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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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만남

2007.02.04 10:46

윤금숙 조회 수:602 추천:104

만남

  ‘벌릿츠’라는 어학센터에서 하루는 청탁이 왔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과정으로 한국어를 제 이 외국어로 택한 학생을 인터뷰하는 일이었다.  이번 인터뷰 평가에 따라서 학점을 인정해주는 시험인 것이다. 전날 팩스로 서류를 받아보니 한국 성씨가 아니고 일본 성에다 이름은 제니였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한국어로 크레딧을 받아 대학에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시험관 자격으로 약간의 기대와 긴장감에 설레이면서 웬만하면 시험 점수를 후하게 주리라는 마음의 결정을 미리하고 갔었다. 첫 인상이 잘 익은 사과같은 건강한 얼굴색에 빵긋 웃는 잇속이 쪽 고른 석류알같이 예쁘고 아주 상쾌한 여학생이었다.
  
  토요한국학교에서 수업을 마치자마자 나는 학원으로 달려왔다.  고 학년 남학생들을 가르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썽꾸러기 학생들을 상대하고 지친 몸인데 이 학생의 밝은 웃음을 보니 순식간에 피곤이 풀리는 것 같았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궁금했던 일이라 대뜸 물었다.  “네, 한국사람입니다. 제 이름은 제니라고 합니다.” 수줍은 듯 웃으면서 대답을 하는데 발음이 약간 꼬부라진 소리가 났다. 나는 순간 점수를 잘 주고 싶은데 어쩌나 하는 부담감이 왔다.
  “그런데 왜 성이 일본 성이세요?”  
  “아, 내 남편이 일본사람이예요.” 한다. 나는 아직도 대학생 같이 풋풋하고 어리게만 보여 결혼한 사람이라는 것을 미쳐 생각지도 못했었다.  궁금증이 순식간에 풀리고 나니 더 정이 갔다.
  “그랬었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상대방을 우선 긴장감에서 편하게 한 다음 시험 형식에 따라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가족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요하는 질문사항이 있었다.
  
  제니는 대구에서 태어났고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엄마 혼자 세 자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녀는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고아원에는 가끔 한국말을 잘 하는 미국사람들이 방문을 했다.  그 중에서 특히 제니에게 친절하게 하는 스미스 할머니가 선물을 사들고 가끔 왔었다. 제니는 그 사람이 올 /때마다 자기도 미국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고아원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언니를 스미스 할머니가 미국의 어느 가정에 양녀로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그 언니는 제니에게 가끔 편지를 보냈다. 중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 먹을 때마다 그곳 식구들이 생각난다고 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은데도 가끔씩 외로워 한국이 그립다고 했다.  제니는 먹을 것만  마음대로 먹고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것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소원대로 제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콜로라도의 어느 미국인 가정에 양녀로 오게 되었다.  다행히 양부모한테는 친자식이 없어 제니한테 정성껏 잘 해주었다. 제니도 별탈없이 열심히 공부를 잘 해서 모범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엘 들어갔다. 대학은 내 힘으로 공부를 하고 양부모에게도 살면서 꼭 은혜를 갚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직장에서 일본인 이 세를 만나 제니는 자기가 모은 돈으로 결혼을 했고 지금은 다섯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몇 년 동안 같은 직장에 있어보니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승진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든지 늦게라도 꼭 대학을 가야되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렇지만 결심과는 달리 직장을 풀타임으로 다니고 살림까지하면서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특히 남편이 적극 협조을 하겠다고 해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꼭 해내리라 결심했다.  그동안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주말이면 한국 타운에도 아들을 데리고 나와 한가하게 분수대 근처에 앉아있는 노인네들하고 얘기도 하고, 가게들도 기웃거리며 한국말을 연습했다.  한국책도 사다 틈만 있으면 읽었기 때문에 쓰고 읽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더 잘 한다.
  
  소문에 친어머니는 재혼해서 산다하니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대햑에서는 간호학을 전공할 예정이며 졸업하고 아픈사람이나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
  “만약에 돈을 번다면 어디에 먼저 쓰고 싶습니까?”
  이 질문을 하자 제니는 아련히 미소를 띄우며 평소에 생각해놓았던 듯 조용히 말했다.
  “한국에 있는 고아원을 먼저 도울 거예요. 내 꿈이고 꼭 할 거예요.”
  야무지게 말하는 제니의 눈이 빤짝하고 빛났다. 아마도 이 말은 순간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마음 속에 새겨진 말이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 서른도 채 안 된 내 딸 나이의 입에서 그것도 미국에서 사는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생각으로 다져졌을까?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제니는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제니 앞에서 나와 나의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온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감히 더 이상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형식적인 질문들을 서둘러 끝내고 말았다.
  시험이 끝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무조건 제니를 껴안았다. 제니도 껴안고 놓지를 않고 있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즘마! 내가 전화해도 돼요?”한다. 나는 제니의 눈을 쳐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되고말고, 내 딸하고 동갑이라 더 딸 같은 기분이 드는데, 우리 무엇이든지 서로 도우면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록 해요. 보통 인연이 아니잖아요.”
  
  다음 만날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인생은 정말 힘들 때도 많지만 이렇게 소중한 만남이 있음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절감했다. 언젠가는 제니도 엄마를 찾아서 또 다른 만남으로 기쁨과 보람을 찾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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