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날에 생각한다

2008.10.10 02:55

김동찬 조회 수:939 추천:63

   11월 1일은 시의 날이다. 최남선 선생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7년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날을 기념해서 제정됐다고 한다.  특별히 올해 시의 날은 더욱 뜻 깊다. 바로 그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탄생한 지 만 백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단에서는 한국 현대시 백주년을 기념하는 강연회, 전시회, 낭송회, 문학회 등이 화려하게 이어지고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정형시인 시조나 창가, 즉 불려지는 시로부터 읽혀지는 시로 완전히 바꿔진 것은 아니었으나 현대 자유시를 태동시킨 신체시의 원조라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는 크다. 최남선 선생은 의인화된 바다의 힘찬 파도소리를 빌어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체제와 낡은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밀려오는 바다에 실려 오는 자유와 꿈의 메시지가 전달되기 바랐던 그 시처럼, 나는 자유시란 이름이 단순히 ‘정형으로부터 자유로운 시형식’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담는 시라는 생각을 한다.
   자유시는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시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깨뜨렸다. 불려지고 읊어지기 위해서는 노래의 형식, 즉 어떤 고정된 형태가 필요한 것인데 읽혀지는 시로 전환되면서 그런 형식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자유시는 백년이 채 되지 않아 마침내 완전한 ‘자유’를 획득했고 현대인의 사랑을 받는 장르로 정착됐다.
   그러나 그 자유시가 너무나 큰 인기를 얻다보니 우리 한국인에게는 시라고 하면 자유시를 말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문제점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시에는 자유시도 있고 정형시인 시조도 있는데 ‘시의 날’이 자유시 백년을 기념하는 날로 축소돼 버린 것이다. 자유시가 서구에서 어느 날 굴러들어온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시를 사랑하고 갈고 닦아온 시심의 소산물이라는 사실을 이 시대의 문인들은 잊어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조가 홀대받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자, 한국 시조시단은 2006년에 뒤늦게 7월 21일을 ‘시조의 날’로 선포했다.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날이 1906년 7월 21일 대한매일신보에 ‘대구여사’라는 분의 현대시조 ‘혈죽가’가 발표된 지 백주년 되는 것을 기념해서 제정됐다는 사실에 적잖게 실망했다.
   시조시인들에게 한국 현대시 백주년 행사가 그토록 부러웠는지, 미국 독립기념 100주년, 200주년 하는 것이 그토록 멋져보였는지 모르겠다. 현대시나 미국 독립기념일은 실제로 그렇게 짧은 역사를 갖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왜 천년 시조 역사를 놔두고 현대시조 백년만을 강조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일이 너무 기뻐서 개천절보다도 광복절 행사를 더 크게 다루는 것과도 같다. 우리의 역사가 광복 후 60 여년에 불과하지 않고 오천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개천절 행사를 더 크게 치러야 함은 당연하다.
   현대시, 현대시조 백년의 의미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현대시가 추구하는 ‘형식과 정신의 자유로움’이야말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문인의 사명일 것이다. 시의 날이 됐건, 시조의 날이 됐건 기왕에 만들어진 날들이 뜻 깊은 축제의 날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유시의 실험정신과 열린 마음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뿌리는 한국 전통시의 수천 년 역사에서 비롯된 것임을 먼저 알아야 할 것 같다. ‘시의 날’과 ‘시조의 날’에 자유시, 현대시조만을 기리지 말고 우리 시의 오랜 뿌리가 되어준 시조를 기념하고 연구하는 일들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일회성인 기념식이나 기념행사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시조를 가꾸고 사랑하는 운동이 일어나 오늘날에도 시조가 활짝 꽃피게 됐으면 좋겠다.
   대체로 문화국가는 자신의 고유한 시가형식을 갖고 있다. 일본만 해도 그렇다. 현대일본에 단가의 원형을 심어준 것도 원래 백제의 왕인박사였다고 하지만, 그 기원이야 어떻든 일본은 와카나 하이쿠를 자신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백년 전통의 단가 전문지가 발행되고 있고 단가(短歌)를 창작하는 인구가 이백만을 헤아린다. 미주 일본인 커뮤니티에도 수많은 단가 클럽이 존재하고 신문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한 면을 전적으로 할애한다. 일본인들은 단가의 역사가 1250여년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며 실제로 매년 이를 기념하는 대대적인 축제를 연다. 시조 천년을 무시하고 낡은 골동품으로 치부해버리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우리의 독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음흉한 이웃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한국 현대시의 원점으로 여기는 시를 쓴 최남선 선생도 시조부흥을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인 시조작가였고 시조학자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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