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고 / 김영수

2005.03.12 08:11

김동찬 조회 수:652 추천:60

손놓고

     김동찬


가끔은 모든 걸 놓고
뒤뜰에 앉아 있으면

잠자리 한 마리 마른풀 위에 머무는 동안에도

바람이 지구를 밀고
저녁으로 가는 게 보인다


* 해돋이의 빛은 만남의 빛이라 하고 해넘이의 빛은 석별의 빛이라 한다. 만나서 반가운 빛은 기쁨 하나이겠지만, 헤어지는 서운한 빛은 그 등짝 그늘의 미묘함까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루해가 마지막 시를 쓰듯이 서녘하늘을 장미꽃밭으로 만들어 놓고 이내 그것을 거둬 들이는 심정을 우리는 "뉘엿뉘엿"이라는 말로 표현해본다. 소멸하는 빛과 어둠이 한 필의 베를 짜는 그 틈으로 새어나오는 그 미묘함에 "뉘엿뉘엿"이라는 말만큼 적절한 말이 없을 성 싶은데... 시인은 이말 저말 없이 가끔 앉아보는 뒤뜰 마른풀 위에 잠자리 한 마리 앉혀 놓았다. 문득, 초가을쯤의 해질녘 잠시 앉아 머무는 잠자리 날개에 저 뉘엿뉘엿함이 비쳐 파르르 떨고 있음이란!
육안으론 결코 보이잖는 저 떨림같은 시간의 눈금으로 그는 지구의 기척까지 감지해내었던가. '바람이 지구를 밀고 저녁으로 가는 게 보인다' 공전이니 자전이니하는 말보다 얼마나 살아있는 눈금 같은 말인지. 곤충이며, 바람이며, 하찮은 미물들도 다 저렇게 밀접하게 상관되어 이 지구를 밀고 있다. '가끔은...' 가끔에 토씨'은'이 붙어 느슨해진 말, 저 토씨만한 여유로나마 가끔은 저녁 뒤뜰에 앉아볼 일이다. 잠자리 한 마리 잠시 앉아 머무는 순간성 속에 바람이 지구를 밀고 가는 영원성도 보이지 않겠는가.(김영수 시인)

** 느티나무 동시조 홈에서 담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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