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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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머사니

2011.12.28 12:58

윤금숙 조회 수:574 추천:20

                             머사니
                                                                                                                                       윤금숙
  
  “언니들! 머사니한테서 편지, 편지 또 왔어요!”
  영남이는 숨을 몰아쉬며 방문을 박차고 엎어질 듯 뛰어 들어왔다. 마치 자기한테 온 편지인양 흥분했다. 마침 강의가 다 끝나 모두가 방에 있었다. 그녀는 내게 다가오더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내 얼굴에 편지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내 손에 먼저 그 편지가 쥐어진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첫 편지 왔을 때 나 혼자 읽기 아까워 내놓기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한방에 있는 네 명의 공유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머사니’는 우리 방 식구들만이 쓰는 비밀용어이며 ‘모 사내’라는 뜻이고 애인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번 편지도 또 공개할 거야? 머사니가 너무 안됐다. 얘! 영남아, 이번에는 그냥 은희한테 먼저 줘.”
  귀엽고 가늘가늘하게 생긴 영문학을 전공하는 선주 언니는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잽싸게 침대에서 내려와 방 가운데 있는 탁자 앞에 먼저 와 앉았다. 그 언니는 편안한 성격에 인정이 많고 지혜가 있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또한 입이 무거워 비밀도 잘 지켰다.
  나는 그런 호들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저녁식사 벨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척 했
다. 영남이는 편지를 가지고 탁자 앞으로 와 앉았다. 의예과생인 애린 언니도 보물상자를 열어보는 호기심에 영남이의 코앞으로 머리를 바짝 들이밀었다. 영남이는 흥분을 하면 코가 더 벌름벌름 콧바람이 셌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불구경하듯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지만 난들 어찌 마음 깊은 곳에서 남모르는 작은 파장이 일지 않았겠는가.
  정외과생인 영남이는 전공에 어울릴 만큼 떠들석하고 달변이었다. 여학교 때 그녀의 별명은 “자유당”이라
고 했다. 남학생들이 아무렇게나 생긴 그녀의 얼굴을 보고 붙였다고 누군가가 귀띔을 해줬다. 처음에 영남이를 봤을 때 너무나 못생겨 깜짝 놀랬다. 하관이 튀어나와 사다리꼴의 얼굴형에다 납작한 코는 구멍만 두개가 뻥 뚫려 있으니. 거기다 횅댕그렁하게 큰 눈은 어디선가 본 듯한 틀림없는 소눈이었다. 바세도우병 환자처럼 눈알이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시원하게 큰 눈인데도 예쁘지가 않으니 차라리 작은 눈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까지 검의 퉤퉤 한데다 까만 깨를 쫙 뿌려놓은 것 같은 주근깨. 웃을 때면 귀밑까지 찢어진 입술 사이로 잇몸이 벌겋게 보였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 못생긴 얼굴인데도 그녀가 웃을 때만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호탕한지 열 명 웃는 소리를 혼자 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 영문도 모른 체 덩달아 배꼽을 쥐고 웃게 된다. 웃고 나서 왜 웃었지? 이유를 모르고도 그녀만 보면 모두가 굶주렸던 웃음을 한꺼번에 발산해 스트레스를 확 쏟아버렸다.
  “개봉박두! 기대하시라! 짜짜짱!”
  그녀는 내 허락도 없이 가위로 봉투의 윗쪽을 싹둑 잘라내고 입으로 훅 분 다음 엄지손가락과 검지로 편지지를 날렵하게 집어올렸다. 몇 번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굵은 저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공부벌레 두 언니들은 머리도 식힐겸 웬 떡이냐 싶게 읽기도 전에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미스 서! 아니 그냥 ‘은희’라고 부르죠. 우리의 만남은 운명...”
  영남이는 여기서 한 박자 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상대방의 눈을 빨
아들일 것처럼 강렬했다.
  “운명? 야! 누구는 살맛 나겠다.”
  언니들은 배를 쥐고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나 또한 영남이의 제스처와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자존심이고 뭐고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언니들은 빨리 계속하라고 아우성들을 쳤다. 영남이는 또다시 목소리를 가다듬
고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윙크를 보냈다. 우리는 또 영남이의 표정에 모두 뒤집어졌다.
  “다음 토요일에 르네상스에서 우연처럼 부딪치는 거예요. 절대로 자존심 운운하지 않겠으니...”
  영남이는 변사처럼 감정을 잡아 편지를 읽어 내려가더니 눈을 지긋이 감아버렸다.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고 영남이의 표정에 집중했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옆에 있는 의예과 애린 언니의 흰 가운을 어깨에 턱 걸치고 나를 향해 비웃듯이 말을 쏟아냈다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탐이 나더냐? 나오고 싶지 않으면 관둬라! 흑흑흑......”
  우리 셋은 책상을 치며 웃어젖혔다. 마침 옆방에서 웬일인가 하고 방문을 노크했다. 옆방 친구들도 방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들 또한 발을 동동 구르며 숨이 넘어갔다.
  어느 날은 두 방 식구들이 합석을 해 아주 각본까지 짜가며 연극을 했다. 그래서 우리 201호는 웃음이 넘쳐나는 휴게실이었다. 그 방은 복도의 맨 끝에 있어 사감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더없이 안전한 아지트이기도 했다. 우리 젊음은 이렇게 밤마다 웃음꽃으로 피어났다.
  대학을 갓 들어간 봄. 기숙사에서부터 나의 꿈많은 대학생활은 시작됐다. 한방에 침대 네 개가 ‘ㄷ’자로 있고 가운데에 네모난 탁자가 놓여 있었다. 안쪽의 좋은 자리는 두 선배한테 내어주고 신입생인 영남이와 나는 문쪽의 두 침대에 머리를 마주댔다.
  이 사건은 입소문으로 퍼져 신입생인 나는 기숙사 내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졌고 은근한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나는 일약 스타가 된 듯 우쭐해져 하루하루가 마냥 즐겁기만 했다. 한편 머사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그의 편지는 혼자 읽기 아까울 정도로 문학적이었으니까.
  어느 날 모 대학 법대생들과 주말에 등산을 갔었다. 같은 과 친구의 불참으로 영남이가 끼게 되었다. 머사니는 그 그룹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후 머사니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나에게 연서를 보내왔다. 별 특징이 없었던지 하루를 지냈는데도 그의 얼굴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영남이는 그를 기억한다고 했다. 그의 편지 내용은 법대생이 썼다기보다는 재능이 번뜩이는 문학도가 쓴 것처럼 표현력이 뛰어났다.
  “봄입니다. 내게 슬픔이었던 봄은 이제 화사한 미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목련이 수줍은 듯 살며시 고운 자태로 나를 유혹합니다......생략. 이 봄에 누군가와 같이 오솔길을 걸으며 두견화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은희 씨를 처음 봤을 때 전율이 온몸에 퍼져 아찔했었죠. 그 얼굴에 새초롬한 냉기가 예사롭지 않았죠. 하얀 피부는 희다 못해 푸른색이 겉돌았지만 도화빛의 도도함이 핏줄 아래서부터 은은하게 받쳐주고 있어 묘한 조화를 이루었죠. ”
  이렇게 시작되는 글은 서정적인 어느 단편을 읽는 것 같았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방 식구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머사니의 편지 내용에 모두들 넘어가 그 구절들을 시처럼 외웠다. 진솔한 고백과 표현은 우리를 감동시켰고 방 식구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기다리게 되었다. 나 또한 편지함을 열어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에 익은 하얀 긴 봉투가 없는 날은 허전했고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한편 어느 날 그가 편지를 끊는다면 방 식구들에게 내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아 조바심까지 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머사니가 보내는 편지 자체에 빠져 들어갔다. 답장 한번 안 하면서도 계속 연서를 받고 싶은 나의 교만과 이기심이라니.  
  그 편지는 공개적으로 낭독이 된 다음에야 겨우 내 손에 들어왔다. 편지를 전해 받은 나는 방 식구들이 있
을 때는 별거 아니라는 듯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모두가 소등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가면 나는 슬그머니 편지를 집어 책갈피에 끼워 넣었다.
  다음 날, 나는 강의가 없는 시간을 틈타 개나리가 만발한 오솔길을 따라 벤치를 찾아갔다. 그 벤치에는 나무그늘이 살포시 드리워져 고즈넉했다. 따스한 봄볕은 솜털처럼 포근했고 맑은 공기는 코끝에 연록색의 향기로 다가와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가지마다 새잎들이 싱싱하게 피어나 봄볕에 빤짝였다. 어디선가 높은 음의 새소리가 간간히 들려와 휘파람처럼 나를 유혹했다.
  나는 머사니의 편지를 꺼내어 다시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벤치의 옆자리가 갑자기 허전해졌다. 문득 아카시아 가지를 꺾어서 누군가와 가위바위보를 하며 하나씩 잎사귀를 따고 싶었다. 기억에도 희미한 머사니의 모습을 멋있는 말 탄 왕자로 둔갑을 시켜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 벤치는 아마도 내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흐믓하면서도 은근히 나의 오만을 부추겼다. 이렇게 대학생활은 개
나리, 진달래가 만발한 세월 속에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은은한 행복으로 만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201호 우리 방문을 노크했다. 코스모스처럼 호리호리한 학생이 의미있게 웃으며 네모로 접은 쪽지를 내밀었다. 메모에는 대학입구에 있는 ‘여로’라는 음악홀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노라는 내용이었다. ‘강현우’라는 이름이 단정하게 쓰여있었다. 머사니였다. 마침 방 식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안절부절못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음 강의에 들어가지 말고 차를 마시는 척 슬그머니 혼자 가볼까 하는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강의시간 내내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의시간이 끝나 기숙사 방으로 들어오는 길에도 혹시 그가 나를 먼 곳에서 보고 있지 않나 싶어 조심스럽게 앞만 보고 걸어가면서 결국은 기숙사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방에는 영남이가 혼자 등을 보이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일찍 들어왔네.”
  영남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을 뿐더러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한 번도 우울한 표정을 지어본 적이 없었고 언제나 떠들석하고 명랑했었다. 나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내 침대에 앉아 ‘여요전주’에 나오는 ‘가시리’ 를 외웠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나난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위 증즐가 태평성대/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영남이는 그때까지도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나 심각해 감히 말을 붙일 수조차 없었다. 얼마 동안 눈치를 살피다 결국 말을 했다.
  “영남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책상에 꽝하고 박아버렸다. 나는 너무 놀라서 침대에서 뛰어내려와 영남이 어깨를 껴안았다.
  “영남아, 웬일이야. 제발 말 좀 해봐. 답답해 죽겠다.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긴 거야?”
  그녀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꼈다. 항상 명랑했던 그녀였기에 울고 있는 것조차도 혹시 연극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그리고 그렇게 사는 엄마가 미워. 이혼해버리라고 하는데도 엄마는 그 끈을 못 놓고 있잖아. 그래서 아버지보다 어떤 땐 우리 엄마가 더 미워. 인간도 아닌 아버지를 왜 떠나보내지
못하는지. 언니한테서 편지가 왔어. 어떤 때는 아버지 앞에서 확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

  그녀의 아버지는 아들을 낳기 위해 평생을 다른 여자를 찝쩍댔지만 아들을 못 봤단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술집 여자를 만나서 드디어 아들을 낳더니 완전히 그 여자한테 빠져버렸다. 영남이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
인데 자존심이 강해 이혼도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며 살았다. 언니도 초등학교 교사였다. 언니는 절대 결혼하지 않고 엄마랑 같이 산다며 26세가 되도록 선 한번 보질 않았다.
  언니는 효녀 중에 효녀라 어머니와 모든 것을 의논하고 심지어 영남이 장래까지 결정을 해줬다. 그래서인지 그녀 집에는 아버지가 안 계셔도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의 홧병만 아니라면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평화스러웠다. 어머니는 아들 낳는 것이 한이 되어 둘째 딸을 낳고는 이름까지 남자 이름인 영남이로 지어버렸다. 죽어도 꼭 아들을 하나 낳고 말리라.
  아버지는 영남이가 딸인 것을 알고 그후 집을 나가 살면서 집에는 가뭄에 콩 나기로 왔었다. 그래서 어머니
는 공공연하게 누가 아들 하나 낳으라면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하고 화를 내버렸다. 어머니는 그럴 수록 영남이를 아들처럼 키웠다. 어려서부터 남자아이처럼 남장을 시켰고 머리도 상고머리로 깎여놨다.
  어머니의 한풀이 대상으로 영남이는 희생 돼가고 있다는 것을 사춘기 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후 어머니한테 사사건건 반항하고 은근히 아버지 편을 드는 척해서 어머니의 속을 뒤집어놓곤 했었다. 어머니가 편
찮으실 때마다 양심에 가책을 받지만 그렇다고 살갑게 구를 영남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 한을
품고 남자들한테 어머니처럼 절대로 당하고 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영남이는 반항적이면서도 어머니의 소원대로 남자처럼 성격이 되어 갔다. 활달하고 사교적인 영남이는 여학교 때는 연대장를 해서 주위의 인기를 독차지 했었다. 친구들이 미팅이다 뭐다 하고 같이 어울리기를 원해도 거뜰떠 보지도 않았다. 남자란 다 아버지 같다는 절대적인 생각이었다. 역시 대학의 전공도 남자다운 정치외교학과였다. 외교관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영남이는 마음 속에 아픔을 갖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명랑하고 씩씩했다. 영남이의 상처를 알고 나니 더
정이 갔고 어떻게 하든지 나는 좋은 친구로 그녀와 가까이 하고 싶었다.
  영남이는 속이 후련하다며 금세 본연의 모습으로 활짝 웃었다.
  “결국은 우리 엄마 팔자라고 생각해. 여학교 때는 별 생각을 다 해봤어. 엄마가 사실은 인물이 없거든. 그런데 언니는 아버지 닮아 인물이 나와는 천양지판이야. 나는 엄마 닮아서 이 모양이라고 대놓고 엄마한테 대들었어. 커가면서 내 인물 때문에 비관도 해봤지만 그렇게 생긴 걸 어쩌니. 다행히 머리는 좀 있는 거 같아서 죽어라하고 공부만 했었어. 내가 살 길은 공부해서 출세하는 거라는 걸 다행히 일찍 깨달은 거지. 출세할 거
야. 꼭! 그래서 우리 아버지한테 보여줄 거야. 나도 알아, 내가 못됐다는 거. 하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어. 미안해 은희야. 이런 이야기해서.”
  영남이는 남자답게 두 손을 꽉 쥐고 결심이라도 하듯이 책상을 한 번 탁 치더니 입을 악물었다. 선한 소눈에 빛이 형형했다. 갑자기 영남이는 침대 밑에서 무엇인가를 뒤져냈다. 작은 상자에서 담배 두 개비를 꺼내 나에게 한 개비를 내밀었다.
  “은희야, 냄새 빠져나가게 창문 좀 열어.”
  나는 웬 담배 하면서도 생전 피어보지 않은 담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영남이의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영남이를 따라서 검지와 중지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입으로 가져갔다. 영남이는 나의 당돌한 태도에 오히려 머뭇거리더니 라이터를 당겨 불을 꽃처럼 피어냈다.
나는 심호흡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담배를 길게 빨아 연기를 뿜어냈다. 동시에 사래가 들려 까무러칠 뻔했다. 영남이는 탁자에 있는 물을 주전자째로 내 입에 갖다 대줬다. 겨우 진정을 하고 나니 눈물 콧물에다 머리

가 핑 돌았다. 영남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코로 연기를 뿜어냈다. 다시 양쪽 볼이 오목하게 들어가게 빨아들이더니 입을 오무려 금붕어처럼 빠끔빠끔 공중에 구름 도넛을 올리고 있었다.
  나도 또 담배를 길게 빨아 들였다가 입으로 휴 소리와 함께 뿜어냈다. 머리가 다시 핑 돌았다. 앞이 어질어질했다. 몇 번을 악착같이 반복해댔다.
  “영남아! 네 생각에 너는 여자답지도 못하고 인물도 없다고 하지만 넌 정말 매력있는 애야. 너처럼 카리스마 있는 애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머리 비상하지, 책 많이 읽어 박식하지, 음악에 조예 깊지. 거기다 유머감각 끝내주지. 아!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 웩!”
  영남이는 티슈를 재빠르게 가져다 내 입에 갖다 대줬다.
  “야! 너는 그게 문제야.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 가지고. 네가 담배나 피워 봤겠니? 어린애 데리고 쓸데없는 짓 한 내가 잘못이지.”
  영남이는 나 때문에 너무 놀라 담배를 반도 못 피우고 꺼버렸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너한테 뿅 갔잖아. 자부심을 갖어. 너답지 못하게 무슨 못난 소리야. 인물이 뭐 밥 먹여준다니? 내 영원한 친구 영남이, 화이팅! “
  화이팅 소리와 함께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계속 화이-팅! 화-이팅! 소리만 연발했다. 완전히 주정꾼처럼 몸을 가누지를 못해버렸다.
  나는 진심에서 영남이를 위로했다. 가끔은 영남이가 장차 뭔가 할 것 같은 예감까지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남이는 집게손가락을 입에다 대더니 쉿! 하며 아무도 없는데 주위를 한바퀴 휘 둘러봤다. 내 귀에다 자기 입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은희야, 사람마다 다 사연이 있는 거 너 모르지. 애린 언니 말이다. 그 언니 앞에서는 절대 우리 아버지 바람 피운다는 말하면 안 된다. 절대 말하지 마!”
  나는 느닷없는 영남이의 말에 어리둥절해서 그녀를 뜨악한 얼굴로 쳐다봤다.
  “얘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그 언니 말이다. 이거 딸이야.”
  “그게 뭔데!” 하면서 나도 영남이를 쫒아 주먹을 쥐고 새끼손가락을 쳐들었다.
  “얘는 그것도 뭔지 몰라! 애린 언니가 첩의 딸이란 말이다. 언니도 예쁘지만 그 엄마는 더 미인이래. 그런데 그 엄마가 보통 여자가 아니래. 피아노 전공을 했다잖니. 머리도 좋고, 그 언니도 여학교 일등으로 졸업하고 의대도 수석으로 입학했대. 그러니까 애린 언니 앞에서는 절대로 바람 피는 얘기하면 안 된다. 알았지! 집집
마다 다 사연이 있어. 너는 좋겠다. 집안 좋고 인물 받쳐주고. 나는 네가 제일 부럽다.”    
  나는 정말 너무 놀라 영남이의 휘둥그런 눈을 멀뚱멀뚱 바라보다 엉겁결에 고개를 까닥했다. 기숙사 생활한 지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가정환경까지 어떻게들 알아냈는지 비밀이 없었다. 그래서 애린 언니는 별로 집안 이야기를 남하고 섞지 않았구나 싶었다. 여자들의 세상은 말도 많고 시샘도 많고 탈도 많아 항상 떠들썩하게 하루가 지났다.
  이런저런 소문과 미팅이다 뭐다 하면서 어느덧 여름이 다가왔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다 소나기가 퍼붓다 변덕도 많았다. 어느 날 밤 소등을 하고 막 잠이 들려는 찰나에 뜬금없이 영남이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얘, 은희야! 너는 몸 근질근질하지 않니? 언니들은 괜찮아요?”
  9시 점호가 끝나서 소등을 하고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영남이가 엎치락뒤치락 하더니 정적을 깼다.
  “어마! 너도 그러니? 나도 아까부터 뭐가 서물서물하는 것 같아 가만히 범인을 잡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
고 있었는데...”
  두 언니들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는지 하나, 둘, 셋 하면 불을 켜고 이불을 활따딱 뒤엎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영남이는 셋을 읊음과 동시에 벽에 있는 스위치를 올리려고 일어나다가 그만 바닥에 꽈다당 고꾸라졌다. 어둠이 온 방안을 흔들었고 영남이조차 삼켜버렸다. 잠시 죽은듯한 고요가 머리끝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영남이가 뇌진탕? 허겁지겁 어둠 속에서 스위치를 찾느라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그 위로 두 언니들이 엎어졌고 나는 겨우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어마! 영남아, 너 미쳤니? 언니들! 얘가 졸지에 미쳤나봐요. 웃는지 우는지 종잡을 수가 없어요.”
  정말 못말리는 애다. 우리를 놀려주려고 넘어지면서 죽은 듯이 숨을 쉬지 않고 우리가 하는 꼴을 보고 있었다. 한바탕 소동을 치며 깔깔대다가 문득 영남이가 홑이불을 확 까뒤집어 엎었다. 하얀 홑이불에 빈대가 발발대며 달아나고 있었다. 그것도 서너 마리가. 우리는 질겁을 해서 각자 침대 위로 발따닥 뛰어 올라갔다. 웬걸 내 홑이불에도 빈대 한 마리가 발발거리며 도망가고 있었다. 나는 건너편 선주 언니 침대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이렇게 밤마다 빈대 소동으로 난리를 치는 날이 많아졌다. 오래된 건물이라 벽 사이에서 서식을 하고 있다가 밤이 되면 슬금슬금 기어내려 오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는 빈대 노이로제에 걸렸다. 그러는 중에도 우리
들은 날마다 꿈같은 나날들을 지냈다.
  어느 날이었다. 외박을 하고 들어온 애린 언니 입에서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이미 눈이 게슴츠레해져서는 해롱해롱 헛소리를 했다. 핸드백에서 2홉들이 소주병을 꺼내더니 병나발을 불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
셋은 너무 놀라서 그 병을 뺏으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영남이는 오히려 우리를 말리고 있었다. 애린 언니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뜻일 것이다.
  “얘들아! 니들도 한번 마셔봐. 세상만사 시름 다 없어진다. 그래, 헤어지는 거야. 까짓것 죽어버리면 되지 뭐. 영남아! 누가 너보고 못 생겼대. 그래, 나보고들 잘났다고들 하지, 잘난 나 별 수 없다는 거 니들한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잖니. 글쎄 말야. 오빠한테 내가 채였다 이거야. 니네들 남자한테 채어본 경험 없잖아. 영남아, 너- 괜- 찮- 아. 내가 너라면 좋겠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그냥 듣고만 있었지만 영남이하고는 속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얼마 전 영남이 말이 애
린 언니가 유부남하고 좋아하는데 고민이라고 털어놓더란다. 영남이는 인물 잘난 거 별거 아니라며 역시 남자 쳐다볼 것없이 열심히 공부를 해서 남자들과 대결하는 길밖에 딴 길이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단다.
  기숙사 한방 식구들은 각자의 나름대로의 고민들을 보듬고 있지만 겉으로는 날마다 깔깔거리며 잘들 지냈다. 언니들은 역시 어려워서 속 얘기까지는 할 수가 없었지만 영남이하고는 어느 사이에 단짝이 돼버렸다. 잠이 들지 않는 밤이면 이불 속에서 머리를 서로 맞대고 낄낄대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사귈 수록 영남이는 진실했고 마음이 잘 통했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드디어 진짜 친구다운 친구를 얻은 기쁨에 날마다 일어난 일들을 영남이한테 보고했다.
  선주 언니는 영어 회화를 미국인한테 직접 배운다며 방과 후에도 외출이 잦았다. 주말에는 남의 눈이 두렵다며 옆구리에 영어책을 끼고 극장으로 음악홀로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선주 언니는 그 톰과 정이 들어버렸다. 시골에 부모들이 알면 당장 학교를 못 다니게 할 텐데 어쩌면 좋으냐고 고민을 했다. 톰은 미국에서 대학 2학년 때 군대에 입대했다. 2년 후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할 거란다. 아버지는 대학교수이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라 했다. 톰은 아주 잘 생겼고
집안이 좋아서인지 매너가 좋았다. 선주 언니랑 톰과의 데이트는 위태로웠다. 나는 영어 한 마디도 못하면서 언니를 위해서 가끔 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다녔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전혀 알아 듣지 못했지만 서로의 눈빛을 보고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방학이 지나면서 우리들은 한결 숙녀티가 나기 시작했다. 기숙사로 돌아온 우리는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언니들은 선을 보았다는 얘기며 집안끼리 중매 얘기가 나와 졸업하기만을 기다린다는 얘기들이었다. 집안 어른들과는 상관없이 선주 언니는 졸업하자마자 미국유학을 갈 거란다. 아마도 톰하고 암암리에 약속이 돼 있는 것 같았다.
  애린 언니는 중병을 앓고 나더니 학업에 열중해 역시 과에서 톱을 고수하고 있었다. 언니 또한 졸업을 하고
바로 미국유학을 떠난다고 했다. 영남이는 행정고시 준비를 하느라고 바쁘게 지냈고 나 또한 소설습작에 여
념이 없었다. 모두가 장래 일을 생각하며 목적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영남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목욕을 하러갔다.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깔깔댔고 탕 속에서 쉴사이 없이 이야기를 해댔다. 우리는 아무 이야기나 닥치는 대로 했다. 가끔 영남
이는 머사니 말을 꺼냈다. 그와 정식으로 데이트를 시작해보라며 넌지시 나에게 충고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가 나를 좋아하고 또 편지 내용을 보면 똑똑하고 진실성이 있어보인다고 했다.
  영남이 말을 듣고나면 나 또한 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또 나에게 꼭 소설을 써보라며 용기를 줬다. 나를 위해서 영남이는 진심으로 여러가지 장래 일까지 어떤 때는 언니처럼 선배처럼 말했다. 영남이는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 성숙했다.
  영남이와 같이 도서관에 앉아서 각자의 공부에 열심을 다했다. 우리는 봄이 가는지 여름이 가는지 계절에 대한 감각 조차 무의미 할 정도로 공부에 파묻혔다. 나는 영남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소설습작에 몰두했다. 언젠가는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리라는 꿈도 키웠다.
  우리 방 식구 넷은 서로가 정이 들어 어떤 일이 있어도 졸업 후 5년이 되는 모 날 모 시에 총장 동상 앞에
서 해후하기로 철석같은 약속을 했다. 팔목에 까만 실로 뜸을 뜨지는 않았지만 우리 넷의 약속은 꼭 지켜질 거라고 믿었다.
  어느덧 녹음은 초록의 향기를 맘껏 발산해 냈고 매미소리가 귓가를 나른하게 할 무렵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드디어 머사니에게서 만나자는 편지가 왔다. ‘우연처럼 만나기를...르네상스 음악감상실에서’ 끝에 멋을 부려 추신을 달았다. 방학 동안에 시골 산사로 고시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다. 방 식구들은 온통 흥분해서 난리가 났다.
  “네가 안 나가면 내가 대신 나갈 테니 인계 장에 도장 찍어!”
  영남이는 농반진반으로 놀려댔다. 내 속마음은 그를 만나지 않은 채 오랫동안 편지만 받고 싶었다. 누군가
가 나를 향해 연정을 키워간다는 사실을 맘껏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양심상 그렇게까지 내 오만을 부추기고
싶지는 않았다. 머사니를 한 번은 만나서 내 뜻을 분명히 밝혀야 되겠다는 결정을 했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일들을 이룰 때까지는 아무것에도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다. 비록 거절을 하러 나가더라도 마지막 내 모습을 머사니에게 인상적으로 남기고 싶었다. 나는 무슨 옷을 입고 나갈 것이며 그 사람 앞에서 어떤 표정으로 내 뜻을 밝힐 것인가 궁리했다. 나에 대한 머사니의 환상을 허물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성적인 내 성격과 반대인 영남이와 동행하기로 했다. 인물이 없는 그녀를 데리고 간다한들 내가 손해 볼 일이 전혀 없이 오히려 더 돋보일 것이다. 그녀의 그런 약점을 나는 이용했다. 나는 엷은 라벤더 스웨터에 진보라 주름치마를 받쳐 입었다. 영남이가 내 속셈을 눈치채고 나를 놀렸다.
  드디어 머사니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
  그는 깍듯이 인사를 했다. 영남이는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여유있게 그를 빤히 쳐다보며 인사를 받았다. 나는 영남이 그늘에 가려 그림자처럼 엉커주춤 하고 있었다. 약간의 자존심이 상했다. 기억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의 얼굴이 어쩐지 낯설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의 얼굴은 준수했고 키 또한 훤칠했다. 특히 그의 이지적인 눈매가 상대방을 꿰뚫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안정된 그의 태도는 예의 바르고 반듯했다. 오랜 친구처럼 그는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마침 실내에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열정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쇼팽 좋아하세요?”
  그는 내가 아닌 영남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영남이 또한 피아노를 전공할 정도의 실력이라 이야기는 피아노 곡에서 작곡가로 이어졌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머사니는 쉬지 않고 음악, 문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방면에 박식한 그의 대화는 그런 글을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남이 또한 달변인데다 실력파라 만만치가 않았다.
  영남이는 옆에 앉아 있는 나를 잊은 채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표정이 진지했다. 마치 자기가 편지의 주
인공인 것처럼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또한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영남이와 이야기를 했다. 마치 실력 대결이라도 하듯 둘의 대화는 끊임없이 풀려나갔다. 갑자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었지만 그 사이에 낄 수가 없었다. 분명 영남이가 나를 따라왔는데 내가 그녀를 따라 온 것같이 돼버렸다. 터무니없이 소외당하고 있었다. 두 사람한테 동시에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영남이와 같이 온 것을 후회했다.
  나는 점점 그들의 대화에서 멀어져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연히 대각선에 앉아 있는 한 커플에 시선이 멈췄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성냥개비로 탑을 쌓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자는 슬그머니 성냥개비를 엇갈리게 놓았다. 높이 올라갔던 탑은 졸지에 와그르르 무너졌다. 여자는 약이 오른다는듯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남자의 이마를 날렵하게 톡 튀겼다. 그들의 모습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그들의 자리를 스쳐 걸어나갔다. 내가 화장실을 갔다왔는데도 그들은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나의 존재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슬며시 의자에서 일어나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나는 기숙사로 향하지 않고 몇 정거장을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후, 나와 영남이는 의식적으로 서로를 피했고 편지함에 낯익은 글씨체의 희고 긴 봉투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끝



2011년 10월

<미주 한국소설> 창간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