의사와 나는 간이 침대 사이를 지나서 맨끝에 있는 소파로 갔다. 그 곳에는 얇은 시트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마치 이불 보따리 같았다. 누리끼리한 시트 자락 끝으로 민둥 머리가 언뜻 보였다.  
  “미스터 킴, 미스터 킴!”
  여의사는 챠트를 들쳐보더니 환자를 정중하게 불렀다. 환자는 시트를 아래로 내리고 기지개를 키며 귀
찮아 죽겠다는 듯 실눈을 뜨고 우리를 쳐다봤다. 환자의 팔을 보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순간적으로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양 팔에는 칼로 그은 상처가 여러군데 있었다. 일 인치 길이의 상처들은 칼로 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국이 울긋불긋했다. 상처는 벌겋게 성이 나 마치 지렁이가 꿈틀대고 있는 것 같았다.  
  여의사는 전혀 흔들림 없이 환자에게 물었다. 그리고는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향해 통역을 재촉했다.
  “이름이 뭐죠?”
  나는 그의 눈을 피해 내 발등에 고개를 떨구고 의사의 말을 전달했다.
  “김동수.”
  그 순간 그의 눈과 마주쳤다. 커져 있는 동공은 촛점을 잃어 흐릿했고, 흰자위는 붉으스름했다. 텅 비어있는 허전한 그 눈에는 눈물이 그렁대 곧 쏟아질 것 같았다.
  여의사는 똑 부러지게 질문을 했다.
  “팔에 있는 상처가 어떻게 된 겁니까? 누가 상처를 냈습니까?”
  그는 눈을 치껴 떠 의사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촛점은 여전히 풀려있었다.
  “내가요.”
  ‘마치 내 몸 내가 그었는데 무슨 상관입니까’하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자기 몸을 왜 칼로 그었죠?”
  여의사도 김동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여의사의 시선을 피하며 팔만 내려다봤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당신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마약을 했습니까?”
  “예, 했죠.”
  그의 태도는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당당했다.
  “그렇게 칼로 살을 긋다가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혹시 자살하려고 그런 것은 아닙니까?”
  그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도리질을 했다.
  “나는 내 몸을 가장 사랑합니다.”
  뚱딴지 같은 대답에 여의사와 나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어디에서 누구와 마약을 했습니까?”
  “모텔에서요. 친구들과 포르노를 봤죠. 그런데 포르노 안에 이혼한 마누라하고 형이 같이 나오잖아요. 정말이에요. 진짜라구요!”
  거짓말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치뜨며 믿어달라고 애원을 했다.
  “언제 이혼을 했습니까?”
  “의사 선생님! 제발 나를 빨리 이곳에서 내보내 주세요. 돈을 벌어서 내 아들과 딸을 그 여자한테서 데려와야 한단 말예요.”
  그는 고개를 숙이더니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어깨를 감싸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의 어깨가 무척이도 외로워 보였다. 잠시 내 직무를 혼돈할 뻔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마약을 했습니까?”
  “얼마 안 돼요.”
  그는 마치 ‘아침에 밥 먹었어요’하듯 쉽게 말했다.
  “입원한 적이 있습니까?”
  “얘, 우리 어머니가 장암 걸렸을 때, 한 달 동안 있었어요.”
  “아버지는 살아 계십니까?”
  “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 때 죽었어요. 어머니는 도망 갔고요. 그래서 나는 큰 엄마한테 형이랑 갔어요.”
  말이 횡설수설해서 앞 뒤가 맞질 않았다.
  “형은 어디 삽니까?”
  “형요? 웃기지 말라고 해요. 지가 돈도 없으면서 내가 약만 끊으면 뭐든지 다 해준대요. 웃겼어, 쥐뿔도 없는 주제에. 아이들을 못 본 지가 넉 달이나 됐어요.”
  그는 아이들 얘기를 할 때만 진지했다. 그 외는 사람의 시선을 피하며 아무렇게나 말을 했다.
  “아주머니! 의사한테 말 좀 해주세요. 귀찮게 찝쩍대지 말고 시간을 넉넉하게 주면요 인간적으로 얘기 다 할 수 있다고요. 그렇게 통역했어요?”
  그는 갑자기 목에 핏대를 올리며 덤빌 듯이 나에게 말했다.
  “병실이 정해진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죠.”
  여의사는 응급실을 나오면서 나에게 물었다.
  “저 환자 얘기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좀 있네요. 그 환자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군요.”
  “감사합니다.”
  의사는 예의 바르게 내게 인사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지 몹씨 궁금했다. 그 이유를 안다면 그를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도에 있는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텅 비어있는 엘리베이터 안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힘이 빠져 눈을 감은 채 몸을 벽에 기댔다. 엘레베이터가 위로 올라가는 데도 몸은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마침 신디가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마이영! 웬일이야, 괜찮아?”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오네요.”
  나는 무안해서 얼른 대답을 했다. 순간 다시 현기증이 일더니 속이 메스꺼워졌다.
  “힘든 환자였던 모양이지? 꽤 오래 걸린 걸 보니...”
  병실로 들어오자 그녀는 타이레놀 두 알을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 선애를 불렀다. 선애는 간호학교 때부터 나와 친구로 십여 년 동안 같은 병실에서 일하고 있다.  
  “얘! 아침까지 멀쩡하던 얼굴이 왜 그래! 진짜, 못 볼 것을 본 모양이네. 통역이라면 혼자 도맡아 하더니, 이제 제발 좀 그만 가라. 너 아니라도 갈 사람 얼마든지 있다구. 괜히 통역해주다가 너만 멍든다.  하여튼 너도 못 말리는 애야, 못 말려.”
  시원시원한 성격의 선애는 내 얼굴을 보더니 쯧쯧 혀를 찼다.
  “어떤 환자였는데? 도대체 여자야 남자야?”
  “서른 중반쯤된 남잔데 이혼을 했다나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 마약 중독자인데, 자기 팔을 여기저기 칼로 베었잖아, 너무 불쌍해.”
  “얘좀 봐! 왜 그런 인간이 불쌍하니? 넌 뭘 몰라. 오늘 아침 한국 뉴스 못 들었어? 대학 다니는 형제가 교통 사고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대, 사고를 낸 사람이 알콜 중독에 마약까지 한 인간이었다잖니. 자식 둘을 한꺼번에 잃은 부모가 불쌍한 거야!”
  “어마! 어떡해. 정말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네. 오늘 아침 마약 아기를 맡을 때부터 심란하더니 듣는  얘기마다 가슴 아픈 소리야.”
  몇 분 전까지도 가슴이 메어지는 것처럼 아팠는데 선애의 말을 듣고보니 금세 김동수라는 환자가 미워졌다. 미움과 애처로움이 범벅이 되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 전화를 했다. 마침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쟈니! 학교 잘 갔다왔어? 엄마는 네 생각만 하면 행복하다, 무슨 뜻인지 알지?”
  “갑자기, 무슨 일이 있어요?”
  “글쎄, 정신과 응급실에 통역을 하러 갔더니 한국 남자가 마약 중독이 되어 거의 정신 착란까지 됐더라. 너무 불쌍하고 한편 밉기도 하고...”
  “엄마는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쟈니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쟈니는 지금 고등학교 삼 학년이다. 별탈 없이 잘 자란 것이 새삼스럽게 감사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김동수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 날, 또 다른 정신과 의사가 나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나는 소셜워커와 의사의 뒤를 따라 그가 있는 정신과 병실로 들어갔다. 그는 문쪽의 간이 침대에 시트를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미스터 킴! 미스터 킴!”
  오십 중반쯤 돼 보이는 점잖은 의사가 코에 걸린 안경을 치겨올리며 환자를 깍듯히 불렀다. 그의 벗은 두 발이 시트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그 발은 작았고 허연 버즘이 더께로 덮여있었다. 가마니로 둘둘 만 시체에 발만 삐죽 나와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서늘했다.
  “왜 칼로 팔을 베었습니까. 왜 그랬죠?”
  낮은 음성으로 타이르듯 말하는 의사의 질문에 김동수는 오른손으로 왼팔에 있는 상처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떨구었다.
  “있잖아요. 마약을 같이 한 친구들은 다 좋은 사람들인데, 벌을 주지 않는다면 말할게요. 옆 집 신학생도 있었어요.”
  김동수는 목소리를 낮추어 비밀을 알려주듯 조용조용 말했다.
  “팔에 상처를 낼 때 아프지 않았습니까?”
  의사는 다른 방향으로 질문을 했다.
  “저, 아주머니, 언제 이 병원에서 나가냐고 저 선생님한테 물어봐 줄래요? 이 병원에 들어올 때는 일 주일 안에 보내준다고 했거든요.”
  그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곳에서 나가면 어디로 갈 겁니까?”
  “물론 마약치료센터로 가야죠. 그곳에서 사흘 있다가 이 병원으로 왔어요.”
  “왜였죠? 그곳에서 칼로 다른 사람들을 위협했나요?”
  의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아니요! 내가 그냥 혼자 중얼대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나는 시를 외우고 있었죠. 그런데 거기서 경찰을 불러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여기 명함 있어요. 물어보세요.”
  그는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명함 조각을 꺼내 펼쳐보였다. 신문에 자주 나는 한인마약치료센터의 명함이었다.
  “거기서 삼 개월만 있으면 마약도 다 끊을 수 있대요. 빨리 그곳에 가서 그렇게 할 거예요.”
  지금까지 그의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고 있던 카운슬러가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놀란 얼굴로 카운슬러를 올려다봤다.  
  “어떤 종류의 마약을 했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마약 몰라요? 디. 알. 유. 지 ‘drug?그거예요.”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왜 이혼을 했습니까?”
  “직장에 다닐 때, 마약을 좀 했거든요. 근데 어느 날, 와이프가 외박을 하고 안 들어오는 거예요. 아주머니! 의사한테 말 좀 해주세요. 우리 관습은 여자가 나가서 외박을 한 번하면 끝나는 거라고요.”
  그는 말을 중단하고 침을 꿀걱 삼켰다. 그리고는 내가 통역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통역 잘 했어요? 잠 한숨 안 자고 밤을 홀랑 새웠어요. 다음 날 낮에 들어오길래 뺨을 한 대 때렸죠. 그리고는 끝났어요.”
  김동수는 썩 잘한 일을 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이들 말이 나오자 그는 다시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것처럼 말했다.
  “다른 아이들만 보면 내 귀에서 ‘아빠, 아빠’하는 소리가 들려요.”
  신기하다는 듯 말을 하더니 더 슬피 울었다.
  “정말로 귀에 들립니까? 아니면 들리는 것 같습니까?”
  의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날카롭게 물었다.
  “어떤 때는 바로 옆에서 들리기도 하고 가끔은 꿈 속에서 선명하게 들렸어요. 선생님! 젊은 놈이 이렇게 그냥 죽치고 있어야 되겠어요? 빨리 나가서 돈 벌어 내 딸과 아들을 만나고 싶다구요. 그 애들을 못 본 지가 벌써 넉 달이나 됐다니까요.”
  그는 계속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치료 센터에 들어가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푸라이어, 몰라요? 광고지 돌리는 거 말예요. 한 시간에 팔 불 받았어요.”
  “약을 처방해 줄 테니 복용하겠습니까?”
  “예.”
  김동수는 야단 맞은 학생같이 얌전하게 대답을 했다.
   “내일 또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그는 의사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아주머니, 감사한대요, 자주 와서 찝쩍대지만 말고요 시간을 넉넉하게 주면 처음부터 다 얘기할 용의가 있다고 꼭 전해주세요. 안녕히 가세요.”
  나에게 인사를 하는 눈의 촛점이 어제와 좀 달랐다. 병실을 나오면서 의사가 나에게 물었다.
  “그가 하는 말이 이치에 맞습니까?”
  “어떤 말은 제정신으로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상처’에 대해서 물을 때는 일부러 딴청을 부렸다.

  “주희를 네가 맡아 줬으면 좋겠다. 아니, 맡아 줘야겠다. 그래야만 둘이 다 사는 길인 것 같아서 결정했어. 정말 미안하다. 주희한테 드는 비용은 어떻게 해서든 내가 나중에 보내 줄께.”
  서울에 있는 언니한테서 밤 열 두시가 넘어 전화가 왔다. 아마 언니도 이런 부탁만은 하고 싶지가 않았는지 목소리가 착잡했다. 내가 안된다고 하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언니한테 못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시골에서 언니는 서울로 시집을 갔고 나는 언니 집에서 학교를 다녔으니까. 돌아가신 형부는 마음이 착해서 싫은 눈치 한번 보인 적이 없었고 등록금도 몇 번 대주었다.
  “너도 알다시피 몇 년 동안 형부 병원비로 알거지가 됐잖냐. 오빠 집에 붙어 있기도 올케 눈치가 보여 서 재혼을 결정한 거야. 미안해. 너는 혼자됐어도 직장이 튼튼해 쟈니 데리고 잘 살 수 있으니 네가 정말 부럽다. 너같이 간호사나 될 걸. 또 쟈니가 공부도 잘하고 착하다니 얼마나 좋으냐.”
  언니는 언제나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상대방의 말은 듣질 않았다. 미국에서 자식을 데리고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언니는 짐작이나 할까.
  ‘근데, 언니! 왜 남자는 자기 자식을 둘씩이나 데려오는데 여자는 내 자식을 떼놓고 시집을 가야 되는 거야.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언니의 긴 변명을 들어줄 만한 인내심이 내게는 없었다. 자식을 떼놓고 재혼을 해서 과연 얼마나 편안할 수 있을까. 그렇게해서 나는 주희를 떠맡았다.
  쟈니보다 한 살이 아래인 주희는 다행히도 붙임성이 좋아 오자마자 ‘오빠 오빠’하며 쟈니를 따랐다. 무뚝뚝한 쟈니도 혼자 외롭게 지내다가 여동생이 생겨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쟈니는 진학할 대학도 결정이 된 후라 주희를 도맡아 돌봐줬다. 내 일을 쟈니가 맡아주니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더군다나 친 오누이처럼 잘 지내 언니의 처사가 밉다가도 애들을 보면 마음이 풀리곤 했다. 지친 몸으로 퇴근해서 들어오면 주희는 저녁 준비를 해놓고 나를 기다렸다.  
  “주희야, 솔직히 말하면 네가 우리 집에 온다고 했을 때 이모는 많이 힘들었어. 엄마가 결혼한 지 몇 년만에 너를 낳아 금이야 옥이야 키운 걸 나는 알거던. 그래서 네가 혹시 버릇 없이 자란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더라. 그런데 생각보다 착하고 집안 일도 잘해서 엄마가 잘 키웠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 이모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이모! 나도 이모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미국에 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어요. 오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와서보니 다행히 이모도 너무 좋고 쟈니 오빠가 있어서 오길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더 들더라고요.”
  주희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특히 웃을 때는 쪽 고른 치아가 하얗게 드러나 퍽 매력적이었다. 거기다 늘씬한 키에 윤기 나는 까만 긴 머리를 풀어헤쳐 젊음의 향기를 맘껏 발산했다. 우리는 모녀지간처럼 정답게 하루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딸이 없어 아기자기한 재미를 모르고 살았던 나는 주희로 인해 새로운 재미를 맛보게 되었다. 집안 분위기도 전과 다르게 밝고 활기 찼다.
  “주희야! 엄마를 이해해야 돼? 엄마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안정이 되면 연락한다고 했어.”
  나는 주희의 표정을 살폈다. 주희의 얼굴색이 핼쓱해지더니 금세 쌀쌀하게 바뀌었다.
  “이모! 부탁이야. 앞으로 엄마 얘기는 하지 말아 주세요. 엄마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해도 안 볼 거예요.”
  생각보다 주희는 단호했다. 주희의 상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 명랑하고 밝게 보였던 주희의 마음에 큰 그늘이 있었다. 언니는 주희하고 의논도 없이 혼자 결정해버렸을 것이다. 주희의 양 면을 보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언제라도 주희의 상처가 덧나버릴 것만 같아 불안했다.
  어느 금요일 밤, 쟈니와 주희는 친구 생일 파티에 간다고 나가서 자정이 되도록 들어오질 않았다. 쟈니는 비사교적이라 친구가 많지 않았지만 주희가 온 뒤로 주말이면 자주 파티에 갔다. 처음엔 걱정이 되다가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언니한테서는 주희를 보낸 날, 한번 전화가 온 후로 몇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언니를 원망하다보니 귀엽던 주희까지 미워졌다.
  “쟈니야! 너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대학 합격해 놓았다고 멋대로 노는 거야? 술까지 마셨잖아!”
  나는 뒤따라들어온 주희를 무시한 체 쟈니만 나무랐다.
  “이모! 미안해요, 오빠 야단 치지 마세요. 내가 자꾸 가자고 졸랐어요.”
  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주희한테 나의 화살이 당겨졌다.
  “주희야, 지금 네가 놀러다닐 때니? 밤을 세워 영어 공부를 해도 따라갈 듯 말 듯 한데... 공부 열심히 해서 네 앞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살기 힘들어. 너, 그러려면 일찌감치 서울로 돌아가!”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야단을 맞던 쟈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꼿꼿하게 대들었다.
  “엄마!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주희한테 할 수 있어요. 빨리 사과하세요. 엄마는 이모보고 멋대로라고 하더니 엄마도 마찬가지예요.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 주희가 학교에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학교에서 왕따당하고 있는데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냐구요.”
  주희는 오빠! 오빠 하며 쟈니한테 매달렸고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솟아 펄펄 뛰었다. 평화롭던 집안이 금세 지옥이 돼버렸다. 착하고 문제가 없는 아이로 지금까지 잘 자랐는데 이게 웬 일인가 싶었다. 쟈니한테 나는 최고의 엄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쟈니 입에서는 더 심한 말이 나왔다.
  “그러니까 아빠도 엄마를 떠나버린 것 아녜요?”
  하나뿐인 아들을 버팀목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가슴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은 절망감이 몰려왔다. 쟈니가 저러는 것이 다 주희 때문인 것 같았다.
  다음 날, 직장엘 나가서도 머리가 무겁고 기운이 없었다. 선애가 내 침울한 기분을 눈치챘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너 무슨 안 좋은 일 있는 거 아냐, 아침부터 얼굴색이 별로다.”
  “요즘 쟈니가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마음 놓고 파티엘 다니잖아. 주희랑 같이 어울려 더 신이 난
모양이야. 괜히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들어.”  
  “얘, 그저 마약만 안 하면 돼.”
  “마약?”
  “그래, 마약, 뭘 그렇게 놀라니? 우리 마이클은 마약 때문에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몇 년째 초급대학
에서 헤매고 있는 거 몰랐어! 쟈니는 걱정할 것 없어. 그런데 아무래도 쟈니보다 주희한테 마음을 더 써야 될 것 같지 않니? 상처가 있는 애라 방황하지 않게 잘 다독거려. 큰일 나기 전에.”
  선애는 아들이 마약을 했었고 지금도 완전히 끊지를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자식이 마약을 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편할 수가 있을까. 마약도 아니고 술 좀 마신 걸 가지고 내가 너무 과민 반응을 보였나싶어 후회가 됐다. 언제나 선애하고 얘기를 하면 속이 시원했다.  
  
  “마이영! 정신과에서 한국어 통역이 필요하대요.”
  동료 간호사가 알려줬다. 김동수가 입원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이번에는 정신과 의사 두 명과 소셜워커와 함께 나는 병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김동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반가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의사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거의 한 달이 넘게 한국 음식을 못 먹었더니 미치겠어요. 아주머니! 빨리 나가게 좀 도와주세요. 여기서 주는 약도 열심히 먹었어요. 마약 생각도 안 나는데 의사들은 맨날 똑같은 질문만 계속해대니 이젠 대답하기도 귀찮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내가 보기에도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그의 행동이나 눈빛에서 나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 내일은 한국음식을 가져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가 당신한테 뭐라고 합니까?”
  의사가 사무적으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의사에게 전했다.
  “미스터 킴! 많이 좋아졌어요. 마약을 하고 안 하고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그는 의사의 눈을 피해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그리고 느닷없이 큰 소리로 말하며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저 보라색 꽃 좀 보세요?”
  생뚱맞은 소리에 모두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카란타가 큰 키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어느
새 유월이 되었나 싶게 자카란타는 보라색 꽃구름으로 하늘을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와이프가 저 꽃을 엄청 좋아했는데... 사실은 좋은 여자였어요. 형이 소개해 줬거든요. 형은 아
마 와이프가 어디 있는 지 알고 있을 거예요.”
  그는 금세 쏟아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쓱 문지르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는 그를 보고 있던 의사는 잠
시 흔들렸던 직무에서 채찍을 가하듯 냉정한 표정으로 질문을 계속했다.
  “아직도 자신의 몸을 왜 베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군요.”
  그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하품 끝에 말을 뱉어냈다.
  “저, 저기요, 내 피가 제대로 잘 돌고 있나, 궁금하더라고요.”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요?”
  소셜워커가 물었다.
  “나 도와주는 길은 이 지겨운 병원에서 빨리 내보내 주는 거라고, 말 좀 해주세요. 이제는 마약 생각 절대 안 나요. 안 난다니까요.”
  두 의사와 소셜워커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와 사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통역 이외의 다른 질문은 할 수가 없었다.

  여름이 훌쩍 지나갔다. 쟈니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대학 기숙사로 떠났고 주희만 집에 남게 되었다. 갑자기 들었던 보따리를 놓아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내게 몰려왔다. 그 빈자리를 주희가 대신 채워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 동안 웬 일인지 주희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주희야, 오빠 잘 있다던? 공부가 힘들다고 하지?”
  나보다도 주희가 쟈니 근황을 더 잘 알고 있어 나는 항상 주희를 통해서 쟈니 소식을 들었다.
  “이모, 오빠는 워낙 머리가 좋은가봐요. 친구들하고 놀면서도 시험을 잘 봤대요. 나는 왜 오빠같이 머리가 좋지 않을까. 그냥 대학이고 뭐고 다 집어치고 시집이나 가버릴까?”
  “주희야!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간호학교에 가면 어떻겠니?”
  “이모, 나는 주사바늘만 봐도 소름이 끼쳐.”
  “닥치면 할 수 있어. 간호사는 우선 직장이 보장되어 있고 남을 돕는다는 생각을 하면 보람도 있는 일이야. 희망이 없는 마약 아기를 몇 달 동안 돌봤는데, 아기가 많이 좋아져서 눈도 맞추고 나를 보면 방긋방긋 웃잖니. 남의 아기인데도 정이 들어 비번인 날까지 아기가 눈에 밟힌다니까.”
  “이모나 해. 난 못 해. 아기는 정말 더 싫어.”
  딱 잘라 말하는 주희의 태도가 얄미웠다. 주희는 주말이면 쟈니 친구 스캇한테서 영어를 배운다며 나갔다. 스캇은 쟈니의 단 하나뿐인 한국 친구이다. 그는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다녔다. 주희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집안 일은 곧잘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는 숙제를 핑계로 내다보지도 않았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듯 침울하기도 했고 멍하게 앉아 있기도 했다.
  “주희야! 이모 들어가도 되니?”
  아무 대답이 없어 나는 방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주희는 컴퓨터를 켜놓은 채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오빠! 난 오빠가 없는 집에서 외로워서 못 살겠어. 학교도 가기 싫고 머리만 복잡해. 나 오빠 있는 데로 가면 안돼?”
  주희는 잠시 말을 끊고 훌쩍거리며 울었다.
  “알았어! 내 멋대로 놀아버릴 거야.”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오빠라니 누구란 말인가? 오빠가 없는 집? 내 머리 속이 뒤죽박죽 정
돈이 안되었다. 가슴이 쿵쾅거려 주희 뒤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얼른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가 띵해졌다.
  설마! 주희가 쟈니를.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빨리 언니한테 알려서 한국으로 데려가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언니한테는 연락 할 방도가 없었다. 언니는 당분간 자기가 전화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며 번호조차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밤새도록 뒤숭숭한 꿈에 시달렸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주희를 조용히 불렀다.
  “주희야, 이모한테 솔직하게 말해야 돼. 너 혹시 누구 좋아하니?”
  주희는 당황해 하며 나를 흘끔 쳐다봤다.
  “이모!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두면 안돼요? 학교도 공부도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그런 말을 해요?”
  주희는 지금까지의 사근사근했던 행동과는 다르게 가방을 던지며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무슨 말을 심하게 했다고 가방을 던지니? 누구한테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짓을 하는 거야? 점점 갈수록 얘가 형편 없네, 그럼 물어보지도 못하니?”
  “혹시 엄마가 전화 와서 나를 그냥 두지 말래요? 무슨 자격으로... 난 엄마도 없단 말예요. 이모까지 그러면 내 멋대로 살아버릴 거예요. 엄마가 버린 자식인데 다들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희의 뺨을 때렸다.
  “이모는 엄마 대신이야. 그래, 네 멋대로 살아봐.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너를 친딸로 호적에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쟈니도 너도 다 필요 없어. 마음대로 해!”
  나는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직장에 나갔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불안했다. 주희한테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집에 가면 다시 다독거려 마음을 잡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퇴근을 서
둘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주희를 불렀다. 주희는 없었다.
  혹시 스캇을 만나러 갔을까?
  마음이 불안했지만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밤 열 시가 넘었는데도 연락이 없자 다시 주희 방으로 달려갔다. 벽장에 옷가지가 깨끗히 없어졌고 침대 위에 쪽지가 놓여 있었다.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이모, 미안해요. 아무래도 나는 이 세상에 나 혼자 뿐인가 봐요. 찾지 말아 주세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쟈니 전화번호가 생각나질 않았다. 마음을 진정한 후 쟈니의 셀폰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스캇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주희의 책상 설합을 뒤졌다. 성냥갑만 몇 개 흐트러져 있었고 전화번호는 찾을 수가 없었다. 밤 열두 시가 넘어 쟈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들어오겠죠. 혹시 스캇이 알고 있을 지 모르니 내일 전화해볼 게요.”
  쟈니는 감정 없이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놀란 것만큼 놀라지 않는 것이 안심이 되면서도 의아했다.
  혹시 자기들끼리 나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직장에 나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전화통에만 온 신경이 갔다. 점심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데 쟈니한테서 연락이 왔다. 스캇도 주희의 행방을 모르고 있다고 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불안한 상태로 도저히 일을 계속할 수가 없어 일찍 직장에서 나왔다. 곧바로 주희의 학교로 달려갔다. 역시 결석이었다. 카운슬러는 주희를 기억하고 있었다. 쟈니가 졸업을 한 후 항상 외톨이로 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가출까지 했다니 너무 놀랐다며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도 외로웠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시월이 되니 사철이 없는 엘에이라해도 아침저녁 서늘한 기운이 피부에 차갑게 느껴졌다. 어느 사이에 가로수의 돌배나무 이파리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열매 맺지 못한 슬픔을 흰꽃으로 날려보내고 남은 이파리에 열정을 쏟아부어 마지막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애타게 보여주고 있었다.
  주희가 나에게 온 지도 벌써 육 개월이 지났다. 처음 엘에이에 주희가 왔을 때는 돌배꽃이 눈송이처럼 흩날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단풍이 물들고 있었다.
  주희가 집을 나간 지 두 주일이 넘었다. 도대체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 아무 대책없이 주희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슴을 조이게 했다. 쟈니나 스캇도 나름대로 찾아보고 있다며 전화를 자주했다.
  창 밖의 짙어가는 가을 풍경에서 눈을 돌려 마약 아기를 바라봤다. 몇 달 동안 정이 흠뻑 들었던 마약 아기가 오늘은 퇴원을 하는 날이다. 하늘색 옷 한 벌을 준비해왔다. 아기의 건강이 거의 정상으로 회복된 것이 기적 같았다. 기쁨이 잔잔하게 내 마음에 일고 있었다.
  “한국어 통역원은 응급실로 연락을 바람.”
  혹시 김동수가 다시 입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급실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제발 마약 환자나 알콜 중독자가 아니기를 바랬다.
  김동수는 마약치료센터로 다시 갔을까? 그곳에서 새 삶을 찾았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해본다. 그 동안
많은 한국 환자의 통역을 해왔지만 김동수가 가장 기억에 남아 항상 뒷 일이 궁금했다.  
  응급실에는 환자들이 복도에 있는 간이침대까지 꽉 차 있었다.
  “한국어 통역 누가 필요한가요?”
  눈빛이 예리하게 생긴 젊은 의사가 바쁜 듯이 흰 가운을 펄럭이며 먼저 환자 쪽으로 걸어갔다. 젊은 여자인 듯한 환자는 모로 누워 새우처럼 꼬부리고 있었다.
  어디가 아파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일까.
  “미스 챙, 미스 챙.”
  의사가 환자를 불렀다. 그녀의 몸이 약간 움직였다. 몸은 세상을 등지고 있어도 귀는 열려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어 볼 수는 없었지만 윤기가 흐르는 탐스런 까만 머리칼이 그녀의 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국 분이시죠? 얼굴 좀 들어보세요.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그녀는 숨조차 아껴 쉬는 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약을 했죠?”
  챠트를 훑어보며 의사는 대뜸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왜 자살을 하려고 했죠?”
  그렇게 질문을 하는 데도 미스 챙은 꼼짝하지 않았다.
  “환자가 흥분 상태라 말을 안 하니까 나중에 필요할 때 다시 부르겠습니다.”
  나는 복도로 걸어나오면서 문득 주희를 생각했다.
  저 환자는 몇 살일까. 주희는 지금 어디 있을까.
  주희가 집을 나간 지 삼 일이 되었을 때, 언니는 잡음이 많이 들리는 곳에서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주희 잘 있니? 미안해’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혹시 꿈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잠깐 스쳐지나간 소리는 마치 스파이들의 암호 전달 같았다. 그때, 나는 언니한테 주희가 집을 나갔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리 크게 잘못했단 말인가.
  
  다음 날은 비번이었다. 간밤에 잠을 설친 탓인지 눈이 충혈되어 쓰렸다. 주희 방에 들어가 벽장 속도 뒤져보고 침대 밑까지 샅샅히 뒤져봤지만 갈만한 곳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이메일을 한 것은 아닐까. 이메일 주소도 모르면서 나는 무조건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 밑에 무슨 흰 종이가 눈에 띄였다. 볼펜 끝으로 종이 끝을 뽑아냈다. 한인마약치료센터 명함이었다.
  아! 언젠가 김동수가 내게 보여줬던 명함이 아닌가. 주희가 마약을...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나는 급히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운전을 하는 동안 내내 나는 주희가 거기에 없기를 바랬다.
  사무원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아주머니 아니세요? 맞죠?”
  김동수, 그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몰라보리 만치 딴 인물이 돼 있었다. 어떻게 몇 개월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믿어지지가 않았다. 김동수는 내게 웬 일로 이런 곳에 왔냐고 물었다. 장주희라는 이름은 물론 없었다. 주희의 인상착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 어제 아주머니가 일하는 병원으로 간 여자가 있어요. 혹시 그 아가씨가 조카가 아닐까요? 마약을 한 젊은 여잔데 개스를 켜놓고 죽겠다고 난동을 피워 911을 불렀죠.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아주머니, 빨리 차 열쇠 좀 주세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
  그는 동료에게 일을 부탁하고 내게서 차 열쇠를 받아 성큼성큼 앞장을 섰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팔에 눈이 갔다. 상처의 흔적이 희미해져 있었다.
  “아주머니, 진정하시고 저를 보세요. 상처가 다 아물었잖아요. 만약 그 아가씨가 조카라도 놀라지 마세요. 상처는 아물게 돼 있거든요. 그때 나는 퇴원을 해서 다시 자살을 하려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어
요. 그 친구는 교통사고로 아내와 여섯 살짜리 딸을 잃고 아들은 다리가 잘려 졸지에 불구가 됐대요. 여덟 살짜리 아들과 동반 자살을 하려했는데 아들이 죽기 싫다고 하더래요. 아들은 한 쪽 다리만 있어도 공부 잘 할 수 있다며 죽는 것은 너무 무섭다고 울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살 용기를 얻었대요. 그래서 그 친구는 아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보람이고 감사하다는 거예요.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나도 새 사람이 되어 열심히 산다면 어느 날 자식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가슴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거예요.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해야겠다는 꿈도 갖게 되었고 그래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가끔 아주머니 생각이 났어요. 찾아가서 변한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뵙게 됐네요.”
  나는 김동수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머리 속에는 어제 응급실에 웅크리고 있던 젊은 여자의 모습으로 꽉 차있었다.  
  병원 대기실에 스캇이 앉아 있었다.
  아! 주희가 맞구나.
  스캇은 나를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스캇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어떻게 여기를? 쟈니는?”
  어딘가 쟈니도 와 있는 것만 같아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스캇에게 물었다.
  “오늘 아침 이 병원에서 남겨놓은 메시지를 받고 지금 막 저도 왔어요. 쟈니한테는 아직 연락을 못했어요.”
  스캇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나를 병실로 안내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어제까지 낯설었던 환자의 뒷모습
이 금세 주희의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김동수는 나와 주희의 표정을 재빨리 간파했다.
  “주희씨, 이모가 오셨어요. 이모가 계신데 왜 이렇게 허물어졌어요. 정신 차리세요.”
  “주, 주- 희야...”
  나는 주희를 꽉 껴안았다. 주희의 고민과 상처까지도 한꺼번에 보듬고 치유해주고 싶었다. 주희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내 가슴에 안겨 어깨를 심하게 떨었다. 주희의 얇은 어깨를 다독거리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 밖에는 햇살을 받은 나무들이 이 날따라 유난히도 푸르게 보였다.                                                                                                    
                                                                                              
                                                                                                         -끝-    





2006년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