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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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보라빛 희숙이

2007.10.22 13:04

윤금숙 조회 수:1045 추천:116

보라빛 희숙이
                                                                                

  며칠 동안 봄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날씨가 유난히도 상큼하다. 파란잎으로 담장을 덮고 있던 라일락 덩굴에 어느새 연보라색 휘장을 쳐 놓은 듯 눈부신 등꽃이 만발했다. 겨울을 훌훌 떨쳐버리고 일 년에 한 번씩 봄무대를 장식해주는 라일락등꽃의 화사함에 나의 가슴은 싸아해진다. 가까이 가 깊은 애정으로 수없이 붙어 있는 작은 꽃송아리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주 작은 보라빛 꽃잎 사이에 연초록 수술 두 개가 고개를 쫑끗 내밀고 있다. 그 꽃들의 무리들이 줄기를 따라 촘촘히 매달려 예쁜 얼굴을 맘껏 뽐내고 있는 것이다. 꽃송이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리도 앙증맞고 예쁜지 누군가를 불러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벌새가 내 마음을 눈치챘든지 가까이 와 친구가 되어준다. 숨을 죽이고 새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그 작은 날개를 파르르 떨며 꽃송이마다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벌새의 꽁지 부분 색깔이 보라빛, 쪽빛, 오랜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문득 황홀한 보라빛 속에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스물 여덟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홀홀히 떠난 가엾은 동생. 나는 그 동생을 잃고 세상의 슬픔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여덟 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우리는 무엇이 그리도 통했던지 끝없는 이야기로 밤 새는 줄도 몰랐다. 화가였던 동생. 동생과 나는 야산을 찾아 다니며 산과 나무를 그렸고 꽃도 새도 그렸다. 나는 보호자로 열심히 좇아 다니며 <산유화> 를 읊었고 고전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동생이 캔바스에 그림을 그리는 양만큼 나는 책을 읽다가 뉘엿뉘엿 해가 질무렵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담가 놓은 포도주를 몰래 훔쳐다 마시며 밤 깊도록 꿈을 맘껏 펼쳐 놓곤 했었다. 그때의 진보라색 포도주 색깔은 우리들의 꿈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동생은 물론 화가이니 색깔에 민감했지만 나는 덩달아 색깔에 마음을 뺐겨 당치도 않게 “저 쪽빛 하늘 좀 봐!” 해서 동생을 웃기곤 했었다. 동생은 꿈을 화풍에 담았고 나는 책갈피에 나의 꿈을 접어 넣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겨질 줄도 모른 채 우리는 그 시절을 그렇게 만끽했다.  
  그러다가 나는 결혼을 해 동생과 헤어져 미국으로 왔다. 언니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미국까지도 따라 오겠다는 동생을 나는 냉정하게 떼어 놓았다. 외딴섬에 혼자 와있는 외로움에 몸서리 칠 때마다 나는 동생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써 보냈다. 속 깊은 동생은 인생을 나보다 훨씬 많이 살아 온 것처럼 내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곤 했다.
  그후 동생은 미국에 오는 꿈을 접고 서울에서 결혼을 했다. 제왕절개로 첫 딸을 낳았고 둘째 아들을 낳은 후 사흘만에 홀홀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 지금 죽으면 안 되는데...왜 자꾸 몸이 공중으로 붕붕 떠오르지? 미국 언니가 나보러 온다고 했는데...’ 하며 겁 먹은 큰 눈이 더 커지더라고 임종을 지켰던 언니가 훗날 내게 들려줬다.
  엄청난 소식을 듣고 나는 동생을 미국으로 데려오지 못한 내 불찰을 후회했다. 만일 미국에 데려 왔더라면 운명이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는 회한이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동생을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봄에 다시 피는 꽃을, 다시 찾아오는 제비를 보고도 슬펐다. 보고 싶어도 다시 볼 수 없는 동생은, 가끔 꿈에서 만났다. 꽃들이 지천으로 많은 들판을 둘이는 맘껏 뛰어놀다가 갑자기 동생이 사라진다. 나는 동생을 못 찾고 허망하게 꿈에서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나면 눈물이 눈가에 지물대곤 했다. 그런 날은 온종일 동생의 얼굴이 얼룩진 수채화로 내 마음에 슬프디 슬프게 남겨졌다.  
  동생의 무덤을 보고 숨이 콱 막혔던 그 순간들을 나는 잘도 넘겼다. 동생의 죽음이 운명이었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꼬박 삼 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이상하게도 동생이 떠나기 전 나는 왠지 동생에게 보라색 옷 한벌을 보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었다.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보라색 옷을 사러 다녔었다. 결국은 옷 한벌 보내지도 못한 채 동생은 세상이 온통 꽃으로 덮힌 봄날에 세상을 떠났다. 유난히도 보라색을 좋아했던 동생은 그림의 화풍도 짙은 보라색 톤을 많이 썼다. 떠난 뒤에 동생의 그림을 유심히 바라봤다. 자기의 죽음을 예측이나 했던듯 그림의 화풍이 모두 어둡고 칙칙했다.
  이 아침에 보라색 라일락 등꽃을 보면서 나는 동생의 상념에 마냥 젖어들고 있다. 자꾸만 보라색 꽃 사이로 동생의 모습이 슬픈 연민으로 떠오른다. 아름다웠던 보라색은 동생이 떠난 후 내게 냉정하고 차가운 색깔로 다가왔다. 아름다움을 활짝 펴 보이지도 못하고 나에게서 등을 돌려버린 동생. 하지만 나는 등 돌린 차가움을 가슴에 보듬고 따뜻하게 녹여주며 나도 보라색을 좋아해 보리라 마음을 먹는다.
  동생은 꽃으로 또 벌새로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인다.
  “언니! 너무 슬퍼하지마. 나는 항상 언니 마음에 있잖아.”
  동생과 나만의 화두는 사계절을 넘나들고 그 모습 또한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