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오늘:
2
어제:
1
전체:
1,255,450

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청와대

2019.05.18 04:27

이산해 조회 수:574

44420e86bd010.jpg

사진: 이산해 작


오랫만이야, 진달래 형사.”

대통령님도 오랫만이네요.”

이보시게. 요즘 짭새(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입맛을 다시며 짭새형사로 정정했다)노릇 하기가 어때? 흉악한 놈들이 사방에서 날뛴다고 하던데….”

대통령님이 형사를 짭새라고 하시니 마치 조폭 두목 같으시네요.”

진형사, 미안해. 조폭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야.”

아무튼, 대통령님이 청와대 주인장이 되신 후부터 나쁜 자식들이 더 많아졌어요.”

뭐라구, 내가 청와대에 들어 온 후부터 강력 범죄가 더 늘어났다구….. 이봐, 진형사. 그 말 사실이야? 대체 그 수치는 어디서 나왔나? 그거 혹시 가짜 뉴스 아냐?”

대통령님도 가짜뉴스를 다 아시네요?”

물론이지. 내가 구중궁궐 속에 갇혀 있어도 알건 다 안다구.”

대통령님! 거긴 조고 같은 내시들이 득실거려서 언로가 꽉 막힌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빌어먹을! 그것도 가짜뉴스야. 내 손에는 도청과 감청이 차단된 삼성 갤럭시 스마트 폰이 쥐어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소식을 실시간 접할 수 있다구.”

시정(市井)소식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신다구요? 대통령님은 내시들이취사선택해서 올리는 뉴스만 보시잖아요?”

취사선택이라니? 이봐, 진형사. 아직도 그런 유언비어가 돌아다니나? 과거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말야 달라요. 미녀 형사도 잘 알다시피 나는 스마트 폰을 통해 하루도 빠짐없이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과 한경오(한겨례/경향신문/오마이 뉴스)를 완독하고 있어.

어디 그 뿐인가? KBSTV조선도 빼놓지 않고 시청하지. 한가지 더

첨언하면 요새 인기가 있다는 유튜브도 즐기고 있다구

유튜브도 보세요?”

물론이지. 그런데 말야…. 유튜브를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이 터져.”

유튜버들이 대통령님 심기를 마구 갈구나요?”

갈구는 것은 보통이고, 어느 작자는 아예 노골적으로 나를 동네 양아치급으로 취급한다니까? 성질 같아서는 유튜브를 없애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언론 탄압입네, 독재 폭군입네 어짜구 저쩌구 씨부리며 개떼처럼 짖어 될게 뻔한 것이 아닌가.”

대통령님이 참으시는게 상책이예요. 말길(言路)은 신도 막을 수 없는 절대 힘이예요. 울화통이 터진다 해서 유튜브를 없애려는 순간, 지구촌에 산재한 개떼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짖어 되면 대통령님 체면은 완전히 스타일을 구기게 되요. 뿐만 아니라, 여차 하면 기와집에서 쫒겨 날 수도 있다구요.”

뭐라구, 내가 청와대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말인즉슨 그렇다는 거예요. 때문에 다혈질인 대통령님은 항상 세치 혀를 잘 다스려야 해요.”

진형사의 말을 새겨 들으니 일리가 있구먼. 나한테는 역시 진형사가 매우 중요한 메신저야.”

예쁘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헌데,유튜브에서 우연히 진형사의 비키니 영상을 봤거든. , 몸매 죽여 주드만!”

“(진형사가 이 대목에서 다시 깔깔거리며 폭소를 터뜨림)대통령님도 역시 일개 남자세요. 그 영상은 미국에서 발행하는 스포츠 주간지 핫소스에서 촬영한 화보 사진였어요. 당시 초판이 1천만부 이상 판매돼 미국 미디어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죠. 저의 비키니 화보는 제가 봐도 너무 지극적이었요.”

진형사의 미모와 몸매는 천하가 인정하는거 아닌가. 아무튼 말야 그 영상은 내가 구독하기로 했어. 물론 추천 버튼도 잊지 않고 꾸욱 눌렀지. 그건 그렇다 치고….이봐, 진형사. 그 놈은 어찌 됐나?”

어느 놈이요?”

, 있잖아. 밤의 황젠지, 어둠의 왕잔지 하는 새끼말야…..”

대통령님도 갈 수록 조폭을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진형사. , 내가 어때서?”

요새는 대통령님의 입이 매우 거칠어 지셨어요. 육두문자도 예사로 쓰시고요.”

빌어먹을!”

대통령님이 말씀하신 그 새끼는(천지개벽 파 조폭 두목 임충을 말함) 검찰에 송치했어요.”

그게 정말이야? 그래서…”

대통령님은 남의 말을 자르고 끼어드시는 나쁜 습관이 있으세요.”

미안해, 진형사.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좀 급한 성격이라서 말야.”

아무튼, 그 후에 저희가 임충 구속영장청구서를 판사에게 올렸는데 번번히 기각됐어요.”

그건 왜?”

영장 실사 담당 판사가 임충 구속 소명 자료가 미흡한 점이 있으니 혐의자를 데리고 오라는 거예요. 임충에게 소명 기회를 주고 나름의 이유를 들어본 뒤 영장 발부 가부를 결정짓겠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 , 판사 양반이 까탈스럽구먼.’

판사가 깐깐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법리 해석은 이랬어요.범죄 혐의자 임충을 구속 수사할 만한 뚜렸한 증거가 미흡하고, 또 한 혐의자가 도주의 우려가 없어 불구속 수사가 타당하다.”

결국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도 발부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예기 아닌가?”

대통령님. 헌데, 임충에 대한 구속 영장 발부가 계속해서 기각 당한 이유를 뒤늦게 알아냈어요.”

판사가 구속 영장 청구서를 기각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물론이예요. 알고 보니 영장 실사 담당 판사가 청와대의 외압을 받고 눈치를 살핀거예요.”

뭐라구, 청와대에서 판사에게 뽐뿌질을 했다구? 대체 어느 놈이 판사를 겁박했다는 건가? , 도깨비 이름을 대봐, 내가 당장 불러다 조질테니까 말야.”

대통령님. 컴 다운 하세요. 아직은 백퍼센트 확실한 물증은 없어요. 단지 임충의 심복이었던 부하가 저에게 그와 같은 비밀스런 정보를 흘린거예요. 정보 속에는 그, 도깨비의 이름과, 그가 임충과 거래한 비위 사실이 적나라하게 들어있었어요.”

이봐, 진형사.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화끈하게 놈의 이름을 까보라구!”

아무개예요.”

뭐라고, 아무개? 이런 빌어먹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아니, 그 작자가 판사에게 임충 수사에 따른 구속 영장 발부는 절대 안된다고 압력을 행사했다 이거지?”

물론이예요.”

진형사. 내가 당장 아무개를 호출해 판사에게 뽐부질을 했는지, 그리고 임충이란 조폭 두목과는 어떤 관계인지 조져봐야 겠어.”

대통령님도 터프가이세요. 형사들이 일선에서 나쁜 놈들을 조질 때 사용하는 비속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시네요.”

방 금 날더러 터프가이라 했나? , 듣기 좋구먼. 사실 말이지 이 말은 진형사한테만 처음으로 털어 놓는 건데, 마누라쟁이 빼놓고 세상에서 겁나는 것 하나도 없어. 그건 그렇고도깨비하고 임충인가 뭔가 하는 조폭 두목하고는 무슨 관계야?”

아무개가 임충의 대학 후배예요.”

대학 후배? 아니, 조폭 두목이 대학을 나왔단 말야?”

“S대 법학과 출신이예요. 사법 고시에 4번 응시해서 내리 불합격한 뒤 카바레 제비로 전전하다 조폭에 입문했어요.”

임충인지 송충인지 아무튼 놈이 인물은 인물인 모양이구먼. 명문 대학을 나와 조폭 두목 노릇을 하다니. 아무튼 아무개가 임충의 대학 후배인데다, 조폭 두목에게 코가 꿰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알아서 긴다는 말 아닌가?”

대통령님의 추리력도 대단하시네요 제가 요 몇일 사이에 수집한 정보 자료에 따르면 아무개가 임충한테 향응을 받은 건수가 상상을 초월하더라구요. 매 달 정기적으로 건네지는 촌지는 물론이고요, 성접대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향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빌어먹을 아무개 같으니! 등하불명(燈下不明:등잔 밑이 어둡다)이라더니 다름아닌 청와대를 두고 하는 말이였구만. 이봐, 진형사. 조폭 두목과 도깨비의 관계는 물론이고 어떤 형태로 향응을 베풀었으며, 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엇을 건넸는지 상세하게 조사해서 내 스마트 폰으로 알려 줘. 그리고 말야. 이건 내 직감인데, 판사 말이지. 그 작자 뒤도 한 번 캐 봐. 그 자가 번번히 구속 영장 청구서를 기각하고 불구속 수사 어쩌구 하면서 뒤로 빠지는 모양새가 웬지 쿠린내가 난다는 느낌이야.”

제가 대통령님을 존경하는 이유를 아세요?”

그게 뭔가?”

대통령님은 정의와 법치를 신념처럼 여기시는 정치인이세요. 그 점이 대통령님의 매력 포인트라구요.”

절세 미녀 형사가 그리도 잘 봐주니 기분이 좋구만. 내가 한 20여 년 만 젊었어도 진형사에게 프로포즈를 했을텐데, 세월이 아까우이.”

대통령님. 전화 끓을께요. ‘국태민안(國泰民安)’하세요. 안녕.”   


이산해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