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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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노인네라니

2007.02.06 13:38

윤금숙 조회 수:692 추천:79

노인네라니
                                                                                      
  
  요즘 들어 자주 일어나는 건망증 증세가 삶을 어지럽힌다.
  나이 들어서 그렇다고들 하지만 나는 젊어서도 약간은 건망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근래와서 조금 심한 것이 은근히 불안하다. 그중에는 웃고 넘어갈 일도 있지만 위험한 일을 저지를 때는 난처해진다.  
  날마다 반복하는 일에 혼동이 오는 것은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편은 갑상선 홀몬약을 하루에 한 알씩 먹어야 한다. 어느날 나는 갑상선약을 먹고, 내가 먹는 여성 홀몬약을 남편에게 복용케 했으니! 이 일을 어쩌나.
  운전을 하고 마냥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던가 네거리 신호등에서 방향감각을 잊어버리고 우물쭈물하는 일은 생명에 관계되는 일이라 걱정이 된다.
  세 개나 되는 자동차 열쇠를 다 잃어버리고 마지막 한 개가 남았다.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언젠가 몇 개 더 만들어 지갑에도 한 개쯤 여벌로 가지고 다녀야지 했다. 마침 홈 디포에 갈 일이 있어 벼르던 열쇠도 만들 겸 외출 준비를 했다. 집안에서 차고로 두어 번 왔다갔다 한 사이에 그만 한 개 남은 열쇠가 감쪽같이 숨어버렸다.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없이 락 스미스를 불렀다. 젊은이 둘이 왔는데, 그중 한 분이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어디서나 한국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열쇠 잃어버린 상황을 얘기했다.
  다 듣고 난 후, 그는 “그러면 노인네들 두 분이서만 이 집에서 사세요? 하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했다. 처음 들어보는 ‘노인네’ 라는 말이 너무 생소해, 아무도 없는 뒤를 둘러보았다. 분명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내가 정말 노인네로 보이냐고 반문을 했더니 그는 몹시 당황해 했다.
  내가 자칭 노인네라고는 하면서도 남이 노인네라고 하니 왜그리 불쾌한지. 마치 친정에 가서 남편 흉을 맘 놓고 보는데 가족들이 내 속마음을 모르고 맞장구를 칠때, 뒷맛이 씁쓸한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얼마 전 서울을 갔을 때, 친구하고 커피 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십여 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가 미안한 기색도 없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섰다. 기가막히다는 소리를 연발하더니 “글쎄, 운전을 하고 오던 중 라디오를 듣는데, 오늘 날씨가 섭씨 30도가 넘으니 오십이 넘은 노인네들은 외출을 각별히 삼가하기를 바란다고 하잖니. 기분 나빠 혼났네.” 냉수를 마시고 진정을 하더니 친구는 “하기야 며칠 전 덧버선을 오른 쪽은 신었는데 왼쪽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 속이 상해 훌렁 벗어버렸더니 한 쪽에 두 개를 신고 있잖아!” 그러니 오십이 넘으면 노인네라는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누르는 친구의 손에 검버섯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렇게 노인네 소리는 듣기 싫어하면서도 친구들끼리 맥도날 햄버거 숍에 가서는 앞다투어 씨니어 커피 하고 목청을 돋군다. 극장 앞에 가서 당당하게 씨니어 하니, 조조할인은 씨니어 상관없이 할인요금이라 하니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또 어쩌랴.
  어느 날, 후배가 안부 겸 한 친구의 전호번호을 묻길래 “213.....” 하고 말을 하는데 전화가 뚝 끊어졌다. 곧 바로 신호가 울려 받으니 후배는 깔깔대고 웃느라 말을 못했다.  
  “글쎄! 불러준 번호를 종이에다 적는다는 것이 그만  전화통 위에 있는 번호를 꾹꾹 누르지 않았겠어요.” 함께 웃고 났더니 기분이 훌가분해졌다.
  노인네라는 기준을 몇 살로 두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 십대에도 이미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하고 부정적으로 우울하게 산다면 그 삶은 이미 노인인 것이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절망에 무릎 끓지 않고 긍정적으로 사회적인 유대관계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65세만 되면 9회  말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요즘은 80대의 4분의 1, 70대의 3분의 1, 60대의 2분의 1이 스스로를 중년으로 여긴다.
  노인네 소리가 듣기 싫으면 젊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되겠다. 우선 건망증이라는 괴물이 내 머리 속으로 쳐들어 와 자리 잡기 전에 나는 머리속을 열심히 무엇인가로 채워서 재무장하려고 한다.
  컴퓨터를 배울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는 친구와 같이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느 날은 마우스를 거꾸로 잡고 몸부림치다 발견하고 혼자 웃게 된다. 인터넷을 배워 이메일도 하고 컴퓨터 속으로 열심히 들어도 가본다. 돋보기를 쓰고라도 책을 부지런히 읽을 것이다.
  그리고나서 노인네라는 별로 듣기 좋지 않은 소리를 들어도 화를 내는 대신 당당히 받아 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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