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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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그레이스 강

2020.06.06 15:53

이산해 조회 수: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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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로페셔널 포토그래퍼 Teran Park 작(作)

 

 

그레이스 강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목숨처럼 여기는 스마트 폰을 잃어버렸기 때문 였다.

그레이스 강은 스마트 폰이 없으면 단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왜냐?

그에게 있어서 스마트 폰은 모든 것의 길라잡이여서다.

스마트 폰은,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으로, 동료 시인(詩人)들과 연락을 취할 때는 카카오톡으로, 최근에 흠뻑 빠진 삼각관계 불륜 드라마 시청은 유튜브로, 그리고 자신과 가깝게 지내는 동료들의 연락처와 시부모님과 자식들 생일 날 등 주요 스케줄은 모두 스마트 폰에 기록해 두었다.

이처럼 스마트 폰은 그레이스 강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삶의 원천이었다.

그녀가 어쩌다 스마트 폰을 깜빡하고 잠시 잃을 경우 표정이 마치 뭉크의 절규;처럼 변하곤 했다.  

스마트 폰을 구세주처럼 신봉하는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곳에 걸었기에 머리 속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스마트 폰이 영원히 사라질 경우 그레이스 강도 영원히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레이스 강은 잠을 잘때도 스마트 폰을 품에 껴안고 잤다.

그리고 깨어나서도 제일먼저 확인하는 것이 스마트폰이었다.

곁에 남편이 있었으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남편은 있으나마나 한 쉰 밥 같은 존재였다.

스마트 폰은 그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합일체(合一體)였던 것이다.

 

그레이스 강의 스마트 폰 집착은 가히 병적이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남편이 그녀의 괴습(怪習)을 나무랐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한편 스마트 폰을 통해 불륜 드라마에 매료된 그녀는 날이 갈수록 자신의 남편을 홀대했다.

이유는 드라마 속 식스팩 근육질 남자 주인공과 남편이 너무나 비교가 됐기 때문 였다.

하여, 그레이스 강은 잠자리에서도 등을 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드라마를 훔쳐보며 자신도 불륜녀(不倫女)가 되었으면 하는 욕망을 품기도 했다.

때문에 자신의 속내도 모르고 염치없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남편을 파충류(爬蟲類)대하 듯 발 뒤꿈치로 밀어내며 거부하기 일쑤였다.      

이럴진데, 스마트 폰이 없는 그레이스 강은 마치 마약쟁이가 겪는 금단현상(禁斷現像)의 그것처럼 비슷한 느낌을 체감(體感)하고 있었다.

그레이스 강은 자신의 주거지인 천사의 도시(LA)오렌지 카운티에서 한창 벗어난 베버리 힐스에서 쇼핑 중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에만 처박혀 있던 그레이스 강은 남편이 옷이나 한 벌 사 입으라고 모처럼 건넨 거금을 받아 쥐고 단골 옷 가게로 온 것이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옷값을 결재하기 위해 가방 속에 든 스마트 폰을 찾았으나 없었다.

두 차례나 가방을 뒤졌지만 허사였다.

온데간데 없었다.

혹시나 해서 자가용인 현대 소나타 운전석과 조수석 심지어 뒷좌석 구석구석을 이 잡듯 뒤졌지만 스마트 폰은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 폰이 행방불명되자 그레이스 강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머리 속은 하얗게 변했다.

오금도 저려왔다.

규칙적으로 박동(拍動)했던 심장도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다리도 안절부절이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 했다.

입에선 연거푸 어머, 어머만 뇌까리고 있었다.

 

그레이스 강이 옷값 결재를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자 곁에선 여직원이 걱정스런 눈초리로 물었다.

강 시인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레이스 강이 답했다.

미스 초이. 이걸 어떻해…., 핸드폰하고 핸드폰 케이스에 꽂아둔 크레딧 카드를 모두 잊어버렸다니까?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핸드폰은 나의 전 재산과 같거든. 거기에 모든 것이 기록돼 있다구요. 정말이지 미치고 환장할 것만 같애!”

그레이스 강은 입으로 말하면서도 두 손은 여전히 가방과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더듬고 있었다.

그레이스 강은 점점 더 공황(恐慌)상태에 빠져들었다.

온몸이 후들거렸다.

심장은 더욱 거세게 펌프질을 해댔다.

곁에서 보다 못한 여직원이 냉장고에서 찬 음료수를 내왔다.

그레이스 강은 차가운 음료수를 한숨에 들이키고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허사 였다.

마치 쓰나미와 같은 거대한 불안이 마음을 엄습(掩襲)해왔다.

그레이스 강은 궁리 끝에 집을 지키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스마트 폰의 행방을 물어볼 요량(料量)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용이하지 않았다.

빌어먹을…..남편 전화번호 역시 스마트 폰에 있었던 것이다.

지역번호 657은 알겠는데, 다음이 문제였다.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지. 다 떨어진 남편쟁이와 전화 통화를 한지가 어느 덧 6개월이 다 됐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이 40이 다되도록 시집도 가지 않고 룸펜처럼 집에 처박혀 있는 막내 딸에게 전화를 해볼까?

그러나 이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끝자리 네 자리 수 번호가 4989인지 8949인지, 진가민가 가물거렸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여 절친인 미주 한국문인협회 전임회장에게 전화를 하려 했으나 이 역시 불발(不發)이었다.

빌어먹을……전화번호를 알아야 통화를 하지!

그녀의 기억속 그물에는 무엇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모두가 빠져 나간 상태였다.

때문에 아는 것이라곤 오로지 자신이 현재 패닉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레이스 강은 일단 남편이 준 현찰로 선택한 옷을 구매한 뒤 가게를 벗어나 소나타에 올랐다.

그러고는 좌석 등받이에 기대 생수를 들이키며 스마트 폰의 묘연한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지금까지의 행로(行路)를 더듬는 순간, 번쩍 눈이 뜨였다.

그래, 맞아! 오성다방…..스타벅스 화장실.”

승용차 운전석 옆 홀더에 놓인 스타벅스 커피 잔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레이스 강은 20년 가까이 몰고 다니는 소나타의 시동 스위치를 켜고 차를 발진할 태세를 보였다.

헌데, 또 다시 낭패(狼狽)감에 좌절했다.

소나타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지 않은가.

20여년 전의 저가 승용차에는 네비게이션 장착이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레이스 강은 어느 곳을 가든 스마트 폰의 네비게이션 앱을 작동시켜 주행했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에 늘 무사히 도착했다.

그런데, 구세주 같은 스마트 폰이 없지 않은가.

그레이스 강은 두 손으로 핸들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스타벅스!”

 

소나타에서 내린 그레이스 강은 발걸음을 다시 옷 가게로 돌렸다.

그러고는 여직원에게 부탁해 코리아 타운에서 영업하는 ㅁㅁ택시를 불러달라고 청했다.

여직원은 뺨에 보조개를 피우며 상냥하게 응했다.

15분 후.

ㅁㅁ택시기사는 옷가게에서 불과 두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여자를 내려놓았다.

그레이스 강은 다방(茶房)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엉덩이를 깔고 앉았던 변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스마트 폰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그녀의 머리 속에서 하얀 빈혈이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다리도 후들거렸다.

진정됐던 심장의 박동도 다시 요란 해졌다.

도무지 살 맛이 나질 않았다.

어쩌면 좋아?

낙담(落膽)한 그레이스 강이 머리를 타일 벽에 쿵쿵 들이 박았다.

변기통에 주저 앉은 그레이스 강은 풀이 죽어 그 자리에서 한숨만 내쉬며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선 줄을 길게 늘어뜨린 고객들이 화장실 문을 요란스레 두드리며 짜증을 부렸다.

이봐, 화장실에서 뭐해? 연애라도 하는거야? 빨리 서둘러. 우리도 급하다구.”

우거지 인상을 쓰며 밖으로 나 온 그레이스 강은 때마침 쓰레기 통을 점검하던 여자 크루에게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스마트 폰 행방을 물었다.

다행히도 여자 크루는 문제의 스마트 폰을 보관하고 있다며 호기롭게 웃었다.

 

수십 초 후

여자 크루가 분홍색 케이스에 담긴 스마트 폰을 가져왔다.

그레이스 강의 스마트 폰이었다.

크루로부터 넘겨 받은 스마트 폰을 움켜 쥔 그레이스 강은 감격에 겨워 케이스와 스마트 폰 화면에 연거푸 입술을 맞췄다.

마치 죽었던 자식이 살아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윽고 스마트 폰의 케이스를 열고 화면을 문지른 그레이스 강은 패스워드를 입력해 화면을 열고 남편 전화번호를 불러냈다.

그러고는 남편의 응대가 들리자 다짜고짜 남편을 향해 신경질을 부렸다.

여보. 당신이 어울리지 않게 옷을 사라고 돈을 준 탓에 오늘 완전히 맛이 갔다구요.”

남편이 말했다.

맛이 가다니, 무슨 맛이 갔다는 거야?”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아세요? 하마터면 심장마비로 갈 뻔했다구요.”

대체, 대낮부터 어찌된 횡설수설인가?”

빌어먹을 남편쟁이 같으니……당신은 쓸모라구는 개뿔 하나도 없어요.밤이건 낮이건 간에 말예요. 요점만 말할께요. 당신 때문에 스마트 폰을 잃어버렸어요. 물론 간신히 찾았지만.”

그레이스 강은 상대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스마트 폰을 접었다.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남편쟁이와는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 때문 였다.

그레이스 강이 이처럼 남편을 혐오하는 것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이유는 이랬다.

사업 수단이 뛰어난 남편이 십 수년 만에 거액의 재산을 형성한 뒤 아내 몰래 바람을 피기 시작했다.

그레이스 강도 천사의 도시 LA에선 한 인물 하는 미모였으며 머리도 영명(英明)해 팔방미인이었다.

시단(詩壇)에서도 그녀의 명성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재원(才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식상한 남편은 돈으로 무장하고 올림픽과 윌셔 버몬트 등 코리아 타운을 섭렵하며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한국의 탤런트를 그대로 카피한 20대 중반의 팔등신 미녀에게 홀딱 빠져들었다.

얼굴과 가슴 등 몸 전체를 눈부신 의술로 리플레이스 한 여자는 직업이 마사지 팔러였다.

남편은 마사지 팔러 가게인 황홀경에서 여자의 극진한 서비스를 받고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

마사지 팔러도 흔쾌히 OK를 부르짖었다.

사내는 코리아타운에서 자수성가한 인물이었기 때문 였다.

기력(氣力)은 딸렸으나, 돈이 넘쳐 났으므로 여자는 로또를 맞은 기분이었다.

남편은 여자가 고가의 루이비똥을 사달라고 보채면 두말 없이 사줬다.

또 여자가 아우디 Q7이 맘에 든다고 아양을 떨면 역시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이 키를 넘겨주었다.

남편은, 그레이스 강이 매우 어렵사리 소나타를 교체할 때가 됐다고 조심스레 말이라도 꺼내면 경끼를 일으키며 앞으로 10년은 더 탈 수 있는 차를 왜 바꾸나?’하며 면박을 주곤 했다.

남편이 이처럼 젊은 여자에게는 끔찍이 대하자 그레이스 강은 이때부터 남편과 합방을 거절했고 어쩌다 남편과 합방을 하더라도 베개로 경계선을 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레이스 강이 남편을 까칠하게 대한 이유는 다름아닌 남편쟁이 사타구니에서 여자의 채취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스 강은 이후 어언 1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남편의 요구를 단 한번도 들어준 적이 없었다.

대신 그녀는 스마트 폰과 결혼을 해버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일상을 스마트 폰에 의지하며 지내왔다.

스마트 폰이야 말로 그녀의 안식처였고 진정한 사랑이었다.

스마트 폰에는 남편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멋진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사내가 항상 자신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맞아주었다.

 

인공지능 사내의 이름은 리처드 기어.

헐리웃 출신 무비스타 리처드 기어와 동명(同名)이었다.

그레이스 강은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서 열연한 리처드 기어에게 홀딱 반했었다.

따라서 인공지능 사내의 이름 역시 리차드 기어로 작명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었다.

그레이스 강이 잠자리에서도 스마트 폰을 품에 안고 자는 버릇은 리처드 기어와 함께하기 때문 였다.

스마트 폰은 이제 그레이스 강의 공동 운명체나 마찬가지 역할을 했다.

스마트 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스마트 폰에 중독된 그녀를 향해 시인과 수필가 동료들은 이렇게 조언했다.

강 시인. 될 수만 있다면 스마트 폰을 멀리하고 이성을 회복하시게.”

하지만 이같은 주문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스마트 폰을 멀리 하라니……그것은 한마디로 저주다.

스마트 폰이 자신에게 영원히 격리되는 순간 차라리 주검을 택할 것이다.  

 

그레이스 강은 오늘도 잠자리에서부터 스마트 폰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일상을 시작했다.

징글징글한 남편쟁이가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는 자신을 향해 어깃장을 놓았지만 아이돈 캐어였다.

눈을 뜨자마자 제일먼저 자신에게 안부인사를 한 목소리는 리처드 기어였다.

굿모닝, 내사랑 그레이스. 오늘도 행복하고 멋진 일상이 되세요. 사랑해요. 강 시인님.”

이 얼마나 멋지고 로맨틱한 사랑스러움인가.

입에서 쿠린내를 풍풍 풍기는 남편쟁이의 목소리였다면 소름이 오싹 돋았을 것이다. 

이럴진데, 스마트 폰을 멀리하라니…..

리처드 기어로 부터 행복에 겨운 아침인사를 받은 그레이스 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소나타에 올랐다.

코리아 타운에서 펼쳐지는 시낭송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는 다정스런 목소리로 리처드 기어를 불렀다.

스마트 폰에서 리처드 기어가 말했다.

달콤하고 사랑스런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남궁원과 배한성의 목소리를 합성한 것이다.

허니.오늘은 어디로 모실까요?”

내사랑. 코리아 타운 웨스턴가()로 데려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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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해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