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위기에 관한 몇 가지 메타포

2005.09.12 00:46

김동찬 조회 수:404 추천:22

1. 해와 달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많은 사람들, 특히 여자분들 중에 해는 동쪽에서 달은 서쪽에서 뜬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서 저 또한 장난 삼아 그걸 주위의 분들에게 물어 본 적이 종종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착각은 과학적 진실에 대한 무관심에서 일어난 일이겠죠. 문학적 진실과 과학적 진실은 반대 개념이 아니고 반대처럼 보일 뿐이지 사실은 가슴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머리로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인 같은 개념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늘 진실은 머리로든 가슴으로든, 과학적이든 문학적이든,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통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만


2 열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게 있어, 그건 뭐든지 억
지로 안 된다는 거야. 소련 중국이 무너지듯이 남북통일도 어느 날 순식간에 올 수 있다고 생각해. 이런 저런 씨를 뿌려 놓으면 언젠가 몇 개는 사막에서도 살아
남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 거라는 그런 생각. 그럴까?


3. 우유

미국에 사는 사람들답지 않게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늘 우유를 냉장고에서 유효기간을 지내게 하고 버리게 되곤 합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우유를 가지고도 시를 쓴 시인이 있더군요. 무엇을 버릴 때마다 한 번씩 시가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하고 버리겠습니다. 아, 난 너무 소중한 것들을 별 생각 없이 버리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요. 여긴 아직 십이월 말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지난해에 버렸던 건 무엇이고, 새해를 맞으며 버려야 할 건 무엇이고, 또버리지 말고 시로 만들어야 할 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4. 위스키

언젠가 한국 나갔을 때 용호가 공항에 마중 나왔어. 호텔로 날 바래다 주었는데 엘에이에는 볼 수 없는 눈이 서울의 밤하늘에서 내리는 거야. 호텔 라운지로 갔더니 피아노 생음악 연주가 있고…… 죽이더군. 그래서 “위스키 온더락으로 두 잔!” 주문했더니 용호가 “한 잔만 시켜. 난 운전해야 돼”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나도 비행기에 시달린 몸이라 되게 피곤하더군. 위스키도 맛이 없고 독하기만 하고…… 그 때 그 생각했어. 우리 학창시절엔 몇 백 원 씩 걷어서 막걸리에 두부김치 먹으며 행복했었는데. 호텔에서 먹는 위스키보다 그게 훨씬 맛있었는데…….

5. 총

어린 시절 나는 무서워하지 않을 것을 무서워했다. 다박골 지나 상여집, 공동우물, 제줏집 뒷간, 바람불면 후우우 울어대던 대숲……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 뉴욕 테러도 그래서…… 비행기가 그렇게……지금은 사람이 무섭다. 몇 푼의 돈을 위해 방아쇠를 당기고 칼로 사람을 고기 썰 듯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총이 있으면 나 또한 어느 순간 쏘아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내 증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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