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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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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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베레타 92(Beretta 92)


살인(殺人)

여자의 주검에서 검출(檢出)된 탄환은 9mm패러벨럼이었다.

일명 죽임의 예술이라 불리는 자동권총 글록19(Glock 19)에서 발사된 것이다.

주검의 몸에는 모두 3발의 총알이 박혀 있었다.

첫번째 총알은 복부 뒤쪽의 췌장 미부(尾剖: 꼬리), 다음은 왼쪽 어깨뼈 견갑골(肩胛骨), 그리고 마지막 한발은 대뇌(大腦)반구 전방에 위치한 전두협(前頭葉)을 갈갈이 헤쳐 놓았다. 

 

LAPD 살인게 소속 스티브 혁(한국명: 혁거세)형사는 주차장 아스팔트에 널브러진 시신을 살피며 검시관의 설명을 귀담았다.

혁 형사님. 범인은 아마추어 총잡이예요.”

혁형사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짙푸른 푸른 눈동자와 윤기가 흐르는 금발이 매력적인 여자 검시관이 입꼬리에 미소를 드리우며 답했다.

탄환이 여기저기에 박힌 것을 뜻하는 거예요. 형사님도 잘 아시다시피 프로들은 이런 식의 중구난방으로 총알을 먹이지 않아요. 프로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과녁을 정확히 조준해 단 한방에 무너뜨리죠.헌데, 이 주검의 목숨을 끊은 범인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긴 것 같아요.”

스티브 혁 형사는 검시관의 가설(假說)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동수사에서의 추론(推論)은 늘 빗나가기 일쑤였다.

왜냐?

사건의 전말(顚末)은 항상 엉뚱하게 풀리기 때문이다.

 

피를 흥건히 쏟아내고 널브러진 주검 주변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검은색 정복 경찰 순찰대원  두 명이 순찰차 보닛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시신에서 눈을 뗀 혁 형사가 자신의 동료 파트너인 터키 출신의 여자 형사 소피아 데메트 아크바와 순찰차로 다가갔다.

잡담을 주고받던 두 정복 경찰이 기립 자세로 상대를 맞았다.

 

스티브 혁 형사가 데릭 캔드릭스라는 이름표를 오른쪽 가슴에 부착한 정복 경찰을 향해 말했다.

시신을 확보한 시각은 언제인가?”

정복이 말했다.

(Sir)! 오후 1시껩니다.”

혁 형사가 덧붙였다.

목격자가 있었나? 그리고 신고자는 확보하고…”

사건 현장을 목격한 증인은 없습니다 만, 신고를 한 선한 사마리아인은 확보했습니다. 코리안이고요, 52세 남성입니다. 직업은 웨스턴에서 리쿼스토어를 운영한다 했습니다.”

그리고 또, 뭐 없나?”

정복이 말했다.

신고자는 당시 코리안 계통 언론사인 정론직필 신문사에서 특정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 뒤 자신의 승용차를 주차한 주차장에 들어섰답니다. 그리고 문제의 시신을 발견했다 하더라고요. 신고인은 즉시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911에 신고를 했고요.”

당시 현장 상황은 어땠나?”

사건 소식을 접하고 몰려든 상당수의 코리안들이 현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데릭 캔드릭스라는 정복 경찰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으로 경찰모()를 만지작 거리던 또 다른 정복이 동료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사건 현장에 코리안들이 북적인 이유는 현장 주변에 정론직필 신문사와 미주중앙일보, 그리고 권위 있는 미주한국문인협회가 위치해 있기 때문 였습니다.”

 

소피아 형사가 정복의 이름표를 곁눈질 하며 말했다.

패트릭 커밍햄 순경.”

패트릭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정복이 상체를 고추세우며 말했다.

소피아 형사가 정복을 곁눈질하며 눈가에 미소를 지었다.

패트릭 순경.현장을 확보한 직후 범죄를 확증(確證)할 만한 단서 같은 물증을 발견했나요.”

정복이 말했다.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다행히 현장 훼손은 없었습니다. 시신의 위치와 주변에 흩어진 탄피도 그대로 였습니다.”

 

소피아 형사가 이번에는 데릭 캔드릭스에게 물었다.

시신이 널브러진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을 빠짐없이 캡처해 두었나요? 특히 여자 시신의 승용차 번호판도 필사(筆寫)를 했겠죠?”

물론입니다!”

두 정복 경찰이 마치 입을 맞춘 듯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대답했다.

 

소피아 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스티브 혁 형사가 말했다.

캡처한 사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내 메일로 전송하도록.”

혁 형사는 그러고는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두 정복 경찰에게 건넸다.

 

석비(釋妃)시인과 국대남(菊大南)시인

주차장에 널브러진 주검은 한때 유명세(有名稅)를 떨친 시인(詩人)이자 수필가였다.

국적은 코리안 아메리칸(미 시민권자)

이름은 석비(釋妃)

성별 여성

나이 56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원 

주거지 LA 베벌리 힐즈 

직업은 LA 코리아 타운에서 마사지 하우스 / 안마 출장소 / 호스트 바 / 룸싸롱 운영.

 

이력(履歷)은 과거 신군부에서 실력자의 영어 통역사로 활동하다 미국으로 망명.

LA에 정착 후 사업기반을 구축하며 여가 활용해 시()공부에 매진.

한국계 로컬 언론이 주최한 시 공모전을 통해 시단(詩壇)에 이름을 올린 뒤 적극적으로 활동.

시와 함께 수필가로도 보폭(步을 더하며 한국과 미주 지역에서 유명세를 드날림.

그녀는 특히 좌편향(左偏向)노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문민정부 때부터 보수 진영을 신랄하게 공격.

이같은 성향 때문에 보수 진영으로부터 종북 좌빨로 찍힘.

 

석 시인은 자신의 무기인 시와 수필, 신문 방송 칼럼을 최대한 이용해 보수 우익 진영 인사들을 싸잡아 시비(是非)하며 수위 높은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간담(肝膽)을 서늘케 하는 악필(惡筆)과 궤변(詭辯)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석 시인은 특히 천사의 도시 LA에서 활약하는 저명한 남자 시인 국대남(菊大男)과 견원(犬猿)지간으로 지내며 사사건건 시비를 벌였다.

 

발단(發端)은 보수성향인 국대남 시인이 신문 시론(時論)을 통해 좌파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난 한데서 비롯됐다.

특히 박원순 서울 시장의 성추문 사태와 관련된 국 시인의 신랄한 시평(時評)에 발끈한 석 시인이 까칠한 논박(論駁)으로 국 시인을 인신공격함으로써 감정의 골()은 극에 달했다.

 

두 사람의 감정 싸움은 박정희 정권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대남 시인이 종합 일간지 정론직필 미주지사 지면(紙面)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治績)  구국(救國)의 영웅으로 치켜 세우자 석 시인이 즉각 정론직필 일사일언(一事一言)’오피니언에 반론을 제기했다.

국대남 시인이 박정희를 구국의 영웅이라고 떠벌린 것은 궤변이며 자위(自慰)행위다. 세상이 아는 바대로 태어나서는 안될 귀태(鬼胎)박정희는 나라를 살리기는 커녕 집권 내내 도탄에 빠뜨리다 암살당한 파렴치 범일 뿐이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오늘 날 강대국으로 만든 대통령은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현직의 문재인 대통령 뿐이다.”

이같은 반론이 신문지면에 실리자 국대남 시인도 재차 반박에 나섰다.

전세계가 칭송한 박정희 대통령을 귀태로 망발(妄發)한 석시인의 뇌 구조가 매우 의심스럽다. 박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남긴 위대한 유산(遺産)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돼 있다. 지난 1960년대 초반, 지구별 최대의 거지 나라 대한민국을 단숨에 부국(富國)으로 이끈 그의 애국심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박대통령이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좌파들을 탄압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취한 공권력(公權力)이었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현재 박대통령이 뿌려 놓은 씨앗의 열매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이에 질새라 석비 시인이 재차 반론을 펼쳤다.

애니웨이박정희는 나라를 팔아먹은 토착 왜구이며 대한민국을 파탄 낸 원흉일 뿐이다.”

이런 식이었다.

석비 시인의 주어(主語)가 생략된 원색적인 비난에 더욱 반감을 느낀 국대남 시인은 LA에서 개최하는 각종의 문학행사장에서도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을 하며 으르렁거렸다.

두 사람은 공개 석상이외에도 자신의 시와 수필 등 붓()을 통해 상대를 공격하며 비아냥을 일삼았다.

석비 시인이 시로 국 시인을 공격하면 국대남 시인은 수필로 응수하며 서로를 매도(罵倒)했다.

 

예컨데, 석비 시인이 방송에서 5.18‘5.18 광주민주화 항쟁(抗爭)’이라고 말하면 국대남 시인은 지면을 통해 ‘5.18 광주 사태(事態)’로 표기함으로써 상대의 심기를 긁어댔다.

이를 보다 못한 동료 문인(文人)들이 두 사람의 화해를 종용(慫慂)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두 사람은 오히려 날이 갈수록 악감정을 증폭시키며 급기야는 죽여버리고 싶다는 적대감마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헌데, 이들의 바램이 실제 현실로 나타났다.

주차장 아스팔트에 널브러진 시신이 그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검시(檢屍)

LA 카운티 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진 석비 시인의 주검은 DNA 분석과 탄도 측정 검사를 거치며 사인 규명의 윤곽을 드러냈다.

주검의 최종적 사인(死因)은 총격에 의한 쇼크와 과다출혈 이었다.

또 한 DNA를 통해 시신의 실체가 코리안 혈통 미국인인 석비 시인으로 최종 판명됐다.

그리고 탄도 측정 결과 피해자와 범인이 맞선 거리는 약 6피트로 추정했다.,

이와 함께 범인이 현장에 버리고 간 글록19 자동 권총의 출처는 LA 인근 데스 벨리(Death Valley)사막 지역 내에 위치한 전당포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절도 전담반 소속 형사들이 글록 권총에 음각(陰刻)된 총기제조번호를 컴퓨터로 추적한 결과 밝힌 사실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범인이 사용한 글록 19 손잡이에서 지문이 채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총기분석요원에 따르면 범인은 글록 19 권총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장갑을 착용했거나 또는 손잡이를 갱스터 영화에서처럼 붕대 등으로 감아 사용한 것으로 예단(豫斷)했다.  

 

이처럼 신빙성 여부에도 불구하고 석비 시인을 살상(殺傷)한 총기의 출처가 밝혀지자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LAPD 살인계 소속 3급 형사인 앨버트 하몬드 형사를 비롯한 동료 여자 형사 린 앤더슨과 또 다른 동료 형사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스티브 혁 형사는 소피아 형사와 함께 지체없이 데스 벨리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스티브 혁 형사가 발빠르게 움직인 이유는 사건 관할이 다름아닌 코리아 타운이었기 때문 였다.

 

이봐, 혁 형사. 이번 사건을 통해 자네의 능력을 맘껏 발휘해 보라구. 그동안 코리아 타운에선 크고 작은 각종의 사건들이 줄을 이었네. 그럴 때마다 자네는 번번히 범인을 놓치고 말았지. 때문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제(未濟)사건들이 자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하여,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범인을 잡게나. 보라는 듯 놈의 손목에 은팔찌를 채워서 내 앞에 끌고 오란 말일세. 언더스탠?”

 

경광들을 번쩍이며 60번 하이웨이 램프로 진입한 스티브 혁 형사는 방금 전 반장이 피력한 주문을 떠올렸다.

그렇다.

반장 말대로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코리아 타운내 범죄 사건들이 비일비재했다.

. 얼마나 한심한 쪽팔림인가?

흥분한 탓에 혁 형사가 손으로 핸들을 내리치자 조수석에 앉은 소피아 형사가 말했다.

!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스티브 형 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속으로 범인을 기필코 잡겠다는 다짐을 할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종합일간지 정론직필 미주지사와 미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권위지() LA 타임스, 그리고 CNN Fox 뉴스 등 메이저 언론들은 석비 시인 살해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며 심층보도에 나섰다.

석비 시인의 변화무쌍 했던 과거의 행적을 추적하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언론은 석비 시인이 문단(文壇)에 데뷔했을 때만 해도 날카롭고 해박한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인지도를 높였다고 평했다.

석 시인은 자신의 무기인 철필(鐵筆)로 사상(思想)의 적들을 마구 무찔렀다.

그는, 자신들만이 선()이라고 교만을 떤 진보 진영의 가증스런 위선과 궤변을 질타했고 보수 진영의 지리멸렬한 무능과 안이함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랬던 그녀가 느닷없이 돌아섰다.

좌파 중에서도 극()좌파로 변신한 것이다.

하여 미주한인문단(美洲韓人文壇)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석비 시인의 360도 변신에 뜨악한 표정들이었다.

석비 시인의 이같은 변화무쌍은 자신의 인지도(認知度)를 끌어올리기 위해 계획한 위선(?)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衆論)이다.    

 

블랙 로즈(Black Rose)

살인에 사용된 글록 19 자동 권총은 데스 벨리에 위치한 전당포(Pawn Shop)폭풍의 기사에서 판매한 것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LAPD 산하(傘下)총기관리국이 컴퓨터에 등재(登載)한 총기 판매 현황 기록을 확인한데 따른 결과였다.

따라서 스티브 형사 팀은 생고생을 하며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됐다.

혁과 소피아 형사가 철재를 덧댄 입구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서자 팔뚝과 목에 전갈과 코브라 문신을 한 건장한 백인 대머리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두 형사를 째렸다.

소피아 형사가 코브라문신을 향해 방패 배지를 들이댔다.

힘의 상징인 방패 배지(남근男根을 형상화 한 파커 빌딩이 음각돼 있다)를 곁눈질한 코브라 문신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사 아가씨, 무엇을 도와드릴갑쇼?”

소피아 형사가 8X8 크기의 컬러사진을 보이며 말했다.

이봐, 사진 속 글록19를 이곳에서 판 것으로 알고 있어.사실이야?”

사진에 시선을 고정시킨 코브라 문신이 양미간을 찌푸리고 글록 19를 살폈다.

그러고는 수초 후 입술을 움직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1주일 전 이것과 같은 종류의 글록을 판 기억은 있어.”

소피아가 말했다.

운운하지 말고 정확한 답을 말해.권총 총신에 총기 번호가 나열돼 있잖아. 그걸 판매 대장(臺帳)과 확인해 보란말야.”

소피아 형사의 부드러웠으나 단호한 목소리에 제압당한 코브라 문신이 전당 물품이 빼곡히 진열된 유리 진열장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열장 귀퉁이에는 한입 베어먹은 애플 심볼의 구형 맥북 데스크 톱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장신(長身)의 코브라 문신이 허리를 구부리고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고는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려 글록 19 총기 번호를 입력해 나갔다.

정확히 30초 후, 문제의 글록 19 판매 일자가 클로즈업 됐다.

판매를 확인한 코브라 문신이 말했다.

"지난 1주일 전, 그러니까 화요일 오후 2시께 판매 했네."

스티브 혁 형사가 말했다.

지금 화면에 뜬 판매 내역과 총을 구입한 구매자의 모습을 CCTV 녹화 필름으로 볼 수 있겠지?”

동양인 캅(형사)이 명령조로 말하자 비위가 상한 코브라 문신이 빡(Fuck)하고 소리를 질렀다.

감히 동양인 주제에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에 심기(心氣)가 뒤틀린 것이다.

이를 알아챈 소피아가 두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이봐, 여기서 영업을 계속하고 싶으면 우리말에 고분고분 해야 돼. 물론 우리의 요구가 귀찮겠지. 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코브라 문신은 나긋나긋하게 생긴 여 형사가 영업 취소 운운하며 협박성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자. “옛써! 오피써!”하고 빈정거린 뒤 혁 형사의 요구를 수용했다.

 

컴퓨터에서 출력한 총기 판매 대장에는 글록 195백 달러에 판매한 것으로 기록했다.

권총과 함께 9mm 총알 20개도 함께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력한 판매 대장을 손에 쥔 스티브 혁 형사가 코브라 문신을 곁눈질 하며 말했다.

글록을 판 날짜의 CCTV를 모니터 해야겠다. 지금 볼 수 있겠지?”

코브라는 대답대신 목구멍에서 가래침을 끌어 올려 보라는 듯 캭!하고 내뱉고는 전당포 계산대 뒤에 위치한 사무실로 사라졌다.

10여 분 후.

코브라 문신이 손에 휴대용USB 플래쉬 드라이브를 움켜 쥐고 나타났다.

코브라 문신은 곧바로 USB를 컴퓨터에 연결해 구동시키고는 화면을 가리켰다.

두 형사가 동시에 시선을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 시켰다.

화면 한 켠에서 스크롤하는 타임머신은 1355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첫 장면은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여성이 진열대에 다가서며 코브라문신에게 말을 걸었다.

코브라문신이 응대하자 여자는 선글라스를 벗고 매우 빠른 억양으로 무엇인가를 주문했다.

확대한 영상 속 여자는 대략 30대 초반의 미녀로 히스패닉계로 추정됐다.

눈매가 남미 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주문을 받은 코브라 문신이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두 팔을 벌리고는 계산대 뒤 켠에 설치한 진열대 유리문을 열고 세정의 권총을 꺼내 왔다.

 

이들 권총 가운데는 석비 시인에게 총알을 먹인 자동권총 글록19도 포함돼 있었다.

코브라 문신은 유리 진열대 위에 펼쳐 놓은 권총을 집어 설명을 곁들이며 가격을 말했다.

히스팩닉계 여자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결정을 한 듯 우아하고 세련되게 생긴 글록 19를 최종 흥정했다.

여자가 글록19를 집어 들자 코브라 문신이 말했다.

핼로, 뷰티풀. 오늘 밤 이 가이(Guy)와 뜨겁게 즐겨보라구.”

여자는 대답대신 음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여자가 샤넬 지갑에서 크레딧 카드를 꺼내들자 코브라문신이 정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훈계 하듯 말했다.

뷰디풀. 이곳 데스 벨리에서는 크레딧 카드는 무용지물 이라구. 오직 캐시(현찰)만 통용돼. 언더스탠?”

여자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이번에는 루이비똥 가방 안에서 주름 하나 없는 빳빳한 1백달러 지폐 7장을 꺼내 사내에게 건넸다.

권총과 탄환을 합친 가격이었다.   

돈을 지불하고 총기를 건네는 장면까지 모니터 한 혁 형사와 소피아는 코브라문신에게 USB 플래쉬 드라이브를 잠시 빌리겠다고 요구한 뒤 자료를 챙겨 일어섰다.

두 형사가 전당포 '폭풍의 기사'를 벗어나기 직전 코브라문신이 물었다.

헌데, 형사 나리들. 그 총이 무슨 문제라도 일으킨거야?.”

소피아 형사가 답했다.

네가 건네준 글록19가 유명한 코리안 여()시인의 목숨을 끊었어. 때문에 우리가 나선거야. 물론 당신은 총을 합법적으로 판매한 죄밖에 없어. 하지만 기분은 더럽겠지….안그런가?”

코브라문신이 소리를 질렀다.

!”

 

시객(詩客)의 밤

미 서부지역 코리안 시인 협회가 주관한 제35시객(詩客)의 밤이 개최됐다.

장소는 LA 코리아 타운에 위치한 정론직필 미주지사 대강당이었다.

5천 스퀘어 규모의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룬 이 날 행사에는 미주 전역과 아시아, 한국및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는 문인(文人)들이 몰려들어 한껏 흥취(興趣)를 돋구었다.

 

시인들의 신작(新作)시 발표와 시 낭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시객의 밤이 파안대소(破顔大笑)를 동반하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즈음이었다.

행사장 입구에 두 남녀가 들어섰다.

남녀 가운데 아름다운 검은눈동자를 반짝이는 중동계 여성이 행사 요원을 향해 방패 배지를 보이며 말을 걸었다.

즐거운 행사장에 불쑥 끼어들어 미안해요. 저는 소피아 형사고, 옆에 분은 스티브 혁 형사예요.”

난데없는 공권력 출현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행사 요원이 혁 형사를 곁눈질했다.

동양인이었기 때문 였다.

순간 상대의 심리를 꽤 뚫은 혁형사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저희가 찾아온 이유는 오늘 행사에 국대남 시인이 참석할 것이라는 귀띔 때문입니다.”

행사 요원이 말했다.

국 시인님은 행사장 귀빈석 맨 앞줄에 앉아 계십니다.”

행사 요원은 그러고는 국 시인을 모시고 오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수초 후.

감색 더블슈트 정장에 체크무늬 넥타이로 외형을 갖춘 국대남 시인이 두 형사 곁으로 다가왔다.

영문을 몰라 해하는 국시인의 표정을 읽은 스티브 혁 형사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LAPD 살인계 소속 스티브 혁 형삽니다. 제 옆에 동료는 소피아 형사고요.”

국대남 시인은 그제서야 형사의 방문을 이해했다.

다름아닌 살해당한 석비 시인 때문일 것이다.’

국시인도 손을 내밀어 혁형사의 악수를 받았다.

그러고는 혁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헌데, 어찌해서 저를 찾으셨소?”

혁형사가 답했다.

선생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석비 시인의 피살건()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뭣 합니다만, 현재LAPD 살인계에서는 선생을 유력 혐의자 선상에 올려 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순간 국대남 시인이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때문에 주변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세사람에게 꽂혔다.

이봐요, 혁형사. 방금 뭐라 하셨소? 내가 석비 시인을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이라고….”

혁형사가 말했다.

컴 다운 하십시오. 어느 범죄사건이나 원치 않았어도 용의자는 있기 마련입니다. LAPD가 선생을 용의선상에 둔 이유는 선생께서 평소 석비 시인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지냈다는 주변 진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선생께선 심지어는 석비 시인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극언도 서슴치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제 말에 어폐(語弊)가 있습니까?”

“……..?”

답이 없으신 것은 인정한다는 묵언(默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따라서 선생께서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해 자기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즐거운 행사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충분히 즐기시고 이틀 뒤 다운타운에 위치한 LAPD 파커 센터로 걸음 해주십시오.”

단호 했으나 최대한 예를 갖춰 상황을 설파한 스티브 혁 형사는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머리 속에 스캔했다.

굳은 표정의 국대남 시인은 충격 때문인지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세사람의 말이 길어지자 차츰 여타 문인들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걱정스런 시선으로 국 시인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몰려든 동료 문인들이 자신의 어깨와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하자 국 시인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이봐요, 혁 형사. 너무 갑작스런 상황에 황망(慌忙)할 따름이오.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지경이오. 아무튼 내가 석비 시인 살해사건에 혐의자로 지목됐다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구먼. 내일모레 경찰서에 출두 하겠소.”

스티브 혁 형사는 다시금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한국식으로 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뒤 소피아 형사와 행사장을 벗어났다.

 

정론직필 신문사를 빠져나온 소피아 형사는 조수석에 앉아 벨트를 조이며 혁 형사에게 말했다.

. 다음 코스는?”

혁 형사가 말했다.

존 도우(John Doe:신원 불명의 사람을 지칭)를 찾아야지?”

그래서요?”

소피아가 말한 문제의 히스패닉계 아가씨를 잡으려면 우선 오렌지 카운티에서 암약하는 라티노 갱스터 그룹 '서던 블러드(Southern Blood)'를 접촉해야 돼. 그룹 행동대원 가운데 내 정보원이 있거든.”

믿을만 해?”

물론이지!”

여자야, 남자야?”

남자.”

스티브 혁 형사는 하이웨이 74번 오르테가 램프에 들어서자마자 페달을 힘주어 밟았다.

순간 기름을 흠뻑 흡입한 8기통 엔진이 미친듯이 회전하며 차를 앞으로 밀쳐냈다.

하이웨이를 질주하는 동안 두 형사는 라디오 FM의 주파수를 재즈(Jazz)스테이션에 고정 시켰다.

운전석과 조수석 문짝에 부착된 스피커에선 레드 가란드 트리오가 연주하는 'We Kiss In Shadow(그림자 속에 입맞춤)"이 멜랑콜리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두 형사가 갓길에 차를 정차한 곳은 대형 나이트 클럽이 위치한 번화가였다.

스타더스트(Stardust)라는 간판을 내건 나이트 클럽은 이른 영업시간 탓인지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혁과 소피아 형사는 정문을 돌아 후문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클럽 개장 준비에 한창인 주방을 통과해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클럽 안은 낮은 조도의 조명 때문에 사방이 어두웠다.

하지만 혁 형사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소피아 형사를 안내하며 클럽 귀퉁이에 자리한 사무실로 들어섰다.

붉은색 인조 가죽으로 덧댄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은발의 백인 남자와 검정색 티셔츠 차림의 건장한 떡대가 놀란 표정으로 두 형사를 째렸다.

떡대가 두 형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니들.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지? 대체 뭐하는 작자 들이야?”

소피아 형사가 허리 춤에서 청동 방패를 꺼내 떡대와 정장에게 보이며 말했다.

“LAPD. 살인계 소속 형사. 몇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소피아가 윽박 지르듯이 말하자  어안이 벙벙해 진 두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두 형사를 번갈아 째릴 뿐이었다.

놈들이 엉거주춤하자 혁 형사가 재빨리 나섰다.

이곳에서 시큐어리티로 일하는 하비야 페르난데스는 어디 있나?”

정장이 말했다.

무슨 일이지? , 그 친구를 만나려 하나?”

혁 형사가 덧붙였다.

몇가지 물어볼 말이 있어서.”

2분여 뒤.

곱슬머리에 매부리코인 건장한 풍채의 히스패닉계 사내가 두 형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혁 형사와 눈이 마주친 곱슬머리가 아는 채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어, 캅 나리. 어찌 이곳까지 귀한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오랫만이네, 친구.”

혁 형사는 그러고는 소피아 형사를 소개했다.

 

3사람은 자리를 옮겨 클럽 근처에 위치한 iHOP레스토랑으로 갔다.

자리를 안내한 웨이트레스에게 커피를 주문한 3사람은 잠시 잡담을 나눈 뒤 혁 형사의 정색한 질문에 분위기를 바꿨다.

혁 형사가 말했다.

이봐, 하비야. 몇가지 질문에 앞서 노파심에 말하건데, 거짓말은 하지 말고 진실을 말해주게. 친구도 알다시피 내 성깔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겠지?”

스티브 형사. 한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이 무탈하게 지냈는데, 빌어먹을….갑자기 나타나서 뜬금없이 겁을 주고 그래요.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이번에는 소피아 형사가 마닐라 봉투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곱슬 머리에게 디밀며 말했다.

이 여자 알지?”

컬러 인화지에 필사된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 본 곱슬 머리가 사진에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

글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 이렇게 생긴 여자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곱슬머리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능을 치자 혁 형사가 퉁명스레 말했다.

이봐, 지금 농 짓거리나 할 한가한 때가 아냐. 다 알고 왔어. 그러니 괜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털어놔. 만약 자네가 모르쇠로 발뺌하면 이 자리에서 수갑을 채워 카운티 교도소로 보내 버릴거야. 네가 이번에 빵(형무소)에 들어가면 20년 동안은 햇빛을 볼 수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순간 곱슬머리의 안면에서 경련이 일었다.

그리고 동시에 창백해 졌다.

곱슬머리가 소피아의 손에서 사진을 빼앗다시피 거칠게 낚아챈 뒤 천천히 사진을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사진에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이 여자 블랙 로즈(Black Rose). 우리 갱스터 그룹에서 행동대원으로 활약하고 있지. 여자지만 엄청 잔인하고 포악해. 냉혈한(冷血漢)이지.

한마디로 인정사정 없어. 이여자, 피만 보면 흥분해서 길길이 날뛴다구.”

이 여자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지?”

소피아 형사가 말했다.

곱슬머리가 덧붙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블랙 로즈를 만나려면 베벌리 힐즈로 가야 돼.”

베벌리 힐즈….?”

스티브 혁 형사가 말했다.

그녀의 애인이 코리안 이거든. 들리는 소문에는 그 가이(Guy)가 제벌 2세 유학생이라는거야.”

소피아 형사가 말했다.

코리안 가이의 주소를 알고 있어?.”

주소는 몰라. 하지만 베벌리 힐즈 어디쯤인지 기억은 해.”

스티브 혁 형사는 곱슬 머리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차에 태워 베벌리 힐즈로 내달렸다.

 

국대남 시인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를 대동한 국대남 시인이 약속대로 오전 11시께 LAPD에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


이산해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