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우, 나해철, 오정방, 김춘수

2006.05.16 02:53

김동찬 조회 수:494 추천:39

*** 131

어디에도 없는 이름
홀로
가슴에 붙이고 사는 이날

비에 바람에
그리 주체 못하고
흔들리며 아파해도
아무도 모르고

누우면 네 무릎인데
사람들은 
아니라고 한다

      최석우 (1968 - ) 「가슴에 묻지도 못하고 11」전문

최석우 시인의 시집 <가슴 속에 묻지도 못하고> 속에 들어있는 동제목의 연작시 중 하나다. 세상을 뜬 네 살 터울의 동생을 그리워하며 쓴 이 시들을 읽으며 나는 눈시울을 붉혔다.
나도 네 살 터울의 딸과 아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생각난다. 오래 전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가 파한 후 그들을 데리러 갔다. 큰 딸 아이가 남동생의 손을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장면이 어느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행복감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세 형님들도 그렇게 동생인 나를 지켜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과 최 시인의 부모님도 자식들을 보며 행복해 하시던 시간이 있으셨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
"누우면 네 무릎"이라는 싯귀에서 동생을 사랑하는 누나의 마음과 깊은 슬픔이 전해와 가슴이 아리다.

*** 132

졸업하면 선생님을 하고 시를 쓰겠어요
신설동과 모래내 말죽거리 성지를 순례하듯 이 땅의 서울을
종일 구르며 흔들리는 바퀴의 직장에서
찬바람 혹은 한 줌 희망이 들고 나는 천번씩 문을 여닫으며
뼈가 삭아 벌판이 떨어져나가는
허기와 피로의 방년가슴에 네가 키운 것이
시를 쓰는 것이라니 
부끄럽다 시를 쓰는 나와 시를 쓰지 않는 우리.
버스 안내양을 그만둘 생각은 없습니다
낮엔 일하고 밤에 강의를 듣겠어요
천년의 가뭄과 백일의 장마에도 단단한 씨앗을 맺고야마는
우리네 땅의 한 풀꽃처럼
대학 야간부 과차석에 입학한 네 얼굴이 웃고 있으므로
우리가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냐.
푸른 옷에 일하는 일터에서 보는 창밖의
불빛과 그늘. 종종 걸음으로 달려와 무너지듯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의 사념과 쓸쓸함.
버려둔 고향과 홀어머니와 육남매 동생들을 위한 네 사랑이
흰눈처럼 땅을 덮는 종소리로 울린 것이
선생님이 되는 것이라니
부끄럽다 선생인 나와 선생님이 아닌 우리.
슬픔에서 일어나 기다림으로 꿈으로 곧추서서 일하는
너를 볼 때면 쓰러져 눕기엔 아직 이르고 
이토록 기다리는 새벽빛은 곧 터지고야 말것이냐.

     나해철 (1956 - ) 「정정희」전문

   오래전 동아일보 난픽션 공모에 당선된 정태정씨의 「기름밥」을 읽지 않더라도 70년대에 콩나물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닌 나는 당시 버스 안내양들의 열악한 환경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지금 내 딸아이처럼 십대 후반쯤 되는 여자 아이들이, 허기와 피로의 방년 가슴에 키운 것이 시를 쓰는 것이라니. 정정희가 꿈꾸던 선생님과 시인은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부끄럽다. 시를 쓰는 나와 시인이 아닌 나. 
   그러나 정정희란 야간반 학생은 틀림없이 선생님을 하고 시인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오늘의 발전된 한국은 수많은 정정희가 불굴의 의지로 삶을 헤쳐나간 결과일 테니까.

*** 133

김선일, 한국의 서른 네살 젊은이 
그대는 죽지 않았다, 
심장은 멎고 호흡은 끊어졌으나
그대는 결코 죽지 않았다
울부짖던 목소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에 남아 있고
그대의 처절한 육성은 
지금도 지구촌에 메아리 치고 있다
그래, 잠시 더 먼나라에 갔을 뿐
결코 우리들의 기억에서 
그대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으리라
이라크 무장단체에 잡혀가
저들의 총칼 앞에 일시 무릎을 꿇었을 때
그대의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나는 살고 싶다’던 그 절규는
그대만의 외침이 아니라
그같은 절박한 순간이 닥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외칠 수 밖에 없을
지극히 당연한 절규가 이니겠는가
그대의 의로운 희생은 
더 많은 참변을 막아내기 위한 
숭고한 밑거름으로 오래토록 남으리니
불행한 조국을 위하여 원망을 거두고
고이, 고이 잠드시라
훗날 가기로 예정됐을 그 천국에서
편히, 편히 쉬시라

   오정방 (1941 - )「김선일, 그대는 죽지 않았다」전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134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1922 - ) 「꽃」전문

지난 육개월 간 김동찬의 시 이야기를 썼다. 나머지 반년을 마저 채우고 싶기도 했지만 여러 개인 사정상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계절, 사회분위기와 어긋나거나 작가의 생년을 확인할 수 없어 형식상  못 소개한 작품 등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시 속에 감춰진 보석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잘못 해석한 글도 있었으리라. 넓은 용서를 구한다.

꽃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꽃에 대한 애정없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시들의 이름을 불러 독자들의 꽃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 시들이 꽃이 되고 또 내 시 이야기가 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름을 붙여준 미주 한겨레신문 관계자님들과 내 시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신 독자님들 덕분이다.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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