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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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비꽃 어머니

2010.04.06 12:47

윤금숙 조회 수:876 추천:94


제비꽃 어머니
                                                  
  사월 초, 서울은 한창 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를 따라 벗꽃, 진달래, 개나리, 라일락이 한꺼번에 만발해 있었다. 차 안에 앉아 있어도 꽃내음이 향긋하게 스며들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봄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슬프게도 한다. 떠나간 사람이 생각나고 잊혀졌던 사람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또 온 세상에 향기를 내뿜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 만진다. 어디선가 행운이 올 것만 같아 전화소리에 귀 기우리게 되고 우편함을 책크하게 된다. 행인들은 칙칙하고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고 파스텔 칼라의 옷으로 상큼하게 차리고 거리를 활보한다.
  봄을 무척이도 좋아하셨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만 사 년만의 한국 방문이다. 다음날, 어머니 산소에 가기 위해 우리 형제들은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서둘렀다. 산소로 가는 길에도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해 있었다. 어젯밤 꿈에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길 같기도 했다.
  벗꽃이 흰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끝없는 길이었다. 아! 봄이 몽땅 내 가슴으로 밀려들어와 꿈에서도 잠깐 정신이 아찔했다. 어머니를 바라보니 머리에도 눈썹에도 꽃이파리가 눈꽃처럼 내려앉아 화사하다 못해 슬펐다. 어머니
는 꽃너울을 쓰고 걷다가 나를 애잔한 듯 바라봤다. 봄볕에 눈이 부셔서인지 어머니의 눈가에 주름이 자글거렸다. 표현력이 뛰어났던 어머니이지만 꿈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살아 계실 때 어머니는 옷도 꽃도 주로 보라색을 선호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보라색을 좋아하게 되었다. 서두르다보니 꽃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 공원묘지 입구 꽃집에 차를 세웠다. 형제들은 제나름대로 어머니의 꽃을 고르고 있었다. 보라색 난초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와! 바로 저 꽃이다. 나는 보라색 난초가 담겨 있는 큰 프라스틱 통
앞으로 갔다. 꽃을 보자 나는 너무나 반가워 덥썩 한웅큼을 집어 들었다. 이게 왠일인가? 향기 없는 조화였다. 그
런데 멀리서 보니 진짜 꽃 같아 감쪽같이 속았다. 꽃잎이랑 잎사귀를 하나하나 만져보았다. 촉감은 부드러웠지만 생명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꽃집에는 생화보다 조화가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아줌마, 어떻게 생화보다 조화가 더 많아요?”
  꽃집 아줌마는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한번 꽂아 놓으면 언제까지 그대로 있으니 요즘엔 모두 조화들을 선호한다고 했다. 생화라고는 고를 만한 것이 없어 아줌마한테 맡겨버렸다. 흰 국화와 촌스러운 연분홍 카네이숀이 전부였다. 차라리 길거리에 만발한 개나리, 철쭉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걸. 나는 왠지 카네이숀에는 정이 안 간다. 너무나 많은 조화를 봐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온갖 꽃을 다 심어 봤어도 카네이숀만은 절대로 심지를 않았다.
  전혀 마음에도 없는 하얀 국화에다 카네이숀 몇 송이를 섞어서 다발을 만들었다. 마침 다음 달에 어머니 날이 오니 겸사겸사 잘 되었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 형제들은 미리 준비 못 한 불찰을 후회하면서 묘지로 향했다. 먼 곳에서 보니 봉긋봉긋한 묘 앞에 꽃들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네모 난 유리상자 속에 조화가 은퇴한 배우의 옷장에 걸려 있는 색바랜 옷처럼 후즐근하게 갇혀 있었다. 그 꽃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덤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더 초라하게 보였다. 조화나 생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 그래도 조화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게으른 우리들의 생각이 아닐까. 꽃을 유난히도 좋아하셨던 어머니한테 죄송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우리는 볼품 없는 꽃을 비석 앞에 묻어 놓은 항아리에 물을 붓고 꽂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비석 옆쪽으로 보라색 꽃 한 무더기가 작은 꽃다발처럼 피어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누워 계신 곳으로 짐작하면 오른 손 쪽쯤 되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
  보라색 제비꽃! 우리 형제들은 너무나 놀라서 모두 그곳으로 머리를 들이 밀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살아 계셨을 때도 어머니 집엘 가면 큼직한 백자에다 보라색 꽃들을 탐스럽게 꽂아 놓고 자식들의 얼굴은 안중에도 없이 먼저 “저 꽃 좀 봐라!” 하셨던 어머니였다.
  분명, 몇 년 만에 객지에서 돌아온 딸을 맞기 위해 어머니께서는 스스로 꽃을 피우셨을 것이다.




미주 중앙일보 4월 5일 2010년 문예마당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