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시간에

2007.02.15 04:48

김동찬 조회 수:349 추천:37

[문화의 향기] 미주 작가의 작품엔 우리 삶 이야기 가득

김동찬 시인 / 미주문협회장

아들을 데리고 미장원에 간 적이 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모르는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 수도 없고 아직 마무리가 안 된 복잡한 머리를 하고 있는 여성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기도 민망해서 자연 비치된 신문이나 잡지를 읽게 됐다. 병원 대기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료하기도 하고 따닥따닥 붙어 앉아 마주보이는 사람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을 수 없어서 탁자에 놓인 책들을 손에 들게 된다.

그런데 그런 곳에 비치된 책들은 여성 스포츠 패션 여행 관련 잡지 등이 주를 이룬다. 물론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읽기에는 그렇게 그림이 많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잡지들이 좋을 듯싶다. 그러나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 잡지들 사이에 미주 한인들이 발행한 문학지 한 권 정도 끼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글이란 작가가 글을 다 쓰고 마침표를 찍고 펜을 놓는 순간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읽어주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아무도 그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영원히 미완성 교향곡일 수밖에 없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춘수 시인의 시에 있는 '꽃'과 같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는 것처럼 독자가 읽어주었을 때 활짝 피어나 감동과 의미를 지닌 글로서 존재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미주 한인 작가들은 광고수입도 없고 잘 팔리지도 않는 여건 속에서도 한국어로 열심히 글을 써서 단행본을 출판하고 동인지를 내고 문학지를 내고 있다. 미주한국문인협회에서는 순수 문예지 〈미주문학>을 계간으로 발행하고 있으며 현재 통권 제 37호를 출판했다.

미주에서 활동하는 한인 작가들의 작품은 전업으로 글을 쓰며 평생을 지내온 한국 작가들의 것과 비교할 때 완성도가 조금 떨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어로 된 글이나 한국어로 쓰인 본국 작가들의 작품이 흠잡을 수 없이 훌륭하다 하더라고 미주 한인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남의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주 한인 동포들의 업소나 가정에서 미주 한인 작가들의 작품이 더 자주 눈에 띄고 더 많이 읽히게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미주 한인 문인들은 힘을 얻어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해 낼 것이다.

또 미주 한인들은 자신들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위로와 평안을 얻고 한인사회의 나아길 길을 모색해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인업소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에 연예인들의 가십을 읽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으나 잠시 향기로운 문학작품에 빠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미주 <중앙일보> 2007년 2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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