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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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평양 일기(日記) 3

2020.04.29 10:50

이산해 조회 수: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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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과 만찬


김정은위원장의 초대를 받은 연청음과 주다혜 가족들은 만찬장에서 김정은을 기다렸다.

만찬장에는 저녁 서빙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요원들과 셰프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정각 6시가 되자 북한에서 닫긴 옷이라 불리는 검정색 인민복을 걸친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만찬장에 들어섰다.

순간 만찬장에 대기하고 있던 모든 이들이 꼿꼿한 자세로 기립한 후 요란스레 박수를 치며 김정은 부부를 맞았다.

김정은 부부 곁에는 호위총국 소속 경호요원 6명이 밀착 경호를 했다.

 

주성치를 비롯한 딸 주다혜와 어머니 그리고 연청음도 선 자세로 김정은 내외를 맞았다.

주성치 가족에게 다가선 김정은이 주다혜를 바라보며 반색했다.

그러고는 그녀를 덥석 끌어안고 귀엣말로 안부를 물었다.

김정은은 이어서 연청음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연청음도 긴장한 자세로 김정은을 스캔했다.

 

사다리 꼴 머리로 불리는 슬리백 언더컷(Slick back undercut) 헤어 스타일 한 김은 절구통 허리에 비만이었다.

얼굴은 할아버지 김일성과 흡사했다.

다갈색 뿔테 안경을 착용한 김은, 독재자는 괴물처럼 생겼다는 선입견이 무색할 정도로 순해 보였다.

 

김위원장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며 두드러지게 친근감을 나타냈다.

주성치의 가족들과 환담을 한 김은 시선을 돌려 연청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이 우리 다혜를 구했다고 하던데,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네다.”

김위원장은 그러고는 두꺼비 같은 손을 내밀어 연청음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연청음도 예를 다해 고개를 꺽었다.

 

감청색 원피스로 몸단장을 한 리설주 여사도 연청음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뒤 감사표시를 했다.

 

요란스런 상견례(相見禮)가 있은 뒤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초대형 크기의 원탁형 식탁은 우크라이나 산() 오크 나무로 제작한 수입제였다.

식탁에는 프랑스 제 식기와 스위스 산 와인 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만찬 음식은 서구식 정통 코스 요리였다.

술은 김정은이 즐긴다는 포루투갈 산 와인과 수삼삼로주가 식탁에 올려졌다.

 

원탁 상좌(上座)를 차지하고 앉은 김정은은 주성치에게 손수 수삼삼로주를 따라 주었다.

두 손으로 술잔을 받은 주성치는 마냥 황송할 따름이었다.

 

김은 주다혜 곁에 앉은 연청음을 턱으로 가리키며 오라고 했다.

연청음이 다가가자 다기(茶器)처럼 생긴 작은 종재기에 수삼삼로주를 따라 주었다.

술잔을 받은 연청음은 난감했다.

처음 경험하는 생경한 탓이었다.

이를 눈치챈 주다혜가 고개를 돌리고 술을 마시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연청음은 여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술잔을 비운 그는 김을 향해 목례를 한 다음 자리로 돌아왔다.

 

술잔이 한 순배 두 순배 돌자 만찬장의 분위기가 잔뜩 고무됐다.

거나하게 술기운이 오른 김위원장이 연청음에게 말했다.

선생 직업이 뭡네까?”

연청음은 주다혜 가족에게 밝힌 자신의 내력을 되 짚었다.

 

팔짱을 끼고 연청음의 백그라운드를 경청한 김정은이 호기심이 잔뜩 서린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젊은 양반이 대단합네다!”

김정은의 찬사였다.

 

김정은은 주다혜에게도 근황을 묻고 쾌유 하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이처럼 주다혜를 챙기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김정은)의 업무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복심(覆審)이었기 때문이다

 

연청음이 곁에서 지켜 본 김위원장은 폐쇄된 군주국가의 절대 권력자 답지않게 트인 구석도 있었다. 

그의 사고(思考)는 어린시절 스위스에서 유학을 한 탓일 것이다.

(김정은은 15세 때 박은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베른학교와 리버펠트 공립학교에서 공부했다.) 

   

한편 만창장의 분위기가 고조되자 연청음이 작심을 하고 김위원장에게 대담한 질문을 던졌다.

 

연청음이 말했다.

위원장께선 자신의 권력을 유지키 위해 북한 주민을 억압으로 통제하고 계십니다. 동의하십니까?”

순간, 만창장의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됐다.

주다혜는 물론 아버지 주성치도 낯빛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곁에 앉은 어머니는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

먼발치서 김정은을 보호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번개처럼 연청음에게 다가섰다.

여차하면 끌어 낼 기세였다.

당황한 것은 리설주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태였다.

 

이처럼 만찬장의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 됐음에도 유독 김정은위원장은 여유가 넘치는 안색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하는 것처럼….

 

김위원장은 곁에서 수발을 들고 있는 행사 요원에게 턱으로 수삼삼로주를 가리키며 잔에 따르라고 지시했다.

 

그러고는 술을 한입에 털어넣은 그가 좌중을 훑으며 말했다.

선생의 두둑한 배짱이 맘에 드오. 내 앞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허나, 방금 한 말은 틀렸소. 왜냐? 답은 이렇습니데다. 들어 보시라요.”

김위원장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 목청을 돋구어 말했다.

 

김위원장의 말을 글로 요약하면 이랬다.

 

자신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운명적으로 북한 권력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권력을 이어받았으며 북한의 특성상 과거로부터 행해진 통치 수단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유는, 북한 주민들의 반감(反感)도 문제지만 특히 권력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군부와 노동당의 막강한 힘을 분쇄해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속내 였다.

김위원장은 장성택 처형과 형 김정남 암살을 예로 들었다. 시시각각 자신의 권좌를 노리는 정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미래가 불안정하기 때문 였다고 역설했다.

나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 적들에게 포위돼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네다. 때문에 나는 나를 보호하고 내 권력을 유지해 줄 인물이 필요합네다. 바로 주성치 제1부부장같은 인물입네다. 주부장이야 말로 나의 친구이며 보호자나 다름없습네다.”

이 대목에서 김정은이 주성치를 보호자 운운하며 극찬하자 주성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격에 찬 눈물을 쏟아냈다.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한 개인을 이토록 대한 예가 전무후무 했기 때문 였다.

김정은은 자신의 정치철학에 대해서도 견해를 드러냈다.

김은, 인민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의 통치술이 절대 필요하다고 했다.

군주가 귀족과 백성으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변덕이 심해 경박하며, 유약하고 소심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군주가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원칙보다 탁월한 용인술이 필요하다.’

김위원장은 또 군주는 여우와 사자를 겸비해야 한다. 사자는 스스로 함정을 막을 수 없고, 여우는 이리를 막을 수 없다. 따라서 함정의 단서를 알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고, 이리를 도망가게 하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변했다.

김은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인권탄압에 대해서도 밝혔다.

체제를 부정하고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반동분자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민주(民主主義)'라는 간판만 내 건 남조선도 그렇고 트럼프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단지 법을 적용하고 다스리는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정은위원장은 목청을 돋구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나? 트럼프에게 물어보라요.”

그는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미사일을 쏘는 것은 미국을 견재하기 위해서 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두목은(대통령 지칭)여지껏 자신의 정치적 노정(路程)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스코리아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헌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자신은 미제국주의자놈들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이 전혀 없다고 했다.

김은 남조선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을 등에 없고 노골적으로 북조선을 적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선 여차하면 북침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라고 했다.

이럴진데, 자신이 미사일을 쏘고 노동신문에 격한 어조를 띄우는 것이 과연 잘못이냐는 것이었다.

김은, 북조선 인민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방식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수 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멍청하다는 소문은 부풀려진 가짜뉴스였다.

김위원장은 이날 만찬에서 철학과 역사, 예술등 다방면에서 박식함을 드러냈다.

그의 남다른 지식은 권력을 잡은 후부터 쌓인 내공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김위원장은 폭력이라는 철권(鐵拳)통치와 민족지상주의(民族至上主義)를 병행하며 자신의 권좌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권좌는 이변이 없는 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만찬직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늙기 전에 북한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 것입네다. 남조선의 박정희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았습네까. 나도 그렇게 할 것이고 그렇게 될 것입네다.”

 

김의 이같은 청사진을 확인한 연청음은 다음과 같이 자문했다.

북한인민들이 잘먹고 잘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허나, 그보다 앞서 그가 청산해야 할 것이 있다.

다름아닌 폭정(暴政)이다.

 

폭정은, 자신과 반대되는 인물들은 무조건 적대 계층으로 몰아 숙청한 뒤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하는 것을 뜻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평안남북도를 비롯한 자강도 등 정치범 수용소에는 15만 명을 웃도는 북한주민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진심으로 북한인민과 부유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선 정치범 수용소를 없애는 것이 급선무다

, 선정후사(善政後事)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북한도 부자나라가 될 수 있고 김위원장도 영웅대접을 받을 것이다.

 

북한체재에서 독재는 불가피하다고 강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재 김정은 위원장이 지닌 절대 권력으로 북한을 충분히 개방할 수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감히 시도하지 못한 페레스트로이카를 김위원장은 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선행되면 김위원장도 독자적인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시도때도 없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촌극은 나름의 자구책이며, 몸부림일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무력 시위는 용납될 수 없는 도발행위다.

김정은 위원장은 젊다.

그리고 아직도 기회는 많다.

북조선 인민들이 앵무새처럼 뇌까리는 위대한 동지가 아닌, 진정어린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베푼 만찬연회 직후 연청음은 선물을 받았다.

김위원장의 싸인이 새겨진 금장 도금 손목시계와 다기 한세트였다.

 

만찬 직후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권유로 사진 촬영을 했다.

김은 어찌된 영문인지 연청음을 따로 지명해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 호의도 베풀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환대를 받은 연청음은 만찬이 끝난 뒤 주다혜의 집으로 갔다.

부모가 함께 가기를 적극 원했기 때문 였다.

 

주성치는 자택에서 감격에 겨운 듯 틈만 나면 연청음을 얼싸안고 어깨를 두드렸다.

곁에서 남편의 행동을 지켜보는 어머니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주다혜 역시 사랑이 그득한 시선으로 연청음을 바라 보았다.

 

이날 밤.

두 남녀는 동이 틀 무렵까지 뜨겁게 운우(雲雨)의 정을 나눴다.    

(끝)


*후기(後記) : 연청음은 현재 코로나19 염병사태로 천사의 도시(LA)자택에 머물고 있다.

                   그는 최근 AP통신을 통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유고(有故)'설을 접하고 만감이 교차됨을 느꼈다.

                   만약, 김정은의 변고로 북한의 정치 지형이 급변할 경우 한반도의 국운이 대한민국으로 기울 것이란 예단도 했다.

                   물론 이같은 생각이 섣부른 김칫국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허나, 하늘은 항상 때가 되면 정한 바를 실행했다.

                   지구별 역사고금(歷史古今)을 통해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認知)한다.


이산해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