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에서 반란으로

2009.06.09 08:53

이영숙 조회 수:607 추천:197

“평범에서 반란으로”

        벌써 한 12년쯤 지난 것 같다.  나의 종질은 나와 나이가 동갑인데 집안의 외동아들인데다 그의 아버지가 병중이어서 일찍 결혼 했다.  역시 일찍 시집 와서 외동며느리가 된 그 질부는 시집을 호되게 살았다.  나의 사촌 올케언니인 그 시어머니는 원래도 성격이 유별난데 외동며느리에게 잘 해줄리 없다.  워낙이 외동며느리가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시아버지까지 일찍 여의고 시어머니와 살아가며 남편은 큰 트럭운전사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서 늘 시어머니와 함께 고된 시집살이의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다.  무던한 질부는 여러 가지로 잘 참고 인내하여 친척들에게 늘 칭찬을 받으며 지났다.

        그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는 곁에서 보는 사람들이야 대충 이해만 하지 어찌 본인이 느끼는 것처럼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외동이라는 이유로 시어머니의 성화에 아이를 많이 낳았다.  딸 셋을 낳고 아들 하나만 낳았으니 그 또한 시집살이의 힘든 부분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중학교 등 거의 다 자라고 남편이 큰 트럭운전사로 어느 정도 여유도 생겼는데 남편이 집을 많이 비웠고 시어머니의 성화는 심했다.  거기에 더하여 세상이 변하여 여자들의 바깥출입이 자유가 생기면서 질부는 자주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서로의 힘든 이야기도 하며 세월을 잊고 싶지 않았을까.

        요즘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친구들의 ‘바보’라는 질책과 ‘새 세상’의 유혹이 늘 집안에서만 혹독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와, 많은 아이들을 키우며 순진하게만 살던 질부에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낯설음으로 발을 움츠리기도 하고 도망 다니며 숨기도 하였을 것이다.  유혹은 집요하게 따라왔을 것이고, 결국 그 유혹에 순진한 그녀는 빠져버리고 말았다.  몰래 숨어서 가슴을 조이며 온 가족을 속이며 딴 세상을 경험하던 그녀.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칙을 누구라 거역할까.   어느 순간 들키고 말았다.

        집안은 발칵 뒤집어 졌다.  혹독한 시어머니와 남편의 추궁이 시작되었다.  급기야는 남편이 손찌검까지 하며 시어머니는 당장 내어 쫓아야 한다고 집안을 뒤집었다.  
        그런데 다음 상황에서 문제가 더 커졌다.  가족들은 질부가 잘못했으니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사정할 줄 알았는데, 상황은 달라졌다.  
        아무도 모를 때는 숨어서 여자 친구도, 남자친구도 만나며 몰래몰래 나가던 그녀는 이제 남편의 손찌검이 있은 날은 그냥 보란 듯이 집을 나갔다.  시어머니가 쫓아내겠다고 소리를 지르면 그녀는 시어머니 앞에서 가방을 챙겨 나가겠다고 큰 소리 쳤다.

        바로 얼마 전, 자신들 앞에서 고분고분 말 들으며 죽으라면 죽는 시늉 하던 며느리, 아내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아이가 넷이나 되고, 17년 가까이 착하게 살아온 며느리를 보니 요즘 세상에 그만한 며느리가 없음을 시어머니는 그때야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며느리는 정말 착했었다.  살림도 잘 하고, 아이 잘 키우며, 시어머니 공경할 줄 알고, 남편에게 순종할 줄 아는 착한 며느리였음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지금, 그 며느리가 집을 나가겠다고 보따리를 싸고 있으니 시어머니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얘, 내가 잘못했다.  마음잡고 살아라.  아이들을 어떻게 하고 떠나겠니.  이제까지 네가 잘 한 것 내가 다 안다.  제발 열심히 살아다오.”라고 며느리를 붙잡고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16-7년 가까운 세월을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 한번 바로 뜨지 못하고 살아온 그녀는 한 번의 반란으로 삶이 바뀌었다.  이제는 시어머니도, 남편도 그녀의 눈치를 보아야하고, 그녀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함을 알았다.

        인간의 반란.  가끔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늘 잘해주면 잘 해주는지 모른다.  언제나 바로 살면 바로살고 있는 것이 고마운지 모른다.
        자녀들이 공부도 잘 하고 착하게 바로 살아가면 부모들은 그냥 늘 잘하니까 별 관심 없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돈 벌고 살아간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비행청소년’이라는 딱지라도 받게 되면 깜짝 놀라 돈도 필요 없다고 일이며 뭐며 다 팽개치고 아이에게 매달린다.  돈 버느라 바쁠 때는 아이가 대화하자고 하여도 “나 지금 바빠.  너 혼자서 해결 하렴.”하며 지나오다가 이제는 아이와 대화하기 위하여 아이를 찾아가서 애원한다.  “얘, 엄마와 좀 대화할래?”,  “얘야, 오늘은 아빠와 외식 어떠니?”
        아주 어린 꼬마들도 어른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때는 말썽을 부린다.  그러면 어른들은 그것을 제지하려 가까이 다가와 야단도 치고 나무라기도 하며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와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자신이 있음을,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을 그것으로, 반항을 택한다.

        늘 정석으로만 살아온 내 삶.  이제는 나도 내 존재가 있음을 알리고 싶다.  그 반란, 나도 한번 일으켜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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