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강변에 서서

2009.07.20 04:37

이영숙 조회 수:567 추천:165

콜로라도 강변에 서서   여행을 했다.  퍽 오랜만에 간 여행이다.     딸과 내가 발란티오 나가는 시각장애인 센터에서 한 달쯤 전에 두 번의 찬양집회를 가졌다.  년 중행사로 가장 큰 행사를 마치고 수고한 장애인들과 발란티오들에게 캠프를 다녀오게 배려한 것이었다.  먼 길, 세도나까지 다녀오는 2박 3일의 여정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의 여행.  전에 어떤 분이 시각장애인들의 여행에 대해 말하면서 무척이나 신기하고 이상하게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났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여행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을 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미 공군기지가 있는 곳입니다.   “왼쪽을 보십시오.  콜로라도 강이 흐르고 있지요?”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저기 오른쪽 한 시 방향으로 산이 누런빛이 나지요?  구리가 많이 나는 곳입니다.”   눈을 돌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발란티오들뿐이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들의 여행.  그들만의 느낌이 있는 것일까?  마음이 아프고, 볼 수 있는 내가 미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그들의 표정을 퍽이나 밝고 환했다.  함께 떠들고, 찬양하고, 스스럼없이 농담하고.  가이드가 “오른쪽에...”라고 말을 하면 “안 보이는데요.”라고 농담하며 함께 웃기도 했다.     호텔은 라플린, 콜로라도강가에 잡았다.  그 다음날 새벽 일찍 떠나 세도나에 이르렀다.  기암절벽이 나를 장악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로움이 그대로 가슴에 와 닿았다.  어느 누가 저렇게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붉은 바위산.  깎아지른 바윗덩어리에 어떻게 나무들이 자랄까.  그 바위들 틈새에 생명을 공급하는 어떤 힘이 있는 것일까.  흙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도.  때로 풀 한포기 없는 절벽산도 그대로 신비롭다.     산 가까이 이르러 발란티오들이 감탄하는 소리를 들은 시각장애인인 사라 씨는 손으로 바위를 만져보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 바라보는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라 씨가 만지는 그 면적은 내가 보고 있는 저 아름답고 광활한 산의 몇 십 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라 씨는 자세히, 아주 꼼꼼히 그 바위를 더듬고 있었다.  바위에 틈이 있는 부분을 손으로 짚어가며 따라가 보기도 하고.  작은 점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위의 아래쪽이 패여 허공인 곳에서 손을 휘저어 헤매기도 했다.  조심스레 손을 올리며 다시 바위를 찾아가는 모습.  내가 살아가면서 본다는 것을 감사해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시각장애인들 중에는 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고, 자라면서 불의의 사고, 또는 병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곳을 섬기는 목사님은 이십대에 군에서 사고로 장애를 가지고 말았다.  한집사님이라는 분은 모 신문사에서 기자를 하던 분인데 당뇨로 시각을 잃었다.  어느 냇가에 이르러 그 집사님은 “이곳에 고기도 있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아세요?”라고 묻자, “보일 때 이곳에 온 적이 있어요.”라며 덤덤히 말했다.  나는 결코 덤덤히 들을 수 없었다.   10살 난 동생이 14살짜리 시각장애 형 요한을 따라다니며 돌보는 모습도 눈물겹다.     그곳은 시각장애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뇌성마비장애인들도 몇 명 있다.  8살 난 솔이는 늘 보행기에 누워 있다.  그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숨 쉬는 것 외에는.  그런데 그들의 감사가 참 기가 막힌다.  앞을 보지 못하는 요한의 엄마는 솔이를 보고 위로를 받는다.  비록 내 아이가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말도 할 수 있고, 걸을 수도 있고,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음이 감사하단다.     비록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지만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냐고.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이냐고.  솔이를 낳고 그를 돌보기 위해 더 이상 자녀를 낳지 않은 엄마.  체격이 보통 여자들보다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솔이를 돌보느라 늘 허리가 아프다는 솔이 엄마의 감사다.  이 세상의 모든 감사는 그곳에 다 모여 있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졌다고 한숨 쉬는 엄마들의 말이 차라리 사치로 생각되었을 터임에도.  사춘기라고 반항하는 아이가 속상하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억지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친구들과 어울려 자꾸 돌아다닌다고 염려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그들에게 가슴 아린 부러움이었을 것임에도.  그들의 입에는 내 상상을 뛰어넘는 감사가 있다.   마지막 날 늦은 밤 시간에 여행을 끝내는 아쉬움을 달래려 몇이 모였다.  호텔 내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차를 한잔씩 마시는데 솔이는 아이스크림을 시켜주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인데 엄마는 그 아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의 힘이다.  엄마가 콘 아이스크림을 먹여주자 솔이는 혼자 먹겠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혼자 먹을 수 없는 것을 아는 엄마가 허락을 하지 않음에도 솔이는 고집을 부렸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을까?  솔이의 손에 들려진 아이스크림.  맘대로 움직일 수없는 솔이의 손은 자꾸 다른 길로 간다.  입으로 들어가야 하는 아이스크림은 머리에도 묻고, 얼굴에도 묻고, 옷에도 가득히 묻혔다.  결국 온전하지 않은 손이 잡고 있을 능력이 없어 떨어트렸다.  엄마는 왜 고집을 부리냐고 나무랐고 솔이는 울었다. 솔이의 눈물이 내 가슴에도 함께 흘렀다.  엄마에게 야단맞는 것도 싫었을 것이고, 떨어트린 아이스크림도 아까웠겠지. 그보다 나이 여덟 살이나 되었음에도 혼자서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맥도날드에서 나와 밤12시가 넘은 시간에 콜로라도 강변을 거닐었다.  달이 아주 낮게 떴다.  한 발란티오가 “어머, 달이 저렇게 낮게 떴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아.”라고 하자 사라 씨는 물었다.     “달이 어떻게 떠 있나요?”     “산에 걸린 듯 낮게 떴어요. 달려가 잡으면 잡힐 듯이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진 사라 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그림이 떠오를까.   여행가이드 말에 의하면 강의 물살이 퍽 세단다.  수영을 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또 주었다.  내 눈에 비친 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물위의 반달이 가볍게 흔들릴 뿐.  속에서는 소용돌이치는 급물살이 흘러가고 있을까?  달에 비쳐 ‘반짝이는 금물결 은물결’의 강 표면은 아름답기만 한대.   File:Laughlin at nigh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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