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2003.05.24 15:44

김동찬 조회 수:294 추천:41

비가 내렸다.
10번 고속도로는 어깨 위에 세기말을 짊어지고 있었고
길을 안내하는 표시판이 후줄그레 걸려 있었다.
나는 무거운 발을 끌면서
1999년 12월 31일 오후 세시를 가고 있었다.
스모그와 물에 젖은 세상의 우울한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알지 못하는 미래도
언젠가는 이렇게 잠겨가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이렇게 가는구나 중얼거리면서
가고 있었다.
그 때,
저무는 하늘 위로
아직 남아 있는 오늘의 햇살이 빗금으로 스미고
보이지 않는 상처들로부터
물질 문명의 딱딱함으로부터
젖어있는 무기력으로부터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으로부터
지나간 천년으로부터
물방울 하나 하나에 새겨둔 약속이 일어서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어두운 바다 위로 떠올랐다.
환하게 웃으며 저 건너편에서
손을 내미시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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