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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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별을 접는 아이들

2007.02.04 12:59

윤금숙 조회 수:736 추천:85

  별을 접는 아이들

                                                                  

  

  라일락 향기가 교실 안으로 살며시 들어와 코끝을 싱그럽게 하는 오월의 어느날, 나는 환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토요한국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소년의 가슴에는 연초록의 새싹이 소녀를 볼 때마다 하나 둘씩 돋아나기 시작했다. 징검다리에 앉아 물장난을 치고 있는 소녀를 먼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소년의 얼굴은 붉어지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러는 자신이 바보같기만 했다. 그리움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매일 개울에 가서 소녀를 기다리곤 했다. 소녀 또한 소년과의 추억이 어린 스웨터를 입고 죽어갔다. 소년의 불룩한 주머니에는 미처 전하지 못한 호두가 주인을 잃은 채 소년의 따뜻한 손길 안에 슬프게 만져졌다.


  아련한 내 추억의 한자락에 숨어있는 감정을 가슴에 담고 나는 잠시 동심의 그리움에 젖어 있었다. 요즘처럼 쉽게 좋아했다 뜸 들일 틈도 없이 거둬가는 감정에 멀미가 나는 때라 특히 이 단편을 택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장난꾸러기 창원이는 앞에 앉은 진호의 뒤통수를 할일없이 쥐어박고 있는데 진호는 마치 자기 머리가 아닌양 내맡기고 천연스럽게 앉아 있다. 오른편 뒤쪽에서는 여학생들이 색종이로 무슨 장난들을 하고 있었다. 집중이 되지 않아 여러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여전했다. 수업태도들이 천태만상이다.

  초스피드시대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서정적인 작품에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십 년을 한국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범생 여희는 알듯 모를듯한 엷은 미소 속에 영롱한 빛을 눈시울에 반짝이며 “선생님! 아름답고 슬픈 것 같아요.” 한다.

  공부에는 시큰둥하지만 남자답고 리더쉽이 강한 태영이는 “까짓것 좋아한다고 말해버리지, 말도 못해 봤는데 죽었잖아요. 에잇!” 자기 일인 것처럼 씩씩대는 모습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느꼈다. 제멋대로 떠드는 것 같았는데 그런대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학생들은 닷새 동안의 학교생활이 힘들어, 토요일 아침에는 늦잠도 자고 게으름도 피우고 싶을 것이다. 거의 부모들의 뜻에 따라 학교에 오기 때문에 내 눈에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모두에게 특별한 관심이 간다.

  사춘기를 맞은 학생들이라 나름대로 이중문화권에서 또 다른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 어느 학생은 선생님을 믿고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가슴 저려오는 아픔에 나 또한 그 아이의 마음이 되고 웃음을 되찾은 환한 얼굴을 보노라면 내 가슴은 기쁨에 찬다.

  유치반부터 십 년을 계속 다니는 학생들도 생각보다 제법 많다. 그런 학생들은 이 세인데도 한국어를 SAT 시험에 선택과목으로 택해서 좋은 성적을 내기에 나는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유 월 초에  졸업식이 있었다. 이 년 동안을 한 반에서 같이 지낸 학생들이라 정이 많이 들었다.

  졸업식날, 나는 아이들로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았다. 선물과 함께 헤어짐의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드를 열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끝에는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학생들로부터.” 하고 쓰여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왔다. 선물의 포장지까지도 정성을 들여 풀었다. 별모양의 큰 유리병에 온갖 색종이로 접은 크고 작은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리며 웃고 있었다. 순간 나는 공부시간마다 말썽이었던 색종이 접기가 바로 이 별이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졸업 날짜가 다가오니 공부시간에도 병을 채우기 위해 별을 접었던 학생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내 가슴을 찡하게 했다.

  큰 별은 엄지손톱만하고 작은 별은 애기손톱만하다. 그렇게 작은 별을 접느라고 진희는 이마가 책상에 닿도록 숙이고 있었나보다. 은보라색, 초록색, 금색, 온갖 화려한 색깔들이 한데 어우러져 눈을 부시게 한다. 천 마리의 학을 접는 마음으로 아이들은 이 별들을 접었을 것이다. 소원을 기원하며 선생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들의 꿈과 희망을 별 속에 차곡차곡 접어 넣었을 것이다.

  벽난로 선반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꿈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조용히 생각해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들여다보면 별들은 밤새도록 무슨 말들을 그리 많이 소곤거렸는지 서로의 몸을 기댄 채 곤하게 자고 있다. 작가가 희망인 영주별은 그 얼굴 표정이 꿈 속에서도 글을 쓰고 있는 것 같고 , 진수별은 컴퓨터에 빠져 밤새 불을 밝히고 있었는지 단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다. 부지런한 진희별이 기지개를 켜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별들은 꿈과 희망을 키우며 병아리가 부화하듯 그들도 유리병을 깨고 밖으로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창문틈새로 스며든 한 줄기의 빛에 반사된 별들은 제나름대로의 영롱한 색깔들을 과시하며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어둠이 서서히 깃들기 시작하면 별들은 하나 둘 하늘 높이 떠오를 준비를 한다. 별똥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하늘에 그들은 청옥으로 총총히 박혀 무수한 눈을 깜박거리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나는 벅찬 가슴으로 유리병을 꼭 껴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느 한 별도 유성으로 낙오되지 않고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비춰주는 금성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들은 분명 이 세상의 어두운 그늘까지도 환히 밝혀 주는 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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