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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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잿빛 노을

2007.10.16 13:19

윤금숙 조회 수:906 추천:127

잿빛 노을

  새벽녘이었다. 요란하게 벨이 울렸다. 손으로 더듬어 자명종 시계의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울렸다. 전화기를 찾느라 하마터면 지난 밤 마시다 만 커피잔을 칠 뻔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치떠올려 자명종 시계의 빨간 숫자를 바라보았다. 네 시 사십 분이었다. “4” 라는 숫자가 불길했다. 한 시 넘어까지 깨어 있었으니 겨우 세 시간 정도를 잔 셈이었다.
  “죄송합니다. 여기 교도소입니다. 곧 와 주십시요.”
  “여보세요! 여-보...”
  이쪽에서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곳에서는 십사 년 동안 한번도 집에 전화를 해온 적이 없었다. 남편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일 년 남은 형량이 감해져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것은 아닐까. 설마 그런 일로 새벽에 전화를 할 리가 없지, 머리 속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커피 포트에 물을 붓고 커피를 진하게 끓였다.
  운전을 하면서도 자동차 행렬만큼이나 긴 생각들이 줄을 이어갔다. 백일 번 고속도로는 바다를 끼고 있어 주변이 아름다웠다. 엘에이에서 북쪽을 향해 운전을 하고 가노라면 태평양 바다가 줄곧 옆으로 따라왔다. 처음 일이 년은 앞만 보고 운전하기에도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햇수가 지나갈 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의 아름다움에 눈길이 가 곤했다. 바다는 언제나 그 큰 가슴을 활짝 열고 나의 모든 것을 품어 줄 수 있다고 속삭였다. 그 소리는 점점 내 귀에 그의 목소리로 들려왔다. 그랬었지, 그의 가슴도 그렇게 넓었고 소리도 바다만큼이나 진실했었지. 그런 생각을 하니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가슴이 저려왔다.
  파도는 운동회 때, 흰 운동복을 입은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바닷가로 달려 와서는 짓궂게 모래성을 삼켜버리고 하얗게 바다로 숨어버렸다. 아! 바다. 이 태평양 끝은 분명 내가 살았던 그곳과 연결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부서지는 파도 사이로 서퍼가 갈매기처럼 멋지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한 눈을 판 사이에 서퍼가 파도에 휩싸여 잠적해버렸다. 나는 그를 찾느라고 하마터면 차선을 침범할 뻔했다.
  토요일인데도 차가 밀려 삼십 마일로 가고 있었다. 사고가 났을까. 아니면 월요일이 공휴일이라 놀러들을 가는 것일까. 어둡고 우중충한 남편의 얼굴이 떠오르자 가슴이 답답해 왔다. 흘끔 싸이드 밀러에 비친 옆 차에 눈길을 돌렸다. 날씬한 빨간 스포츠형 차가 눈에 들어왔다. 젊은 여자는 블론드 머리칼을 날리며 혼자 쫑알대더니 깔깔거리고 웃었다. 다시 봤더니 귀에 셀폰 줄이 덩달아 흔들거리고 있었다. 여자의 모습은 신선했다. 모두들 세상이 아름답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은서한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웃음을 잃은 은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참 울려도 받지 않아 전화를 그냥 끊어버릴까 하는 찰라에 은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곤에 젖은 은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이른 아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은서야! 미안해. 아빠 계신 곳에서 전화가 왔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딸한테 전화를 할 때 언제나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하게 된다. 은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언제나 그랬다.
  “관심 없어! 더 이상 나빠질 게 뭐가 있어. 아빠, 보고 싶지도 않아.”
  착 가라앉은 은서의 목소리는 쌀쌀했다. 전화선 너머로 은서의 길게 찢어진 쌜쭉한 눈이 내 가슴에 획을 그었다. 은서는 아빠에 대한 일이라면 묻지도 않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엄마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자식 앞에 나는 죄인이었다.
  사고가 났을 때, 은서는 열두 살이었다. 어려서부터 자기 주장이 뚜렸했고 독립심이 강했다. 시키지 않아도 숙제를 착실하게 했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우등생이었다. 남편은 은서에 대해 말할 때만 생기가 났고 흐믓해 했다.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은서는 자기 할 일을 잘 해내 남편이 예측한대로 동부에 있는 좋은 대학엘 갔다. 지금은 그 대학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다.
  은서를 생각할 때 나는 까끔씩 파란 하늘에 꿈을 그려본다. 은서가 결혼을 하고 남편도 출옥을 한다면, 나는 그와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도 사위를 볼 나이가 되고보니 며느리에게 아들을 뺏겨버린 시어머니의 심정도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그곳에 가면 내 나라 내 고향이니 무엇을 한들 못 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희망이 생겼다. 어쩌면 그것은 남편의 꿈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고향집 앞마당에 감이 휘어지게 매달려있던 감나무를 가끔 꿈에서 본다고 했었으니까.
   혹시 누가 알아, 한국에 가면 정신이 바로 돌아올 지. 남편의 병은 풍토병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또 가슴이 저려왔다. 내 잘못이야, 애초에 이곳으로 남편을 끌고 온 내 잘못이야. 가슴 저 아래서 또 하나의 내가 소리를 쳤다. 내 온 몸이 금세 저려왔다.  
  남편이 있는 곳에 가까워지자 면회 때마다 일어났던 일들이 되살아 났다.
  그날은 첫 면회날이었다. 그곳까지는 무려 세 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높은 담만 쳐다봐도 숨이 막혔다. 면회시간에 맞추어 일찍 떠났기 때문에 한 시간을 기다렸다. 세상과 단절된 교도소 면회실의 분위기는 언제나 낯설었다.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긴 흑인 죄수가 수갑에 채워진 채 눈을 희번득거리며 건들건들 나왔다. 수의를 걷어부친 팔뚝에는 문신이 옷처럼 입혀있었다. 그 순간 내 옆에 앉아 병든 닭처럼 졸고 있던 늙은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앞으로 쓸어질듯 달려갔다. 그는 노인을 보는 순간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두껍고 큰 입술에 숨어 있던 흰 이가 옥수수 알처럼 한꺼번에 와그르르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제발 오지 말라고 했잖아! 당신이라면 보기도 싫단 말야, 빨리 돌아 가!”
  “아들아, 누가 뭐래도 너는 내 착한 아들이야. 다 나 때문이다. 내가 대신 그 안에 있어야 했어. 미안해, 아들아!”
  노인은 차마 가까히 가지도 못한 채 엎드려 애걸이라도 할듯 엉거주춤 다가가지를 못했다. 그 덩치는 홱 돌아서 걷다가 커브를 돌때 고개를 돌려 노인을 잠시 바라봤다. 그때, 아들의 눈에 눈물이 반짝 빛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내 아들은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우. 그래서 계부를 나 대신 죽여버렸다오. 내가 그를 죽이기 전에 내 아들은 나를 위해서 그를 죽였지, 그러니 내가 벌을 받아야되는 거 아니오. 나는 수도 없이 남편을 마음 속에서 죽였으니까.”
  아들한테 하지 못한 속말을 나에게 토해냈다.
  잠시 그 노인의 모습에서 한국에 있는 시어머니의 얼굴이 비쳐졌다. 나는 노인의 까칠한 갈퀴 같은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아줬다. 잠시 후 남편이 교도관의 안내를 받으며 휘적휘적 걸어나왔다. 남편의 모습은 정신이 홀랑 빠져버린 빈껍데기처럼 가볍게 보였다. 그런데도 눈만은 여전히 형광빛을 발했다. 남편을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서 도태된 사람들의 집단, 모두가 영혼이 외로워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 속에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여보! 약 열심히 먹죠?”
  남편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 눈에 강한 햇빛이 쪼인듯 눈이 시어 눈물이 고였다.
  “너, 천영수 마누라 아냐! 그 새끼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남편은 면회실이 쩡쩡 울리게 소리를 질러댔다. 교도관 두 명이 양쪽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남편은 그들을 뿌리치고 홱 돌아섰다. 그 힘에 못 이겨 잠시 비틀거렸다. 그는 다시 환한 얼굴로 돌아서서 나에게 보란 듯이 말을 했다.
  “해브 어 굿 데이! 신디.”
  마치 연극 무대에서 배우가 퇴장을 하듯이 그는 내 눈 앞에서 잠시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세 시간 동안 운전을 해서 겨우 몇 분 동안 그의 어수선한 모습을 보고 뒤돌아서야 했다.
  흑인노인은 엉거주춤 나를 따라나왔다. 잘 가라는 인사를 나에게 했지만 나는 노인에게 답례를 할 기력도 정신도 없었다.  
  다음 면회 때, 그 노인은 또 와 있었다. 면회실 분위기는 올 때마다 낯설었다. 이런 곳에 내가 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지난번 일 때문에 미안해서 노인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댔다. 검으틔틔한 나무 껍질 같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줬다. 노인의 손은 의외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가슴이 평온해지면서 희망이 전해왔다. 이제는 시어머니도 저 노인처럼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겠지.
   “내 아들은 겉으로는 야단을 해도 속은 에미를 무척 사랑한다우.”
  갈 때마다 남편은 다른 모습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내 남편도 마찬가질 거라는 말은 속으로만 우물거렸다.
  “썅! 보기 싫어! 싫단말야. 너만 보면 토하고 싶어져!”
  가는 눈을 앙칼지게 흘기니 파란빛이 섬뜩거렸다. 눈동자가 제각끔 굴러다녔다. 그러는 남편의 정신 세계는 어디 쯤에서부터 빗나간 것일까. 남편의 눈을 피해 겨우 한마디 했다.
  “여보! 진정하고 내 말좀 들어봐요. 약 열심히 먹어야 돼요.”
  이제와서 약을 먹고 안 먹고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말 한 마디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할 것 같은 초조감에 아무 말이라도 뱉어버린 것이다.  
  “너나 먹어. 왜 나보고 먹으라는 거야? 내가 왜 미쳐, 미친 것은 당신이야! 도대체 너라면 그림자도 보기 싫으니 잔소리하지 말고 꺼져버려! 네가 뭔데 나보고 돌았다고 하느냔 말야. 돈 것은 바로 너야, 너. 알았어!”
  나는 혼란스러웠다. 혹시 남편은 멀쩡한데 주위에서 그를 정신병자로 몰아부친 것은 아닌가. 남편은 소리를 버럭지르고 오기창창하게 휑하니 돌아서서 들어가버렸다. 눈에만 온 기운이 모아졌는지 걸어가는 뒷 모습은 의외로 쓰러질듯 휘청거렸다. 남편의 모습이 눈물 방울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가 뚝 하고 내 손등에 떨어졌다.
  노인은 휴지조각을 낡은 핸드백에서 꺼내어 내 손에 쥐어줬다. 나는 그 노인의 앙상한 마른 가지 같은 손을 잡고 그 손등에 내 얼굴을 묻었다. 노인은 다른 한 손을 빼내어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그런 모습은 다음 면회 때까지 나의 마음을 끝이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헤매게 했다.
  “당신한테 너무 미안해. 언젠가 때가 되면 한국에 나가서 옛날처럼 다시 잘 살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기다려 줘, 알았지!”
  어느 날, 남편은 말짱한 정신으로 말했다. 그 말 한마디는 속 깊은 남편의 진심이었다. 남편의 그 말은 쓰러져가는 내 정신력에 다시 작은 불씨를 일으키게 했다. 남편한테서 도망 가고 싶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자책만이 파편으로 남아 내 마음을 끊임없이 찔러댔다. 그의 눈길을 피해서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말을 던졌던 일, 그를 폐인 취급했던 일, 그가 마음 문을 닫기도 전에 나는 미리 철통 같은 자물쇠를 채워버렸던 일,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견딜 수 없는 회한의 고문으로 남았다.
  아직도 고속도로는 내 마음의 체증같이 뚫리질 않았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이 길을 다녔어도 이런 적이 거의 없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퍼들이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높은 파도가 서퍼들을 꽁꽁 감춰버렸나보다. 오늘도 그 노인이 먼저 와 있으려나, 어쩐지 서퍼처럼 숨어버렸을 것만 같았다. 만나야 되는데...

  지난 밤 꿈이 뒤숭숭했다. 결혼을 반대했던 시어머니는 꿈에서도 찬바람이 도는 얼굴이었다. 꿈 때문인지 마음과 몸이 찌뿌둥했다. 남편을 먼저 세탁소로 보내놓고 나는 늦장을 피웠다. 타이레놀 두 알을 입에 넣었을 때 전화 벨이 울렸다. 혹시 딸아이 학교에서 오는 전화인가 싶었다. 며칠 전부터 감기가 들었는데도 아이는
막무가네로 학교엘 갔다. 그런데 학교가 아니고 먼 곳에서 알듯 모를듯 떨리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여보! 큰일 났어. 주인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건물이 팔렸대...” 남편의 목소리는 전화선 멀리에서 사방으로 갈라져 내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투자한 돈과 은행융자금이 머리 속에서 선명하게 숫자로 찍혀졌다. 갑자기 앞이 몽롱해지며 남편의 얼굴과 천영수의 얼굴이 두 세개로 겹쳤다.
  가게를 인수한 지 육 개월이 돼 가는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가게는 이십 분밖에 안되는 거리였지만 지옥길처럼 멀었다. 지나간 일들이 작은 기차역들의 팻말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동안 남편은 이것저것 사업에 손을 댔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으로 동네 마켓을 사서 오 년 동안 권총을 가슴에 차고 열 두시간 씩 일을 했다. 그러나 좋지 않은 동네라 주위의 불량배들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이 들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쓸데없는 웃음만 헤프게 흘렸다. 그런 남편의 모습은 비굴하게 보였다. 결국은 끊임없는 도둑에다 불경기가 겹쳐 팔지도 못하고 돈만 날리고 문을 닫았다. 그후 일 년 동안 일거리를 찾으러 다녔지만 마땅한 일이 없었다.
  친구를 따라 스와밋 장사를 시작해봤으나 결국은 이 년만에 그것도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집어치우고 말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남편의 무능력에 실망했고 소심한 그의 성격이 답답했다.
  그럴즈음 우리에게 은인이 나타났다. 남편의 대학 선배인 천영수였다. 그는 세탁소를 세 개나 운영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천영수의 세탁소에서 삼 년 반 동안 월급을 받고 내 일처럼 열심히 일을 했다. 사업 수완이 능란했던 그는 세탁소가 뭔지도 몰랐던 우리 부부에게 훈련을 시킨 후 가게를 넘겼다. 그 가게를 인수했던 날, 우리는 꿈을 다 이룬 것처럼 기뻐했다. 이 가게는 우리에게 생명이고 희망이었다. 그때 남편의 나이는 사십 중반이었다. 남편은 우직할 정도로 앞만 보고 일을 했다. 꼼꼼한 남편은 어떤 종류의 때자국도 다 빼는 기술자가 되었다.
  가게문은 일곱 시에 열지만 남편과 나는 여섯 시에 나와 보일러도 켜놓고 그날 끝내야 할 세탁물을 챙겼다. 저녁 일곱 시에 문을 닫고 집에 들어오면 몸은 파김치가 됐다. 저녁 밥은 아무렇게나 허기를 때우고 밀린 옷을 수선하다보면 금방 자정이 돼버렸다. 그리고는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점심을 대충 싸가지고 나가야 했다.
   하지만 차츰 단골도 늘고 무엇보다 수입이 올라가니 견딜만 했다. 이렇게 몇 년만 고생을 하면 우리도 보란듯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희망에 부풀었다.
  
  세탁소에 도착하니 남편은 뒷문 쪽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의 탄탄했던 등이 갑자기 다 삭아 내려앉은 초가지붕 처럼 보였다. 남편은 내가 들어서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가게를 휘 둘러 보았다. 하나하나가 정이 들었던 곳이었다. 호세는 라디오의 볼륨을 올려놓고 엉덩이까지 흔들며 신나게 다리미질을 하고 있었다. 그 때마다 수증기가 확 쏟아져나오니 호세의 춤추는 모습은 무대 위에서 율동하는 가수들처럼 그럴 듯했다. 낭만적이었던 스페니쉬 노래가 가슴에 닿자 똘똘 뭉쳐졌던 슬픔이 한꺼번에 핏덩어리처럼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낙천적인 그들이 부럽다. 사 년여 동안 한국음식에 길이 들여져  김치도 잘 먹었는데.
  천영수는 종적을 감춰버려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수소문해서 천영수의 사촌형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죄송합니다. 천영수 씨의 전화번호라도 가르쳐 주세요. 아무래도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서에요.”
  나는 애걸하다시피 사촌형이라는 사람에게 매달렸다.
  “뭐예요! 아주머니, 그 죽일놈 전화번호를 알면 차라리 나에게 가르쳐 주세요. 당장 찾아서 사기죄로 집어 넣어버리게요. 나도 피해자예요, 피해자.”
  그때서야 서류를 가지고 변호사를 찾아갔다. 제계약 조건은 주인 마음대로 였다. 새 주인은 건물을 다른 용도로 쓰겠다며 기계를 뜯어가지고 나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알고보니 기계도 수명이 다해 오히려 돈을 들여서 뜯어내야만 했다. 새 주인에게 제 계약을 해달라며 우리 부부는 짧은 영어로 매달려봤다. 그들은 냉정했다.  
  가게를 닫은 날, 남편은 만취가 되어 통곡했다. 남편을 원망하려던 마음을 깊이 접어넣었다. 차고 한쪽 구석에는 미처 찾아가지 않은 옷들이 헌옷 가게의 옷들처럼 후즐근하게 걸려 있었다. 차라리 몽땅 도네이션을 해버리는 건데 혹시나 싶어 집으로 가져 온 것이 눈에 더 거슬렸다.
  남편은 거의 매일 자명종 소리에 벌떡 일어나 습관처럼 샤워룸으로 들어갔다. 그 시간이면  자동적으로 잠에서 깨어 가게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남편의 뒤를 밟았다. 엘에이의 아침 공기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서늘했다. 상쾌하던 아침공기가 오늘따라 왠지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남편은 발길이 닿는 대로 무작정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 가더니 공원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무 아래 시멘트 벤치가 찬 이슬에 떨고 있었다. 신문지와 맥주 깡통이 그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라도 있는 듯이 차가운 돌벤치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의 홑겹바지가 금세 젖어들겠지. 하지만 그는 아마도 한기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무 뒤에 숨어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내 가슴에도 어느틈에 찬 기운이 옮겨 와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갑자기 이 미국 천지가 그와 나만 있는 외딴 섬으로 느껴졌다. 그의 어깨를 감싸줘야 된다는 마음만 있었지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다.
  하루에 열 네 시간 씩 일을 하던 그는 졸지에 백수가 돼버렸다. 남편은 거실에 있는 흔들의자에 몸을 파묻고 망연히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는 항상 그 의자에만 앉았다.
  흔들의자는 내가 은서를 가졌을 때 남편이 사 온 첫 선물이었다. 아기 젖을 먹일 때나 안고 재울 때 앉는 편안한 의자였다. 그 의자에 앉아 있었을 때가 나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의자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깎지도 않은 남편의 덥수룩한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였다.
  나는 작은 회사에서 경리 일을 봤던 경험을 가지고 백방으로 직장을 구하러 다녔다. 영어가 좀 부족해도 계산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마침 친구의 주선으로 미국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건강 보험이 있고 우리 세 식구가 먹고 살 수 있는 것 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일을 했다.
  한편 남편이 하는 일은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밖에 없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한 블럭쯤 떨어진 곳에서 차를 타고 내렸다. 깔끔한 성격의 은서에게는 꾀죄죄한 차림의 아빠 모습이 창피했울 것이다. 은서는 차에서 내리면 항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은서는 학교에서 돌아와도 언제나 혼자 방에 있었다. 남편은 딸이 집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있는 듯 흔들의자에 앉아 멀거니 한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꺼질듯 아! 하고 숨을 내쉬며 가슴을 뜯었다. 나는 그 짧은 외마디 한숨의 뜻을 안다. 그 한숨만이 남편과 나를 일체시켰다.
  남편은 사대 독자였다. 남편의 성격은 강한 것 같으면서 무척 여린 면이 있었다.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나와의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도화살이 껴 나와 결혼을 하면 아들이 요절한다는 점쟁이의 말을 믿었다. 친구의 오빠였던 그와 나는 시어머니의 반대에 반항이라도 하듯 더 불이 붙었다. 남편의  어디에 그런 결단력이 숨어 있었던지 그는 어머니의 의사를 묵살했다. 나 또한 그런 남편의 집념에 평생을 맡겨도 좋겠다는 결론이 섰다. 아니 어쩌면 나는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소유욕을 짓밟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몇 년 동안 시어머니는 우리를 보지 않았다.
  남편은 탄탄한 교사직과 어머니를 뒤로하고 나를 따라 미국으로 왔다. 그런 남편이기에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다 견뎌내리라 결심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힘든 이민 생활에 점점 희미해져 갔다. 융통성 없고 내성적인 남편의 성격이 지겹도록 싫었다. 남편은 자꾸만 움츠러 들어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누구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날마다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남편의 뒷모습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내가 퇴근해 오는 시간만이라도 움직여줬으면 싶었다. 날이 갈 수록 미안한 마음보다는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만이 앙금처럼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남편을 밖으로 끌어내는 길을 생각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남편과 함께 가까운 커피 숍에 갔다. 앞장 서 가는 남편의 어깨에 봄볕이 따스하게 내렸다.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오랫동안 잊혀졌던 내 기억의 한자
락을 애써 잡아 당기고 있었다. 남편과 처음 만나 데이트할 때의 그 라일락 향기였다.
  너무 일러서인지 커피 숍에는 노인네들만이 군데군데 앉아 느린 손놀림으로 신문을 뒤적이며 잡담들을 하고 있었다. 그 노인네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남편도 가끔 그들과 같이 이곳에 와서 시간울 떼우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나이만 조금 젊었을 뿐 그들보다 나을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젊은 사람이 할일 없이 그들과 같이 앉아 있
다는 것은 처참한 일이었다. 밖에서 본 남편의 모습은 풀기 없는 삼베처럼 축 처져 보였다.
  “여보! 지나간 일 이제는 다 잊어버려요.”
  나는 진심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밉기만 했던 남편을 밖에서 보니 더 초라하게 보여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 다시 한번 무엇이든지 해볼게.”
  남편은 시선을 밖으로 보내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순간 그 젖은 시선이 겁 먹은 아이의 눈처럼 슬퍼보였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돈은 내가 어떻게 해볼 테니 걱정말고요.”
  봄내음이 창밖에서 스며들어와 상큼하게 콧끝을 건드렸다.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이 오랜만에 술렁거렸다. 고분고분한 남편의 태도에 다시 희망이 솟았다.
  그날 후 남편은 가끔씩 외출을 했다. 할 일을 찾으러 다니는 그런 모습만 봐도 나는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마되지 않는 돈 관리를 나는 남편한테 맡겼다. 현금과 카드등 일체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했다. 조그만 보상이라도 하듯이.
  남편은 주로 오후에 말없이 나갔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가는 데도 뭔가를 하겠다는 눈치가 안 보이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밤 늦게 들어왔다. 어떤 날은 새벽녘에 살그머니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남편을 찾는 한국 남자의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고 났지만 낮게 깔은 칙칙한 음성이 마음에 걸렸다. 남편을 찾는 전화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릴만 할 때 같은 목소리의 남자가 남편을 또 찾았다.
  “여보! 어떤 사람이 당신을 찾던데, 누구에요?”
  남편은 화들짝 놀라며 필요 이상으로 시치미를 땠다. 그런데 그 표정 뒤에 숨겨진 겁 먹은 눈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남편은 다시 외출을 하지 않았고 전화 벨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눈치였다.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를 찾았다.
  “당신 남편이 그 동안 카지노에 들락거린 것을 아십니까? 남편의 빚을 갚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또 연락하겠습니다.”
  전화는 딸깍하고 끊어졌다. 나는 너무나 무서워 뒤를 돌아다봤다.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려고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냉수를 한컵 들이켰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고 그동안 남편에게 맡겼던 은행 수표, 크레딧 카드, 현금등을 책크하기 시작했다. 몇 달 사이에 남편은 비상금이었던 현금을 다 써버렸고 카드빚도 한도액까지 다 차 있었다. 그리고도 부족해 사채 빚에 좇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떡하면 좋아,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에요. 도박?”
  나는 들어오는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섭게 몰아부쳤다.  
  “내가 죽어버리면 될 거 아냐.”
  “그래, 차라리 죽어 버려! 죽어, 죽을 수가 없으면 제발 내 눈 앞에서 없어지기만이라도 해! 나도 이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이젠 끝장이라고!”
  “이제야 본심이 입밖으로 나오는군. 당신이 나 죽기만을 바라는 거 나도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난 절대로 안 죽어 누구 좋으라고 내가 죽어. 안 죽는다구, 안 죽어, 안 죽어!”
  남편은 나를 홱 밀쳤다. 맥이 빠져있던 남편한테서 어떻게 그런 힘이 솟구쳤는지 나는 한 방에 바닥으로 내동이쳐졌다. 널브러져 있는 나를 남편은 발로 걷어찼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는 발광에 가까운 몸짓으로 벽에다 머리를 쾅쾅 부딪치며 울부짖었다.
  “이 빌어먹을 나라, 나는 미국이 싫어, 미국이 싫단 말야. 돌아가고 싶다구, 나는 돌아가야 된다구! 내가 언제 미국 오자고 했어! 난 돌아 갈 거라구! 어머니, 어어엉 엉엉!”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먼곳에서 폭탄이 터지듯 쾅하고 어렴풋이 들렸다.  
  “엄마! 어-엄마,”
  은서의 목소리가 꿈 속에서인듯 멀리서 들렸다. 눈을 떴다. 나는 벽에 기댄 채 반쯤 누워 있었다. 목이 말랐다.  
   “은서야”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엉금엉금 부엌으로 기어가 물을 벌컥 들이켰다. 물이 목에 걸리더니 명치 끝이 아파왔다. 손을 오무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갑자기 바보가 된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도저히 직장엘 나갈 기력이 없어 휴가를 받아 며칠 동안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세 시쯤이었을까. 잠결에 어디선가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불면증인 남편이 텔리비젼을 켜놓고 있겠지 하면서 피곤이 젖은 솜처럼 눈꺼풀을 짓눌러 다시 잠에 빠졌다. 그러다가 누군가를 나무라는 것 같은 제법 큰 소리가 꿈인듯 들려 나는 잠에서 번뜩 깨어났다. 두근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응접실을 기웃거렸다. 남편은 플래스틱 바가지를 송곳으로 쿡쿡 찌르며 뭐라고 중얼대고 있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 천 영 수! 천가 네 놈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쳤어. 너를  찾아 낼거야...,”
  남편은 다시 복수의 불길이 타오르는지 바가지를 발길로 걷어찼다.
  “그래 해치우자!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우는 거야.”
  남편은 금방이라도 그가 앞에 있는 것처럼 일어서더니 허리띠를 졸라맸다. 남편의 눈은 고양이의 파란눈처럼 빛이 번쩍거렸다. 그는 혼자 연극연습을 하듯 자기행동에 빠져 있었다. 술에 취해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섬득 소름이 끼쳤다.  
  며칠 후, 날씨가 흐린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날은 쓰레기 수거를 하는 날이라 집집마다 쓰레통을 내놓아 길이 좀 어수선 했다. 남편은 이웃집의 초인종을 누르며 돌아다녔다.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우리 집에 강도가 들어와 돈을 몽땅 털렸어요.”
  잠시 후 이웃의 보고로 남편은 경찰 차에 실려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종합병원 정신과 응급실에는 대 여섯 명의 환자들이 침대 위에 제멋대로 딩굴고 있었다. 남편은 침대에 묶인 채 소음도 아랑곳 없이 잠에 빠져있었다. 이마에 한 일자 깊은 주름이 그의 슬픈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쩐 일일까. 남편의 얼굴은 마치 자기 침대에서 잠을 자듯 의외로 편안하게 보였다. 스스로를 오랏줄에 묶임으로 인생을 포기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삼 일만에 남편을 집으로 데려 왔다. 그날 다시 칙칙한 목소리의 남자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일체의 감정을 제거해버린 같은 톤의 낮은 목소리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다. 얼굴 없는 목소리는 어디선가 나를 모니터로 감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를 만나 빚을 처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목이 졸려 나도 남편 같이 돼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며칠을 벼르다가 용기를 내어 그를 만났다. 홀랑 깍아버린 문어머리에 짙은 선글라스를 낀 그는 악역을 맡은 배우처럼 그의 몫을 잘 해냈다. 그의 눈빛이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섬득했다.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 시켜야 해요. 이러다간 나도 돌 거 같으니 제발 빚 독촉만 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이에요.”
  내 목소리는 떨려나왔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청구서를 내 놓았다. 나는 청구서에 쓰여있는 돈의 액수를 읽고 눈 앞이 캄캄해졌다. 원금 삼만 불이 이자가 붙어 그 사이에 육만 불이라는 것이다. 내 연봉을 몽땅 털어서 갚는다해도 모자라는 엄청난 돈이었다. 남편의 싸인이 꿈틀대며 아우성 치고 있었다.
  순간 변호사를 찾아가 법적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한이 두려웠다. 노름빚은 목숨과도 같다는 것을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었다가 다시 들어와 종이를 내놓았다. 빚을 반으로 깎아 주되 일 년 안에 다 갚으라는 조건에 싸인을 해야했다. 이제는 빚까지 내 목을 졸라맸다.
  남편의 우울증은 점점 심각해졌다. 남편을 그렇게 만든 천영수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내가 먼저 그를 죽일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은 남편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뿐만아니라 직장에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도 그토록 험하게 변하는 내 자신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나는 이 유혹에서 스스로를 구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친척 하나 없는 미국 바닥은 차갑고 냉정할 뿐 찾아갈 데라고는 없었다. 남편은 날마다 술독에 빠져 눈동자가 풀려있었다.
  “선배! 그래 네가 선배야?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놈. 기어코 너를 찾을 거야. 나는 한다면 하는 놈이야.”
  남편은 혀꼬부라진 소리로 수십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술병을 들어 고개를 처들고 병나발을 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한테 달려들어 술병을 나꿔챘다. 남편은 느닷없는 방해자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미 만취가 되어 휘청거렸다.
  “도대체 당신 언제까지 이럴 거예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은 풀려있던 눈동자를 한곳으로 모아 나를 무섭게 쏘아봤다. 그런 그의 모습은 예전의 남편이 아니라 어느 길에서 본 눈쌀 찌프리게 했던 주정뱅이의 추태였다.
  남편은 갈지자로 휘적휘적 걸어서 부엌으로 갔다. 나는 겁이 났다. 남편은 부엌의 서랍을 뽑아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금속성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순식간에 부엌 안은 난장판이 돼버렸다.
  “야! 죽여버릴 거야. 빨리 나왓. 너도 죽이고 다 죽여버릴 거야. 썅!”
  나는 얼결에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화장실 문을 부서져라 발길로 차는 소리, 꽝! 어딘가에 부딪치는 소리, 혼자 몸부림을 치는 것 같았다.
  한참 후, 지쳐 어디에 쓰러졌는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태풍이 한 차례 지나 간 후 집안은 절속 같이 다시 조용해졌다. 정적은 더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은서는 자기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 겁이 났다.    
  그후 차츰차츰 남편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자기 방 창문을 은박지로 다 가려버렸다. 누군가가 카메라로 자기를 감시한다고 했다. 스파이가 자기 귀에 데고 천영수가 나를 죽이려 하고 있으니 꼭꼭 숨어 있으라고 했단다. 남편이 그 말을 할 때는 너무나 심각하고 진지해 잠시 사실인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느날, 나는 남편을 달래서 진찰을 받게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오랜 만에 끓여보는 커피의 향은 나를 먼 과거의 추억으로 몰고 갔다. 잠시 창문 너머로 눈길을 주었다. 어느 틈에 봄이 코 앞에 와 있었다. 연보라색 라일락이 슬프게 나의 눈에 비췄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남편에게 보이기 싫어 손등으로 문질러버렸다. 시침을 떼고 남편이 좋아하는 캐롯케익을 준비해서 분위기를 한껏 잡았다.
  “당신이 좋아하는 프렌치 바닐라 커피 끓였어요.”
  오랜만에 상냥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잠시 남편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 요즘 잠을 못자는 것 같던데 의사한테 가서 상담을 해보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부드럽게 말을 했다.
  “뭐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멀쩡한 사람을 이제는 미친놈으로 몰아부쳐 정신병원에 처넣으려고 하는 거지! 내가 네 그 심보를 모를 줄 알아.”
  남편의 가는 눈은 더 쌜쭉해지고 얼굴색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는 식탁을 걷어찼다.
  “네가 뭔데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야! 당신이 의사야 뭐야. 나를 잠못 자게 하는 건 바로 너야.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우리 어머니가 힘들면 오라고 했어, 나는 갈거야, 다시 학교로 돌아갈 거야.”
  그 순간 남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가면서 야릇한 빛을 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어쩌면 그를 처음 만났을때 활기차고 자신 있었던 남편의 모습이 그 빛 속에 언뜻 비치는 것 같았다. 그는 실력있는 고등학교 수학 선생이었다. 어쩌면 남편한테는 선생이 천직이었는 지도 모른다.
  빨리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했다. 하루하루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몸이 아프니 의사한테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남편은 순순히 따라 나섰다. 병원문 앞에 오더니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눈치를 챈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병원 시큐리티를 불러 발버둥 치는 남편을 끌어냈다.
  날카롭게 생긴 젊은 의사는 남편의 눈을 유심히 보았다. 남편은 죄인처럼 눈길을 피해 나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말해 보세요?”
  남편은 웃기지 말라는 식의 야릇한 비웃음을 의사의 구두 코에 보냈다. 의사의 구두는 유난히도 반짝거려 남편의 낡은 운동화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남편은 의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선생님! 남편은 거듭된 사업 실패에 정신적인 타격을 너무 받아서...”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나라도 상황을 설명해야 되겠다는 급한 마음에서 막 말을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망연히 있던 그가 갑자기 몸을 내 쪽으로 홱 돌려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네가 뭘 안다고 잘난 척이야! 네가 의사야!”
  의사는 나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내며 남편에게 물었다.
  “증오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남편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남편은 고개를 빼뚜름하게 꼬고 계속 의사의 구두코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의사는 그의 눈동자와 표정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마도 핵심을 찌른 듯 싶었다. 나는 잠시 천영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의사는 우울증 말기에 이미 착란증세가 왔다는 진단을 내렸다. 일단 약을 복용하고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기를 권했다. 집에 도착하자 남편은 반항하는 사춘기 아이처럼 방문을 꽝 소리가 나게 닫고 들어가버렸다. 남편의 방을 지날 때마다 문을 확 열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 방문은 이미 남편과 나와의 대화를 단절시킨 장벽이었다.
  남편은 종일토록 방에 있다가 밤이 되면 나를 피해 거실로 나오는 것 같았다. 거실에서는 가끔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중얼댔다. 어느 날 아침, 거실 벽에 사람 얼굴을 수도 없이 그려놓아 나를 놀라게 했다. 아마도 그것은 천영수의 얼굴일 것이다.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딸아이만을 데리고 어딘가로 도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하루에도 수없이 느꼈다.
  
  아직도 길은 뚫리지 않았다. 싼타바바라 시로 들어가자 차들이 더 움직이지 않았다. 일찍 집에서 떠났지만 아무래도 한 시간 정도는 늦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그 생각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자꾸 방정 맞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지난 밤 꿈이 떠올랐다. 새벽녘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 선잠 속에 스쳐지나간 꿈이었다. 나는 젊은 남자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갑자기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우리 앞에 섰다.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환하게 웃는 쪽 고른 치아가 석류알처럼 반짝거리는 순간 남편의 얼굴로 바뀌었다. 남편은 나를 말없이 껴안았다. 나는 그의 가슴이 아늑하고 편안했다. 그런데 그는 나를 홱 밀어제끼더니 제빨리 그 버스를 탔다.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붕하고 떠나버렸다. 나는 소리치며 따라가다 꿈에서 깼다. 잠시 동안 현실인듯 싶다가 다시 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겨우 깨어났지만 기분이 흐릿하고 찜찜했다.  
  남편이 사건을 일으킨 날 새벽녘에도 나는 꿈을 꾸었다.
  희끄무레한 안개 속에서 검은 씰루엣이 흔들거리더니 점점 선명해졌다. 남편이 당당하게 나를 향해 걸어 오고 있었다. 그는 희죽희죽 웃으며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는 유치원생 같은 표정을 지었다. 숱없는 희끗한 머리가 안개비에 젖어 착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초라했다.  
  바로 그날 아침, 남편은 살인을 했다.

  천영수가 세탁소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천영수! 꼼짝마라.”
  남편은 총을 쏘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나 그는 동양사람이었을 뿐 천영수가 아니었다. 나는 집에 총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찾아냈을까. 마켓을 할 때 총을 사겠다는 남편과 나는 싸웠었다. 그것을 없애지 못한 것은 내 불찰이었다.
  남편은 살인죄인이 되어 재판정에 섰다. 남편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검사와 배심원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곳 한국신문에는 남편의 이야기가 크게 실렸다. 그 기사에는가정불화가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신문을 덮어버렸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도움을 청할 사람도 주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개인 변호사를 살 수가 없어 관선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정신착란으로 인해 살인을 했다는 것이 인정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정이 된다면 교도소 대신에 정신병동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게 된다 했다.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필사적으로 관선 변호사에게 매달렸다. 그 무서운 교도소에서 제 정신도 아닌 남편이 혼자 어떻게 견딜가를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남편에게는 십오 년의 형이 내려졌다.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선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전혀 모르는 사람 같기도 했고 살붙이 같은 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의 형량이 언도되고 교도소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게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내 귀에는 정신병, 살인, 교도소, 이런 단어만이 들렸다. 남편이 있는 곳이 상상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본, 퍼런 죄수복에 검은 고무신, 지푸라기로 듬성듬성 짜진 벙거지를 뒤집어 쓴 죄수들의 행렬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남편에 대한 죄책감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노기 서린 시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누이한테만은 모든 사정 이야기를 전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잠간 사이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담당의사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다음말을 기다렸다.
  “어제부터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음식도 거부했어요. 오늘 오후에 정밀검사를 하기로 스케줄을 짜놓았는데...그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귀에 전달되기까지 나는 멍하게 그를 바라봤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편의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병이 들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에요? 빨리 말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오늘 새벽에 갑자기 남편의 방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교도관이 뛰어 갔을 때는 이미 그가 벽에 머리를 수없이 부딪쳐 피가 콘크리트 바닥에 흥건했어요.”
  “네? 어떻게 됐다...고요? 죽어요?”
  “한 시간 전에 운명했어요. 죄송합니다.”
  벽 시계가 맞은 편 벽에 보름달처럼 매달려 있었다. 둥근 흰얼굴에 까만 바늘이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난히도 차가 밀리더니 남편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갑자기 내 머리 속이 텅 비어버렸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고 순간 머리가 멍멍해졌다. 의사의 얼굴이 가깝다가 멀어졌다 하더니 현기증이 일었다. 담당의사는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안아 의자에 나를 앉혔다.
  잠시후 직원인듯 싶은 표정 없는 남자가 와서 남편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나는 그를 따라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의 구두 뒷축이 많이 닳았다고 생각했다.
  긴 복도가 흔들거렸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정에 설치된 스프링쿨러가 여기저기 톱날처럼 날카롭게 나에게 덤벼왔다. ㅉㅗㅈ기듯 마지막 끝에 있는 문으로 빨려들어갔다. 으스스한 찬 공기가 내 몸 주위를 서늘하게 감돌았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고 머리카락을 누군가가 위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뒤로 몸을 홱 돌렸다. 그냥 들어왔던 문으로 뛰쳐나왔다. 몸을 가눌 수가 없어 벽에 기대었다. 눈을 감았다. 피에 범벅된 남편의 얼굴이, 나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덮쳐오는 무서운 환상을 떨쳐버렸다.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시신도 안 보고 돌아서 뛰쳐나와버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올 때도 차가 밀렸었는데 돌아가는 길도 여전히 길이 뚫리지 않았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안개가 바다도 수평선도 삼켜버렸다.
  아! 서퍼들은 다 어디를 갔을까. 그들을 꼭 찾아야 될 것처럼 나는 흘끔거리며 운전을 했다. 차들이 무중력을 둥둥 떠다니는 물체처럼 보였다. 은서는 아빠가 죽었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려웠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이 살만하다는 듯이 호들갑인데 나만 군중의 대열에서 밀려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은서야, 아빠가 먼곳으로 아주 떠나셨다.”
  나는 은서의 셀폰에 아빠가 한국 나가셨다, 하는 메시지를 남기듯이 사무적으로 간단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서울에 있는 시누이한테 전화를 했다.
  “미안해, 어머니도 지난 주에 세상을 뜨셨어. 아마도 어머니가 오빠를 데려 갔나봐.”
  “왜? 알리지 않았는데...
  나는 갈 수도 없었지만 그렇게밖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시누이는 한 박자 숨을 쉬는 듯 잠시 후에 말을 계속했다.
  “어머니가 모든 상속을 은서한테 다 해놓았어. 오빠 장례 치루고 은서랑 꼭 나오도록 해...
  시누이는 뒷 말을 잇지 못한 채 울먹이고 있었다.
  내 마음도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친구에서 오랫동안 떨떠름했던 시누이 사이의 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은서는 밤 열 두시가 다 되어 전화도 없이 집으로 왔다. 딸은 오자마자 아무 감정 없는 사람처럼 거실로 갔다. 아빠가 항상 앉았던 흔들의자에 앉아 벽난로 위의 아빠 사진을 바라봤다. 은서는 누구에겐가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은서의 옆모습에서 남편의 얼굴이 언듯 비쳤다. 은서는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가는 허리를 반으로 꺾었다. 얇은 어깨가 잠자리 날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아빠를 보고 나는 창피해서 숨어버렸어. 나 어떡해...”
   나는 오랜만에 은서의 어깨를 껴안았다. 앙상한 어깨 뼈가 한 움큼으로 내 가슴에 쏙 들어왔다.

  생명이 빠져나간 남편의 몸은 하나의 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남편의 얼굴은 낯설었다. 남편의 넓은 이마에는 심한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인지 화장이 덕지덕지 밀려 있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이마의 굵은 주름이 화장 속에 파묻혀 더 이상 안 보였다. 남편의 이마는 다듬이돌처럼 차고 딱딱해 섬짓했다. 소름이 온몸에 끼쳐 얼른 손을 그의 이마에서 뗐다.
  남편의 시신을 화장하기로 했다. 교도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화장터가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그에게
죄수복을 입혀 화장을 시킬 수는 없었다. 평소 때 좋아했던 까만 신사복을 입혔고 관도 좋은 것으로 샀다. 그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했지만 다행히도 내 눈에는 평온해 보였다.
  그렇게 해서 남편을 불가마 속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관절염이 심해진 내 손가락이 떨렸는지 불이 당겨지지 않았다. 남편의 몸을 태우기 위해 불을 내 손으로 다시 한번 당겼다.
  불을 당기고 난 후 내 온 몸이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차라리 내 몸도 함께 탓으면 하는 마음이 잠시 스쳤다. 냉수를 몇 컵이나 들이켰다. 이마에 식은땀이 끈적거렸다. 두어 시간 후에 오면 남편은 가벼운 한 줌 재로 내 손에 들려질 것이다.    
  이렇게 살고 갈 사람을 나는 무엇때문에 잔소리를 해댔을까. 그가 측은하다가도 절망의 구덩이를 파고 있는 그가 싫어서 들볶았다. 그의 소심하고 부정적인 성격에 진저리를 쳤다. 가끔은 그가 죽어버렸으면 했다. 그런데 그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 곳이 뻥 뚫려 바람이 술술 들어왔다. 온 몸이 떨렸다. 무서웠다. 그가 세상에 살아있기만 해도 바람막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남편과 같이 생활하지 않았던 세월이 십사 년이었지만 그는 항상 내 마음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두어 시간이 되어 나는 남편의 시신을 재로 바꾸어 가슴에 안았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또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했다.  
  차를 타고 은서와 나는 바닷가로 나갔다. 언제였던가 남편과 나는 은서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파도 속으로 하얗게 웃으며 뛰어들어갔었다. 갈매기도 우리 주위를 날개짓을 하며 끼득끼득 노래를 불렀었지.
  그때와 비슷한 갈매기 한마리가 젖은 모래 위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가벼운 발자국의 흔적이 모래에 쓸려 금세 사라졌다. 그 갈매기는 날지 않고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다리에 난 상처가 내 마음을 찔렀다.
  갈매기에 눈길을 주던 딸은 파도를 향해 꺼억꺼억 소리내어 울었다. 파도는 울음을 휩쓸어 바다 가운데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딸이 우는 대도 나는 울음이 나오질 않았다.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따금거리는 눈에 잿빛노을이 들어왔다.
  수평선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던 잿빛노을은 마지막 빛을 발하며 바다로 떨어졌다.

(2007년 미주문학 가을호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