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영성체 (동심의 세계)

2008.12.06 15:34

이용우 조회 수:1677 추천:144

그린이 다섯 살무렵 성당에서 사람들이 영성체를 할 때면 저도 성체를 달라고 떼를 썼다.
미사 중 영성체 시간에 신부님으로부터 손바닥위에 성체를 받으면 나는 곧바로 ‘아멘’ 하고 입속에 넣는다. 자리에 돌아와 성체를 꼭꼭 씹으며 두 손을 모은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그린이가 팔에 메달리며 떼를 쓴다. 입안의 성체를 달라는 것이다. 모른척하고 있으면 손가락으로 입술을 쑤시고 들어온다. 쿼러 크기의 얄팍한 밀전병은 이미 이빨에 잘리고 침에 녹아 흐믈흐믈 목구멍을 넘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아이니까 그렇겠지만 떼를 쓰다 안되면 징징 울기까지 한다.
“영성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특별히 교리공부를 하고 신부님이 허락을 해야 돼. 그리고 너는 아직 어려서 성체를 모실 수 없어, 수녀님이 여덟 살 이상 되야 영성체를 할수 있다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 알았지?“    
몇 번이나 차근차근 얘기했지만 그린이는 그런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빠가 먹는 그 쿠키를 저도 먹고싶다는 것이었다.
“신부님한테 두 개 달라면 되잖아.”
그렇게 떼를 썼다. 경건한 미사 시간에 옆 사람에게 방해도 되고 매 번 그렇게 승강이를 벌이는 게 짜증스러웠다. 무슨 수를 내야 했다.
어느 일요일 교회로 가는 차 안에서 그린이에게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린아, 아빠가 오늘부터 영성체 할때 네게도 줄꺼니까 그거 받을 때 아빠가 그리스도의 몸, 그러면 아멘, 하고 받아 먹는 거야, 알겠지?”
내 말에 그린이는 정말이야?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부님한테 두 개 달랠거야?”
“성체는 한 사람에게 한 개밖에 줄수 없어. 아빠가 조금 나누어 줄게 아멘이나 잘해.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되니까 조그만 소리로 아멘 해. 그러면 아빠가 얼른 입속에 넣어줄게.”
“오케이, 아멘 잘 할게.”
그 주일부터 나는 신부님이 주시는 성체를 손바닥에 받아들고 와서 그린이게 나눠주었다.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어깨를 낮추면 자연스레 앞의자 등받이에 몸이 가려진다. 내 한쪽 팔에 찰삭 달라붙은 그린이의 작은 몸피는 머리까지도 폭 파묻힌다. 나는 기도라도 하는 양 머리를 숙이고 반으로 쪼갠 성체를 내밀며 속삭였다.
“그리스도의 몸.”
제딴에 옆사람에게 안들리게 한다고 그러는지 아멘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고 입술만 겨우 달삭거렸다. 나는 재빨리 그린의 조그만 입속으로 성체를 밀어 넣었다. 곁눈으로 훔쳐보니 그린이는 입을 꼭 다문체 조그만 두 손을 모아쥐고 제법 경건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볼따구니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걸로 보아 입속에 든 밀전병을 조심스레 탐색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도 몰래 웃음이 푹 터졌다. 어렵게 획득한 성체의 맛이 기대 이하라고 실망할 잠시 후의 아이 모습을 상상하니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아이에게 성체 나눠준 것을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알면 야단을 치실까 웃으실까. 아마도 웃으면서 야단을 치실 게 분명한 일이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며 그린이에게 물었다.
“영성체 하니까 좋아?”
내 물음에 그린이는 아주 흡족한 얼굴로 의외의 대답을 했다.
“응, 맛있어. 굿이야.”
그렇게 다섯 살 무렵에 어거지 영성체를 하던 그린이가 드디어 오늘 정식으로 첫영성체를 하게 되었다. 아홉 살 생일을 두어달 앞둔 지난 해 7월부터 매 주일 9시 미사후 한 시간씩 1 년여간 교리공부를 해왔다. 때론 불평을 터뜨리고 짜증을 부리기도했지만 책임강이 강한 그린이는 졸린 눈을 부벼가며 자신의 암기 테스트를 자청하는 열성을 보였다.
“아이 빌리브 인 갓, 더 화덜 올마이따이, 크리덜 오브 해븐 엔 얼드...  엄, 엄... 나 알 수 있어! 엄, 엄... 오케이, 아이 빌리브 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어지는 구절을 떠올리느라 엄,엄, 하면서도 끝까지 빠뜨리지 않고 외워 나갔다. 그렇게 사도신경, 주기도문, 성모경을 암송하며 학교숙제 외에 교리공부까지 하느라 힘들어했지만 지난 토요일 신부님과의 개별면담을 끝으로 모든 통과 의례를 잘 마치고, 오늘(2007년 6월 10일) 어린이 미사 시간에 첫영성체 예식을 갖게된 것이다.
첫영성체 축하 선물로 제 고모가 사준 흰색 드레스를 입고 선 그린의 모습이 천사처럼 곱다. 뱃살이 한주먹쯤 빠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슬적 감추고 엄숙한 표정으로 그린이의 손을 잡았다.
“그린아, 첫영성체 예식을 치루면 앞으로 신부님으로부터 직접 영성체 하는 거 알지? 그러니까 오늘은 교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날이야. 그래서 아빠가 우리 그린이를 위해서 축복기도를 하려고 해. 자아, 눈을 감고...”
나는 이삭을 축복하던 구약의 아브라함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리며 화관 쓴 그린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이가 이해 할수 있는 쉬운 말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과 공부 잘하고 건강 주시기를 기도 했다.
첫영성체는 남자 아이가 셋, 여자 아이가 여섯 그렇게 모두 아홉이었다. 예행 연습을 하기 위해 아홉 아이들은 미사 시작 두 시간 전에 회관으로 모였다. 각자 모양은 제 각각이었지만 여자 아이들은 흰색 드레스에 망사 화관을 쓰고, 남자 아이들은 검정색 턱시도를 차려 입었다. 모두들 제법 의젓하고 성숙해 보였다.
드디어 미사가 시작 되고 첫영성체를 하는 어린이들이 입장하여 앞줄에 자리를 했다. 미사 첫 순서가 어린이 영성체 예식이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두 번째 줄의 맨 바깥쪽 자리를 잡았다.
예식이 진행 되고 드디어 그린이가 신부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동안 아빠에게 반쪽 성체를 받아 먹던 아이가 처음으로 온전한 성체를 영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나는 그린이가 어떻게 성체를 받나 보려고 렌즈 속으로 유심히 지켜 보았다. 여자 아이들 중 다섯 번째로 신부님 앞에 선 그린이는 얼굴에 홍조를 띠고 어깨를 움츠린 체 포갠 손을 내밀었다.
“그리스도의 몸!”
어린이들에게 영성체의 거룩함을 심어주려는 뜻에서 인지 신부님의 목소리는 평소 보다 한 톤 높고 엄숙 했다. 그린이 입술은 달싹 거리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똑똑한 목소리로 신부님께 들리도록 아멘, 해요. 자,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몸!”
신부님은 성체를 든 체로 그렇게 말했다. 그린이 얼굴이 더욱 빨게 졌다. 흠칫 어깨를 털며 두 손을 바짝 들어 올린다.
“아멘.”
신부님이 흡족한 미소를 띄우며 그린의 포갠 손위에 성체를 놓았다. 나는 얼른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린은 받은 성체를 입속에 넣고 자리로 돌아와 눈을 꼭 감고 섰다. 나는 그 모습도 예뻐서 렌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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