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를 그리며

2007.12.02 22:39

김동찬 조회 수:1021 추천:83

체험적 시론

     개똥벌레를 그리며


1.

   어릴 적 고향 마을엔 개똥벌레가 개똥만큼 흔했다. 개똥벌레가 느리게 움직일 때마다 작은 별빛으로 들판은 가득 찼다. 개똥벌레의 반짝임은 도시의 네온사인처럼 휘황찬란하지 않았고 여름밤의 달과 별을 가리지 않았다. 개똥벌레가 춤출 때면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려오곤 했다.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다가서서, 막상 고백을 못하고 혼자서 앓던 구시대의 사랑처럼 우리 곁에서 반짝이던 그 맑고 서늘한 빛.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의아해 하는 소설가처럼 나 또한 그 많던 개똥벌레는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면서 놀란다. 무주 구천동 깊은 골짜기에나 가야만 볼 수 있다고 하니 현대인들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천연기념물이 되었겠지.
   개똥벌레를 쫓아내버린 우리 인간들은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나. 매연과 소음, 오염된 강산을 만들어냈고, 각종 끔찍한 범죄로 신문이 가득 차 있다. 국가 간에도 테러와 전쟁으로 서로 죽이는 끔찍한 일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이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 종교, 민족, 이데올로기, 문화, 예술 등등을 믿지 않는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데올로기란 망령이 우리의 땅과 가족을 아직도 갈라놓고 있지 않은가. 허울좋은 이름으로 가면을 쓰고 개, 똥, 벌레만도 못한 짓이 사람들에 의해 버젓이 저질러지고 있다.
   내 시가 땀흘리며 밭을 가는 농부의 일보다 더 가치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시가 그럴듯한 명분 아래서 사람들의 골치만 아프게 만들까 봐 걱정이다. 박남수님의 '새'라는 시에서처럼 그것이 노래인줄도 모르고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개똥벌레처럼 투박한 이름을 가지고 여름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들릴 듯 말 듯한 수줍은 목소리로 빛나고 싶다.

2.

  미국으로 이민 올 때, 비행기가 이륙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늘 멀고 낯설은 세상, 넓은 곳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왜 눈물이 쏟아졌을까. 스스로 당황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나의 이중성은 꽤 오래된 것이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서울에서 객지 생활을 했다. 부모님과 고향이 늘 그리웠고 몸이라도 아플 적엔 더욱 심했다. 그러나 방학 때 집에 돌아와 있으면 고향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늘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다가도 막상 여행길에 나서면 그 순간부터 집에 들어오고 싶다.
  나는 낯선 곳에 서서 내가 떠나온 곳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 낯선 곳이 친숙해지면 다시 떠나고 싶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느낀다. 집이 가장 편안한 곳이라고. 하지만 집으로부터, 고향으로부터, 편안함으로부터, 내 자신으로부터, 문학으로부터 늘 떠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또 언제나 내 모국어의 아름다운 시들로 살아 돌아오고 싶다.  
  
3

   작년에 '심심한 당신에게'란 산문집을 하나 출간했다. 제목을 보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 심심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심심한 사람을 위한 책이라면 나는 바쁜 사람이니까 읽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바쁜 사람은 과연 심심하지 않을까. 물론 사전적 의미로만 생각하면 우리 현대인들은 산적한 일, 정보와 지식의 습득, 빡빡한 일정 등으로 심심할 틈이 없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웃과의 만남 속에서 외로움을 나누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갈증을 심심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역설적이지만 현대인들은 심심할 시간이 없어서 심심한 것이다.
   쏟아지는 정보와 기술의 범람 속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숨가쁘게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문학이 등불을 켜서 앞길을 밝혀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 속도의 시대는 문학보다 저 멀리 달려가고 있어서 문학이 앞서가기는커녕 좇아가기에도 숨가쁠 지경이다. 천방지축 날뛰는 이 시대를 진정시키고 정신적 방황으로부터 안정과 행복을 제시할 수 있는 문학인의 지성, 통찰력, 상상력을 나 자신으로부터 찾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현대인의 심심함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달래주는 일일 것 같다. 심심할 때, 이웃과 단절되어 오직 컴퓨터의 사이버 공간 속에서 홀로 걷고 있는 자신이 허망하고 덧없이 느껴질 때, 살아있는 사람의 숨소리와 이야기를 가지고 내 글이 독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독자의 이야기를 대신해주고, 기쁨을 들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내 체온과 입김으로 독자의 썰렁한 독방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심심한 당신에게 내 먼 여행 중에 겪은 낯선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너무 환해서 별빛이 보이지 않는 이 세상에 오래 전에 만난 '그것이 사랑인줄도 모르고 사랑을 하던' 개똥벌레의 수줍은 반짝임을 보여주고 싶다.

4.      

   체험적 시론이라고 하니까 쑥스럽다. 내가 시에 대해 무슨 '론'을 펼만한 작자가 못되기 때문이다. 작년에 발표했던 졸시 하나로 내가 갖고 있던 마음을 다시 정리해봄으로써 그 쑥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덮고 싶다.




  개똥벌레에게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세상의 빛이 되었던 너를 그린다.

그렇게 별처럼 초롱초롱
말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제 그런 방식의 사랑은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네가 사라진 들판은
피비린내만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그럴듯한 이름의 가면을 쓰고
종교를 말하면서 테러를 하고,
정의를 말하면서 전쟁을 한다.

목숨이 우수수 지는 가을의 길목에 서서
오래 전 여름밤에
수줍게 반짝이던 네 이름을 생각한다.



벌레

오늘에서야 알겠다.
왜 네가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던
종교, 이념, 민족, 사상, 문화, 예술....이 아닌가를,
사랑이 아닌가를,
시가 아닌가를.

정작
개,
똥,
벌레만도 못한
우리들을 피해
무주 구천동 어디엔가에
숨어 지낸다는 네가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그리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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