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그 노란 잎

2003.09.02 05:03

김동찬 조회 수:617 추천:44

오랜만에 서울을 만났다. 경복궁 앞 은행나무들은 이십년 전처럼 여전히 그 곳에 서서 노란 색종이로 나비를 접어 하나씩 날리고 있었다. 가을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입대를 하루 앞둔 나는 그 해 가을의 쌀쌀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젊음의 계절이 어떻게 시드는지를 보았다. 나무들이 환한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는 한편으로 낙엽이 한참이라는 것을 알았다. 맑은 나뭇잎 하나를 집어들었다. 내 손이 노랗게 물이 들었다. 나뭇잎 하나 하나에 머물고 있던 찬바람이 옷깃으로 파고들었다. 내 손에서 나뭇잎이 떨어졌다. 부채꼴 노란 손을 흔들며 안녕 대신 바보라고 말했다. 그 말뜻을 물어볼 수 없었다. 바람이 빠르게 그 이파리를 쓸어가 버렸으므로. 마지막 만남. 그렇다. 마지막 만남이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은행나무들은 수많은 연초록 이파리들을 새로 틔울 것이며 가을이면 입대를 앞둔 청년의 눈앞에 세상을 노랗게 만들 것이다. 그 이파리들은 찬바람에 나비처럼 떨어지고 그 날개에 팔랑이는 햇살을 스무살 눈물 많은 아가씨가 물기를 묻히며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이십년 전 내가 집어들었던 때묻지 않은 바로 그 노란 잎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찻길에 떨어진 이파리들이 바람이 지날 때마다 몸을 뒤척였다. 마지막 고운 순간들이, 그 위에 반짝이는 길다란 가을의 햇살들이 바보, 바보 하면서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은 작별의 인사를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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