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산 역에서 찍은 사진

2007.03.19 02:54

김동찬 조회 수:495 추천:39

  나는 지금 사진 한 장을 내 앞에 두고 있다. 평통 한국회의를 마친 지난 3월 20일 해외 평통위원들과 단체로 도라산 역을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도라산 역을 방문한 기억은 평통회의 기간 중에 가졌던 여러 가지 일정 중에서 가장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도라산 역은 북한 동포들과 중국 및 러시아 사람들까지도 만나고 입국과 출국 수속을 담당할, 실질적인 북쪽을 향한 관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짓고 있었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악의 축’ 발언으로 한국인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부시 미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완화된 성명을 발표한 곳으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미주에 있는 동포들도 언론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만들어져 있는 남한 쪽의 최북단 기차역이다.
  나는 어릴 적 고향집이 기차역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기차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 기차를 타고 서울에 살던 형이나 누나들이 부모님을 찾아 돌아오고 떠나곤 했다. 당시에는 고속도로 같은 게 없어서 멀리로부터 그리운 사람을 실어오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방학을 해서 형들이 기차로 내려온다는 전갈을 받으면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역으로 마중 나가던 부모님이 생각난다. 또 성장한 나를 포함해서 우리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먼 곳으로 떠날 때는 어머니가 역사에 나와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발을 못박고 손을 흔드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라산 역에서 찍은 사진에 있는 내 등뒤로 "서울 56 km, 평양 205 km"라고 쓰여져 있는 커다란 이정표가 보인다. 평양까지 205 km. Mile로 계산하면 약 127 mile이다. 자동차를 시간당 60 mile로 달리면 불과 두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 짧은 거리를 50년이 지나도록 왕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사이에 있는 많은 기차역에는 얼마나 많은 한 맺힌 그리움들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부모님들이 속을 까맣게 태우면서 생을 마쳤을까.
  통일이 고향의 기차역에서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것처럼 쉽게 이뤄지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좌와 우로 나뉘어 총부리를 겨눈 적이 있는 남과 북이 하나의 나라로 합치는 데는 매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성급한 통일에 대한 낭만적 조급함이 통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라산 역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어려운 숙제의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통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끊어진 기차선로를 잇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도라산 역에서 불과 14 km만 이으면 된다. 이 작은 일을 통해 유럽까지 철도가 연결돼 남, 북한 모두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더불어 이산가족 만남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 휴전선과 체제를 그대로 놔둔 채로 경제적, 인도적 협조를 통해 통일에 대한 분위기와 절실한 필요를 무르익게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머뭇거리지만 말고 북한측도 어서 빨리 이 일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통일은 나중 문제고, 우선 도라산 역을 거쳐 남북을 오가는 통일 열차를 보고 싶다. 도라산 역을 방문해서 사진을 찍던 그 날, 우리 평통위원들은 철로 공사를 위해 기다리는 침목에 통일을 염원하면서 각자의 이름을 써넣는 시간을 가졌다. 그 침목 위로 평양 쪽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머리 속에 그려보며 가슴 벅찬 기적 소리를 환청처럼 들었던 건 나뿐 만은 아니었을 게다.  

---- 로스엔젤레스 <민주평통>에 실렸던 것임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7.07

오늘:
2
어제:
2
전체:
36,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