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와 43도의 차이

2013.09.12 08:57

이영숙 조회 수:390 추천:32

한반도가 들끓는다. 특히 대구의 더위가 더욱 무섭게 사람들을 괴롭힌다. 염려되어 남편에게 더워서 어떻게 지내냐고 카톡을 보냈다. 답은 간단하다. “더워서 못 살겠다.” 대구, 울산지역의 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린다니 당연히 염려된다. 기록적인 더위, 기상대가 생긴 이래 최고의 기온, 불가마, 찜통더위, 살인더위……. 이번 더위는 이름도 많다.   이십 년 전 그때도 엄청나게 더웠다. 그때도 40도를 육박하는 더위가 한 여름을 계속해서 연결되었던 걸로 기억된다. 더위에 몸서리 친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이 날씨가 바뀌어 사계절 내내 여름뿐인 열대지방이 된 것 같았다. 영영 가을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아마 추석에도 더워서 헉헉댈 거라 생각했으니까. 내가 지금 한국에 있지 않으니 잘은 모르지만, 그때의 더위가 이번 더위에 밀린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지나본 그 더위는 그야말로 살인더위였다. 그보다 더 더울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영원히 여름만 계속될 줄 알았던 그때.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내가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던 가을은 왔고 벼는 익었다. 선선한 바람이 내 뺨에 닿았고 감이 빨갛게 익고 밤은 알을 터트렸다. 살인더위는 그렇게 지나갔다. 이번 더위도 얼마지 않아 가을에 밀려 힘없이 저쪽으로 물러갈 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따듯한 곳을 찾아다니며 몸을 녹일 장소를 물색하게 될 거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내일이고, 오늘은 폭염에 지쳐간다.   오늘 신문에 “40도인 울산은 살인적 더위인데, 43인 바그다드는 시원하다”라는 기사가 떴다. 앞뒤가 맞지 않는 기사를 읽었다. 40도가 폭염인데 43도가 시원하다니. 거참 이상한 계산법이 아닌가. 기사는 이랬다. -12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엔 생뚱맞은 기사가 실렸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는 지난 8일 최고기온이 무려 43도였는데도 시민들은 전보다 ‘시원한(cooler)’ 요즘 날씨에 만족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7월 평균 최고기온이 43도로 지난해 같은 달의 46도보다 조금 낮았을 뿐인데도 말이다. 이라크 기상청장은 “지난해엔 49도를 넘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사람들의 감정이 날카로워지고 행동이 거칠어지게 마련”이라며 “하지만 조금만 시원해져도 사람들은 서로 잘 지내는데 올해는 그 뜨거웠던 지난해와 날씨가 사뭇 다르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49도를 맛본 바그다드 사람들은 43도에 시원함을 느끼며 행복해 한다. ‘33도’가 한여름의 더위를 말해주는 한국에서 40도는 폭염, 살인더위, 남편의 표현대로 “못 살겠다”이다.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이 한국의 겨울을 만나면 덥다고 하지 않을까? 한국 사람들이 “추워죽겠다”는 표현을 할 그 때에. 사람들은 모든 것을 내 습관의 기준에 맞춘다. 인간은 모두가 자신의 기준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만큼 더우면 여름이고, 요정도만 추워야 겨울이다. 그런 기준을 넘어서면 그때는 불평이 나온다. 왜 그 이상의, 혹은 그 이하의 기온이 되냐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벗어나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에게는 그 온도가 여름이고 겨울이다. 바그다드 사람들은, 시베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기준이 다르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딸을 볼 때 나는 답답하다. 좀 열심히, 열정적으로 공부에 매달리지 않는 모습이 정말 울화가 치민다. 딸의 기준에서 엄마는 또 얼마나 한심할까. 알아서 하도록 두면 잘 할 건대 왜 자꾸 안달하느냐고 한심하게 생각할 거다. 나는 남편이 너무 무뚝뚝하고 말이 없어 싫다.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말을 많이 해야만 다정한 부부는 아니라는 거다. 서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의 기준을 고집하지 말고 상대의 상황을 이해해야 할 텐대. 내가 싸구려 백을 들고 있을 때 천 달러 하는 핸드백을 들고 있는 사람을 사치하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몰아붙일 수 없다. 내가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아방궁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거만한 사람이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40도가 폭염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고, 43도가 시원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8/13/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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