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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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민수의 편지

2007.10.22 13:38

윤금숙 조회 수:1042 추천:108

민수의 편지

  금년에는 예년과 달리 사월인데도 비가 많이 온다. 꽃들도 이상 기온에 혼동이 되어 이른 봄을 알리는 동백꽃, 목련꽃 영산홍도 모두 마음대로 한꺼번에 피어 봄의 교향곡을 울리고 있다. 어디선가 자스민 향기가 싸아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토요일 아침이다.
  나는 토요 한국학교 꿈나무학생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어머니날이 머지않아 다가오니 ‘어머니날의 유래’를 어떻게 재미있게 가르칠까 하는 생각으로 어느 틈에 학교까지 오고 말았다. 거부반응 없이 학생들의 마음에 어머니의 사랑, 특히 한국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이 단원의 목표였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워브스타 시에 ‘안나 자비스’ 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안나는 신앙심이 두터운 여자로서 나이 사십 세가 지나도록 어머니 한 분과 결혼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안나는 너무나 슬펐다. 살아 계실 때 효도하지 못한 것을 깊이 후회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일 년에 단 하루라도 어머니날을 정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위로해 드리기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안나는 탄원서를 각처에 보내 결국 1941년 미국의 의회에서 오 월의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 날은 바로 안나가 처음에 어머니날 모임을 가진 날이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기로 정했다.
  한국에서는 오 월 팔 일을 어머니날로 정식 결정한 것이 1955년이었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의 어머니나 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어머니이다. 그 어머니의 고마움과 은혜를 우리들은 잊지 말고 살아 계실 때 효도를 해드리기로 해야 되겠다.
  이런 내용의 글을 다 읽고 한 사람씩 나와서 얘기하게 한 후 모두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나 작문을 쓰도록 했다. 쓰기 전에 나는 어머니에 대한 시와 짧은 수필을 읽어 주면서 분위기를 잡아 주었다.
  특히 여러분들의 어머니는 토요일도 쉬지 않고 한국어를 배우도록 이곳까지 마음을 쓰시니 더욱더 훌륭하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민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오기 싫은 학교를 토요일 아침마다 꼭 가야된다는 엄마 잔소리가 너무 싫어요. 정말 오기 싫어요.”
  나는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시간을 갖기 위해 “그런데 민수는 왜 왔죠?”하며 질문을 했다.
  민수는 어깨를 들썩하더니 “안 간다고 하면 엄마가 머리를 쥐어박아요.” 순간 다른 학생들이 와! 하고 웃었다. 민수는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항상 솔직하게 표현을 했다.
  어느 날, 짧은 글짓기 시간에 “오직”이라는 낱말을 넣어 글을 지으라며 민수를 지적했다. 민수는 대뜸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민수의 비상한 순발력에 놀라 말문이 막혀버렸다. “민수는 교회에 다니는 군요.” 했더니 뚱단지 같이 금방 표정을 바꾸더니 “가끔요. 그냥 내 엄마가 그래요.”하고 시치미를 땠다. 민수의 어머니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나는 벌써 알고 있었다.
  
  민수는 조용히 작문을 짓고 있었다. 무슨 기발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말은 엉뚱해도 속 깊은 민수가 너무나 신통하고 기특했다. 한참 말썽 많은 사춘기 나이인데도 때묻지 않은 순진한 얼굴. 민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낳기 위해 십 년동안 기다렸다. 엄마는 너무 속상하고 답답해서 유명하다는 점쟁이한테도 안가 본 곳이 없고 절에도 가서 백일 기도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엄마한테 교회에 가보자고 했다. 엄마는 무엇이든지 아기만 갖을 수 있다면 다 해봐야 되겠다는 각오로 친구를 따라갔다. 교인들이 엄마의 사정 얘기를 듣고 같이 열심히 기도를 했었다. 엄마는 삼 년동안 새벽기도를 다니며 아기 하나만 달라고 예수님께 졸랐는데 놀랍게도 나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해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그후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하게 되어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빠가 너무 속상해 엄마한테 화를 많이 냈었다. 나중에는 아빠도 할 수없이 엄마보다 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 아빠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자랐기 때문에 무척 행복하다. 그렇지만 가끔 나는 쓸쓸해서 동생이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끔 미국친구인 리챠드네 집에 간다. 친구 집에는 한국에서 데려 온 영수라는 아이가 있다. 우연인지 영수는 나와 이름이 비슷해서 더 친근감이 들고 친형제 같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엄마가 동생을 낳을 수 없다면 나는 영수를 친형제 같이 생각할 거다. 다행히 영수도 나를 무척 따른다. 나중에 자라서도 나는 영수한테 잘 해주고 싶다. 우리는 서로 쓸쓸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혼자만의 비밀이다.”
  민수의 글을 읽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시울이 젖어 시선을 창밖으로 보내니 파란 하늘에 민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 전 학교가 끝난 다음에 주차장에서 민수 어머니를 만났다. 잠깐 민수 얘기를 하다가 그녀는 생각난듯 “선생님! 혹시 부모 없는 한국아이를 알면 좀 알려 주세요. 오래 전부터 입양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국에도 가봤는데 쉽지가 않아요.”
  나는 젊은 민수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한마디의 말도 못했지만 마음은 벌써 서울에서 고아원을 하고 있는  친구한테 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