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오늘:
2
어제:
1
전체:
1,255,450

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사라진 대통령 후보(3)

2020.10.20 22:07

이산해 조회 수:260

768A72C0-CE35-4FF7-8E69-A82433628967_1_201_a.jpeg

사진: 이산해 장편 추리소설 "여의도 살인사건" 캡쳐 


국내 언론과 SNS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이라 칭하는 국내 SNS(Social Network Service)여론 광장도 여포의 죽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유력 대선주자였던 여포 의원의 주검과 관련, 한편에선 이렇게 평가했다.

계집질을 하다 황천(黃泉)에 간 위선자를 마치 선지자(先知者)대하 듯 떠벌리는 것은 조현병(調絃病:정신분열증)좀비들의 마스터베이션이다. 여성편력이 심각한 여포가 대통령이 됐을 경우 대통령 임기인 5년은 커녕 3년도 안돼 나라가 망조(亡兆)될 것이라고 폄하했다.

이에 대해 일베에선 과거 양김(兩金)도 여자 문제로 구설수(口舌數)에 올랐다고 지적하자 그것은 시대상황이 낳은 해프닝이었다며 비켜갔다.

그러자 일베는 또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 했는데,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비아냥 거렸다.

종합 일간지인 정론직필(正論直筆) 신문을 비롯한 국내 주요 언론들도 유력 대선 후보였던 여포 의원의 죽음에 대해 앞다퉈 대서특필(大書特筆)했다.

언론들 역시 SNS 여론 광장과 마찬가지로 두 진영으로 갈라져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논조(論調)를 날렸다.

언론 한편에선 여포의 죽음을 애석(哀惜)하다고 지적하며 대한민국의 큰 별이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이들 언론은 또 여포 의원의 주검이 자연사가 아닌 살해 사건임을 주, 배후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주문하고 나섰다.

이에 반해 또 다른 반대 진영 언론은 대표적 진보 논객의 붓()을 빌어 여포 의원의 주검을 이렇게 논박(論駁)했다.

여포의 죽음은 한갓 개인의 일탈(逸脫)이 낳은 비명횡사(非命橫死),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나친 편견(

)이라고 밝혔다.

논박은 덧붙여 망자(亡者)와 여포를 지지하는 부류들은 가혹하다 하겠으나 그의 죽음은 오히려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볼 

때 차라리 잘 된 일이라는 혹평(酷評)도 마다하지 않았다.

논객은 자신의 과격한 혹평을 의식한 듯 이어진 단락(段落)에서 여포의 이중인격 성향(性向)이 그대로 국가정책에 적용되

면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것은 불을 보 듯 뻔한 일이라고 예시(例示)한 뒤 이제 여포의 객사(客死)논쟁을 거두고 진보 진영

에서 참신한 애국지도자가 배출돼 도록 온 국민이 합심해야 한다면서 종지부(終止符)를 찍었다.

250만명 구독자를 지닌 보수 논객 유튜버 자유인도 이에 질세라 논쟁에 끼어 들었다.

자유인은 유튜브 시사평론(時事評論)을 통해 여포의 죽음을 이렇게 평가했다.

세상에 범부(凡夫)는 넘쳐나지만 천재(天才)는 매우 드물다. 유력 대선 후보였던 여포 의원은 하늘이 내린

인물이었다그는 다방면(多方面)으로 유능하고 뛰어난 정치 리더였다.

반대 진영에서 볼 때 여포 의원은 눈엣가시였다. 왜냐?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 노선과는 항상 반대되는 정도정치(正度政

)를 고집해 왔기 때문이다. 여포 의원이 한국 경제와 정치 발전에 기여한 족적(足跡)은 아무리 거론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 정치의 조종(弔鐘)이며 비극이다. 당분간 여포 의원과 같은 큰 정치인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침통한 마음으로 위대한 거(巨人)을 하늘로 돌려 보낸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의 피살(被殺)사건

을 수사중인 LAPD의 전력투구(全力投球)하는 수사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불어 대한민국 수사당국도 여포 

의원 살해사건 해결을 조속히 해결키 위해 국내에서 활약하는 유능한 수사관을 현지에 파견해야 한다. 하여, 본 유튜버는 

수사 베테랑인 여의도 경찰서 강력계 소속 진달래 형사()를 천사의 도시 LA로 급파해 LAPD 스티브 혁 형사 팀과 호흡

을 맞출 것을 촉구한다. 끝으로 여포 의원의 주검은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매우 비중 있는 

사건이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쟁정(爭政)을 멈추고 일치단결해 살해사건을 해결하는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

 

글로리아 방(방향단)

글로리아 방을 만나기 위해 대저택으로 들어선 스티브 혁 형사와 소피아 형사는 우선 저택 2층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소피아 형사가 허리춤에 찬 칼집에서 예리한 낚시용 나이프를 꺼내  출입문을 봉한 출입금지 테이프를 가르고 사

건 현장인 침실로 들어섰다.


유력 대선 후보 여포 의원이 심장에 총알을 박고 널브러진 마스터 베이스 룸에는 아직도 화약의 여진이 부유(浮遊)하고 있

었다.

시신이 자리했던 침실 주변은 감식계 요원들이 들쑤셔 놓은 터라 아직도 상흔(傷痕)이 역력했다.

두 형사는 찬찬히 구석구석을 살폈다.

혹시 초동(初動)감식에서 놓친 것은 없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 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별다른 느낌은 잡히지 않았다.

단지 깊고 예측불허(豫測不許)의 미궁(迷宮)속에 빠진 기분이었다.

 

범인들은 완벽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프로패셔널 킬러들이었다.

이렇다 할 단서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 결코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물론 놈들(년일지도)은 완벽을 꾀했으나 한가지 헛점을 드러냈다.

그것은 다름아닌 빗물 통인 다운스파에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남긴 것이다.

나이키 운동복 재질 말이다.

물론 이것을 토대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은 캘리포니아 해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식일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형사라는 직업은 천형(天刑)과도 같은 것.

모래사장 뿐만 아니라, 지옥에 가서라도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

때문에 딕테티브(Detective:형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끈질긴 인내와 체력 순발력 타심통(他心通)등 다양한 능력이 뒷받침 돼야 비로소 유능한 짭새가 되는 것이다.

대략 10여분 동안 사건 현장을 되돌아 본 두 형사는 마침내 약속 장소인 1층 로즈 가든으로 향했다.

 

2000스퀘어 피트 규모의 장미 정원은 아름다웠다.

마치 스페인 그라나다 지역에 위치한 고가(古家) 알람브라 궁전의 정원을 연상케 하 듯 정원과 연못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

룬 형상(形象)은 가히 일품이었다.

 

장미 정원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장미를 비롯한 연한 핑크색 장미와 희귀종인 검은색 장미가 한데 어우러져 저마다 아

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두 형사는 한동안 본분을 잊은 채 장미에 취해 정원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두 형사가 장미 정원에 들어선지 10분 여가 지났을 때였다.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동양인 여성이 다가왔다.

얼굴에는 장미 향같은 은근한 미소를 드리우고 있었다.

 

50대 후반인 집주인은 아름다웠다.

드문드문 새치가 낀 단발 머리는 윤기가 흘렀다.

눈가에 잔주름이 자리했으나 인위적으로 칼을 댄 흔적은 전혀 없었다.

커다랗고 총명한 눈은 여자를 지적으로 보이게 했다.

적당한 크기의 코는 의지력을 반영했다.

마치 웅기(雄氣)를 품은 산맥같았다.

도톰한 입술은 선정적이었다.

입술은 붉은 홍조(紅潮)를 띄고 있었다.

남자라면 한번쯤 훔치고 싶을 것이다.

입술 사이로 드러난 치아도 안정적이었다.

희고 가지런한 치아는 아름다움에 일조(一助)를 더했다.

대략 175센티미터로 추산되는 키에 헬스와 요가로 다져진 균형 잡힌 몸매. 리바이스 청바지를 성적 매력으로 돋보이게 한 균형 잡힌 허벅지와 실밥이 터질 정도로 당돌하게 부풀어 오른 엉덩이, 그리고 길게 뻗은 곡선의 긴 다리는 남정네들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할 매력이었다.

흔히들 '황혼녘'이라 일컫는 50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이처럼 아름답고 육감적인 것은 다름아닌 자신을 사랑한 결과였다.

평소 자신의 몸과 마음에 애정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육체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따라서 글로리아 방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수려(秀麗)한 이목구비의 집주인은 단아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여자는 청바지에 폴로 티셔츠와 희색 운동화로 몸치장을 했다.

손목과 손가락에는 아무런 장신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두 형사를 맞은 여자가 희고 가는 손을 내밀어 인사를 청했다.

방향단이예요. 영어 이름은 글로리아 방이구요.”

두 형사도 여자와 악수를 나누며 자신의 백그라운드를 언급했다.

악수를 나눈 뒤 여자가 권한 자리에 엉덩이를 내려 놓은 세 사람은 하우스 키퍼가 내온 차와 음료수를 앞에 두고 대화에 들

어갔다.

여자가 먼저 말문을 텄다.

형사님들께서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여자의 질문을 받은 두 형사 중 소피아 형사가 얼굴에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선 여포씨의 죽음에 대해 유감(有感)을 표합니다. 또 한 글로리아씨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드려요.”

“…….”

아시다시피 LAPD의 수사 진척은 아직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어요.인이 이렇다 할 단서를 전혀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죠

. 물론 그렇다 해서 우리가 쉽사리 포기하진 않아요. 까지 놈을 추적해 보라는 듯 손에 수갑을 채울겁니다.”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해줘요. 두분 형사님들은 능히 범인을 체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갑니다.”

글로리아 방이 웃음기가 가신 표정으로 말했다.

스티브 혁 형사가 여자에게 물었다.

사건 당일, 즉 여포 의원이 살해 당한 그 날 방여사께선 어디에 계셨습니까?”

여자가 말했다.

혁 형사님. 그냥 글로리아라고 불러줘요.”

혁 형사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계속 했다.

그러니까 당일 오후 1시쯤, 그이(여포 지칭)와 나는 침실에서 사랑을 나눴어요. 대략 1시간 가량 사랑을 한 뒤 저는 사전

약속이 있어서 침실을 벗어나 샤워를 한 뒤 외출 준비를 했죠. 그이는 내가 외출을 서두르자 침대에 누운 채 물끄러미 바

라만 봤어요. 그리고 외출 직전 그이에게 입맞춤을 한 뒤 집을 나섰죠. 그것이 그이와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애정표현 이었

어요. 아직도 그때를 떠 올리면 가슴이 아파요.”

혁 형사가 물었다.

여포 의원과는 어떻게 알게 된 사입니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자가 손등으로 눈물을 찍으며 답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국방위원회 청문회가 진행될 때였죠. 당시 제가 무기납품관련 증인으로  채택됐어요. 처음에는 제가 증

인으로 체택됐다는 통보를 받고 기분이 내키지 않았어요. 하지만 국방위 위원장의 직권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해서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 국회에 출석했어요. 당시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다름아닌 여포 의원이었죠 청문회 직

전 저는 여포의원실에서 차를 마시며 상견(相見禮)를 나눴어요. 당시 여포 의원의 첫인상은 늠름하고 남자다운 기상(

)이더군요. 우리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즉석에서 한눈에 반했습니다. 서로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느꼈

어요.”

여자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거두고 훌쩍거렸다.

설음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소피아 형사가 여자에게 다가가 가만히 등을 두드렸다.

컴 다운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흐느낀 여자가 다시 고개를 들고 두 형사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안 그러려고 했는데, 그이만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오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스티브 혁 형사가 한국말로 위로했다.

여자가 다시 말문을 튀었다.

국방위원회 청문회에서는 제가 코리아 군()에 납품한 대전차 로켓과 박격포 등 중화기(重火器)무기들이 어떤 경로를 통

해 낙찰(落札)는가, 하는 집요한 추궁이었어요. 저는 그동안 무기 중개상을 하면서 단 한번도 편법으로 응찰(應札)한 예

가 없었기에 당당하게 답변했죠제가 청문회에서 한치의 꿀림없이 처신하자 여포 위원장은 오히려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훔쳐 보았어요. 의원들의 파상적 추궁을 그이 덕분에 무난히 비껴간 저는 국방위 청문회 직 후 그이를 신라호텔 영빈

관에 초대했어요. 고맙다는 인사였어요.”

여자가 여기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하우스 키퍼가 여자 곁으로 다가와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말문을 닫은 여자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하우스키퍼에게 귀엣말로 속삭였다.

 

장미 무늬 자수(刺繡)가 가득한 행주치마를 두른 하우스키퍼가 여자의 귀엣말을 듣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잰 걸음으로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여자가 다시 두 형사의 눈치를 살피고는 중단한 말꼬리를 이었다.

영빈관에서 차를 마신 우리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레스토랑으로 갔습니다. 그 이는 자신을 따라나선 보좌관과 비서관을 

보낸 뒤 였어요

불란서 와인에 암소 갈비를 곁들인 유럽식 저녁 요리를 만끽한 우리는 식사 후 자연스레 제가 묶고 있는 호텔 방으로 옮겨

갔죠. 그리고 마치 오랜 연인처럼 서로를 탐했어요.”

 

저희가 알고 있기로는 당시 여포 의원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주변의 모든 시선이 항상 그를 주시하고 있어 몸가짐에 제약이 따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리아 방여사와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함께 밤을 지샜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한가지 더, 여포 의원은 더군다나 아내와 가족이 있지 않습니까?”

혁 형사의 지적에 여자는 시선을 장미에 드리우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수초 후 다시 말했다.

당시 우리는 그 순간 만큼은 아무 것도 생각치 않았어요. 단지 불꽃처럼 튀어 오르는 감정이 두 사람을 이끌 뿐이었어요. 참으로 희한한 것은 그이와 만난 시간이 매우 짧았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이도 같은 말을 했어요. 당신을 죽어도 놓치고 싶지 않다구요. 운명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며 서로를 확인했습니다. 그날 우린 꼬박 밤을 세우며 사랑을 나눴어요. 그 이는 최초로 나에게 여자의 느낌을 가리켜 준 사내였습니다. “

동시통역기를 귀에 꽂고 여자의 증언(證言)을 귀담고 있던 소피아 형사가 말했다.

당시 글로리아께선 홀몸이었습니까? 그리고 현재 거주하는 이 저택에 머물고 있었나요? 여포씨는 언제부터 이 저택을 출입했나요?”

여자가 말했다.

“1년전부터예요. 제가 서울을 오가다가 급기야는 그 이가 LA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어요. 해마다 열리는 해외 공관 감사 때였죠. 그 이는 원래 해당 감사 소속 위원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자신이 소속한 국방위원회가 회기를 마치고 있던 때라 사비를 들여 함께 온겁니다. 그리고 호텔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저의 집으로 오신 거예요. 물론 제가 간절히 원했구요. 이후 그 분께선 두 달 건너 한번씩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이 신뢰하는 보좌관만 대통하고 저를 찾아 왔어요. 이번이 횟수로 8번째 였는데…..”

여자는 이쯤에서 다시 울먹이며 말문을 닫았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눈망울 주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여자는 두 형사에게 주책을 떨어 죄송하다고 말한 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내프킨으로 닦았다.

두 형사는 여자의 몸짓을 예의 주시했다.

몸짓 하나하나에서도 범인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어서다.

 

여자가 눈물을 찍은 내프킨을 내려 놓는 순간 소피아 형사가 말했다.

사건 당일 외출을 하셨다 했는데, 어디에 계셨나요?”

여자가 소피아 형사를 살피며 말했다.

그 날 저는 미주한인문학연합회가 주최한 한인문학행사에 초대돼 산타모니카 스테이트 비치에 갔어요. 행사가 그곳에서 오전 11시부터 펼쳐졌죠. 미국과 한국 아시아 유럽지역에서 몰려 든 수백명의 코리안 출신 문인들이 어울려 신명 넘친 축제를 전개했어요. 저는 문인은 아니지만 워낙 시와 수필을 좋아해 협회에서 명예 이사로 활동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레 이 날 산타모니카 스테이트 비치 축제에 참가한거요.”

소피아 형사가 덧붙였다.

문학 축제는 언제까지 지속됐죠.그리고 글로리아께서 머문 시간은요?”

여자가 답했다.

문학 축제 행사는 저녁 6시까지 진행됐어요. 저는 행사가 끝나고 문인들이 자리를 이동해 2차 문인의 밤 행사까지 참석했죠. 밤 축제 행사는 코리아 타운에 위치한 전통 한식 음식점인 청와대(靑瓦臺)에서 치뤘어요. 그리고 행사 마감은 밤 11시에 모두 끝났습니다. 저는 즉시 집에 혼자 머물고 있는 그이에게 전화를 했어요. 오늘은 매우 특별한 날이라 귀가가 늦을 수도 있다고요. 하여, 야식(夜食)을 비롯한 필요한 것은 하우스 키퍼에게 준비토록 했으므로 그리 아시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물론 그이도 흔쾌히 저의 생각을 받아 들이셨구요. 그 후 저는 평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여() 시인의 집으로 가 취중진담(醉中眞談)을 주고 받다 술에 취해 쓰러졌지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가정부로부터 끔찍한 전화를 받은 겁니다.”

방 여사님의 인격으로 보건데. 지금까지 하신 말씀은 거짓되거나 만들어진 진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말에 동의하십니까?”

스티브 혁 형사의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한국말이었다.

 

여자가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단 한번도 누구를 속이거나 농락을 한 예가 없어요. 하늘에 맹세할 수 있습니다.”

글로리아 방은 두 형사와 헤어지기 직전 이렇게 덧붙였다.

여포 의원 살해사건 해결을 위해 현상금 2백만 달러를 내놓겠어요. 누구든지 범인을 체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신고자 또는 검거자에게 현상금을 지불할 겁니다.”  

 

두 형사는 대 저택을 뒤로하고 차에 오른 뒤 여자가 알려준 여 시인의 전화번호를 연결했다.

그러고는 한인문학축제 행사 당일 글로리아 방의 동선(銅線)을 확인했다.

 

그림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고 있는 행주산성도 나즈막히 내려 앉아 있었다.

적막감만 맴도는 행주산성 주변은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두 승용차가 운전석을 맞댄 채 자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승용차는 소나타와 메르세데스 벤츠 S600이었다.

메르세데스 운전석에는 감색 정장에 노타이 차림을 한 검은 뿔테 안경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소나타 운전석에는 숱이 많은 머리칼을 82로 가르마 한 40대 초반의 사내가 초췌한 기색으로 상대의 말을 귀담고 있었다.

메르세데스 운전석 창틀에 왼쪽 팔꿈치를 올린 뿔테안경이 말했다.

독고형. 멋지게 일을 처리했구먼. 나는 설마 했는데, 독형이 그리도 빠르고 신속하게 여포를 제거할 줄은 몰랐어. 역시 독고형은 다방면으로 비범한 인재야. 아무튼 독고형이 대한민국의 최대 골칫거리이자 장애물인 여포를 영원히 잠재웠으니 이젠 두발 뻗고 편히 잠을 잘 수 있겠구먼.”

 

이렇듯 상대를 향해 호기롭게 말한 뿔테안경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편지봉투 크기의 봉투를 꺼내 상대에게 건넸다.

여전히 초췌한 표정인 상대는 건네진 봉투를 받는 것을 머뭇거리다 끝내 거머쥐고는 애매모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지못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은 사내는 다름아닌 여포의 보좌관이었으며, 메르세데스 운전석 앉은 뿔테안경은 국방위원장인 여포에게 로비를 펼치기 위해 보좌관에게 뇌물을 건넨 방산업체 사위였다.

 

이들 두 사람이 비가 추적거리는 행주산성 휴게소 인근에서 얼굴을 맞대고 비밀스런 사견(私見)을 주고 받은 배경은 이랬다

중견 방산 군수품(防産軍需品)납품업체인 천둥번개()가 해를 거듭할 수록 사업 실적이 부진하자 고심을 거듭하던 중 묘수를 찾아냈다.

다름아닌 로비 술책(術策)이었다.

현재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포 의원이 평소 돈을 밝힌다는 소문이 따라 방산업체 천둥번개회사가 로비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액을 건네키로 한 것이다.

그 첫 단계로 여포 의원이 신임하는 보좌관을 돈으로 매수해 일을 추진키로 했다.

따라서 방산업체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집안 내 사위가 직접 일선에 나섰다.

그러고는 억대의 현찰을 보좌관에게 뇌물로 건내 포섭한 뒤 일이 순조롭게 풀리자 여포 위원장에게도 별도의 뇌물을 건네키로 한 것이다.

허나 이 과정에서 배달사고(뇌물을 건네는 과장에서 중간에 돈을 떼이는 것)가 일어났다.

방산업체 사위가 여포 위원장에게 주라고 보좌관에게 건넨 5억원 가운데 2억원을 보좌관이 가로 챈 것이었다.

이는 뇌물을 건넨 사위가 여포 위원장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뇌물 액수가 거론됐기 때문 였다.

 

이같은 사실을 안 여포 위원장은 보좌관 앞에서 대노(大怒)했으며, 보좌관은 처음에는 발뺌을 했으나, 여포의 끈질긴 문책에 결국 사실을 고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보좌관은 양쪽에 신임을 잃었고 믿을 수 없는 인물로 전락하자 고심의 늪에 빠졌다.

그리고 점차 주군(主君)인 여포가 자신을 버렸다는 괘씸한 생각이 치솟기 시작했다.

감정이 겪해진 보좌관은 극단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그것은 다름아닌 여포 의원의 사생활과 관련된 치부(恥部)였다.

그동안 십 수년을 함께 동거동락 하며 수발을 들어 온 보좌관은 심지어 여포의 잠자리 시중도 마다하고 일을 처리해 왔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 했다.

세상에 뜻을 품은 사내 치고 여색을 탐하지 않은 영웅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동서고금(東西古今)이 이같은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가.

물론 여색(女色)을 탐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용인(容認)하느냐 하는 문제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웅호색이 지구별 도처에서 횡행(橫行)하는 것 또 한 사실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여포에게 신임을 잃은 보좌관은 하루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밥을 먹을 때는 마치 돌을 씹는 기분이었으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시밭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여포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을 예전처럼 부리지 않았다.

모든 업무는 비서관과 또 다른 보좌관에게 일임했다.

자신에게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하지만 여포 의원은 보좌관에게 대놓고 관둬라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결국 견디다 못한 보좌관은 여포에게 구두(口頭)로 사직(辭職)하고 의원과의 오랜 인연을 끊었다.

 

한동안 백수 건달로 여의도 국회 주변을 전전하던 보좌관은 마침내 결심이 선 듯 유력 대선 후보 여포와 강대약(强對弱)구도를 형성하던 상대 후보 진영으로 투신(投身)했다.

내가 알고 있는 여포 의원의 모든 비위(非違)사실과 여성편력(女性遍歷)을 낱낱이 까발리겠습니다.”

여론 조사에서 항상 부동의 1위를 차지한 여포에게 밀려 전전긍긍한 상대 당은 제 발로 찾아 온 보좌관을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듯 환대 하며 대선후보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오랫동안 자신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해 온 보좌관이 상대 당 대선 후보 진영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소식을 접한 여포 의원은 처음에는 놀라워 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별것 아니라는 듯 애써 외면했다.

여포 의원의 수석 비서관이 말했다.

의원님. 보좌관의 배신을 확대해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자가 저쪽 진영에서 터뜨릴 말 폭탄이라 해 보았자 고작 여자관계운운 뿐일 것입니다. 그 정도의 마타도어(Matador)는 저희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따지고 들면 상대 당 후보 역시 내로남불의 전형이니까요.”

예상대로 상대 당 진영은 곧바로 SNS등 여론 광장의 댓글러들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을 등에 업고 여포 죽이기 총공세에 나섰다.

주된 내용은 여포 의원이 토착왜구 후손이며 꼴통 보수에 남북한 평화통일의 방해꾼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여자를 탐하는 색골이며 현재 여러 명의 내연녀들과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같은 카더라 뉴스가 여론 광장을 달구자 특히 여성들이 후끈 달아 올랐다

유력 대선 후보와 통정(通情)하는 여자가 과연 누구냐 하는 관심사였다.

헌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부각됐다.

다름아닌 여자 문제였다.

과거에는 유명인이 간통을 한 경우 세인들에게 지탄을 받고 낙마하는 사례가 다반사(茶飯事)로 나타났다.

헌데, 여포 의원에 경우 스캔들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관대했다.

SNS에선, 언제까지 춘향이 이 도령 타령이냐며 문제는 나라를 얼마만큼 부강하게 만드느냐가 주요 관건이라며 여포 의원의 여성 편애설(偏愛說)을 일축했다.

이 문제로 여론이 분분하자 여포 의원의 반대 진영에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유력 정치인의 문란한(여자 문제와 관련된) 사생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상관없다 45%, 문제 있다 32%, 나머지는 모른다 였다.

대선 후보 지지도 역시 여포 의원이 65%를 차지, 상대 당 후보의 울화통을 더욱 자극했다.

기대했던 여론조사 결과가 엉뚱하게 나타나자 반대 진영은 다시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마타도어와 카더라 술책(術策)이외는 별다른 묘책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또 다시 우군인 SNS 여론 광장을 풀가동 시켰다.

여론조작 선봉은 술책의 마술사로 불리는 수필가 마다도가 총괄했다.  

여포 의원을 향한 상대 당의 집요한 여론전은 정치에 피로를 느낀 시민들에게 환멸감만 안겨 주었다.

그리고 급기야 유력 대선 후보였던 여포 의원이 객사하자 여의도와 청와대를 의혹의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