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꼬 아침 (동심의 세계)

2008.12.06 15:40

이용우 조회 수:1373 추천:126

강아지를 갖고싶다는 그린이의 집요한 요구를 견디다 못해 타협을 본 것이 새였다.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말썽을 피울 것이 뻔한 강아지보다야 죽던 살던 제집밖으로는 문제를 들고나오지 못하는 새가 애완용으로 키우기에는 더 만만한 생물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새는 만지지 못하니까 재미없다고 투덜대는 그린이에게 나중에 친해지면 만질 수도 있다는 감언이설로 어렵사리 ‘오케이‘ 를 얻어냈다.
집근처 피코길에 열대어는 물론 뱀 거북따위와 함께 새도 몇종류 갖춘 제법 규모가 큰 [트로피칼피시] 가게가 있다. 그 곳에서 그린과 함께 한 시간여의 고민끝에 노란색과 푸른색의 잉꼬 암수 한 쌍을 샀다. 우리는 새장과 새의 먹이와 물에 타는 소독약, 새들의 장난감, 수수대공처럼 생긴 스냌(새의 간식)까지 일습을 갖추어들고 집으로 돌아 왔다.
새장을 리빙룸에 놓을까 부엌에 둘까 아니면 출입구 천정에 매어달까 궁리를 하다가 결국은 침실에 갖이 살자는 쪽으로 결정을 보았다. 침대 발치쪽 그린이의 속옷따위를 넣어두는 장롱위에 자리를 잡아 앉혔다. 올려놓고 보니 하얀 창살의 아담한 새장이 자연무늬목 장롱과 썩잘어울렸다.
“자, 이제 제들 이름을 지어야지, 뭐라고 부를까?”
내 말에 그린이는 쌔액 웃으며 우스꽝스럽게 눈을 치뗬다.
“벌써 지었어. 저 옐로우 걸은 수산나, 불루 보이는 멕스야.”
그러며 덧붙이기를 자기는 새를 고른 그 순간에 이름까지 지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의 신속함에 놀라 눈을 둥굴리며 하하, 웃었다.    
뒤바뀐 환경이 낯설었는지 수산나는 횟대에, 멕스는 바닥에, 둘 다 등을 보이고 앉은 채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색색의 낱곡식이 섞인 모이와 비타민 탄 정수물, 수수처럼 생긴 스냌까지 정성스럽게 넣어준 먹거리들도 쳐다보지 않았다. 살금살금 다가가 들여다볼라치면 인기척을 느끼곤 목을 길게 뽑아 눈알을 깜박거리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산나와 멕스가 우리 집이 싫은가봐, 밥 안먹어서 죽으면 어떻게 해?”
걱정이 된 그린이가 울상을 지었지만 두 녀석은 우리가 잠자리에 들때까지 전혀 움직임이 없었고, 그 모습은 이튿날 아침 그린이와 내가 집을 나설때까지 이어졌다.    
그날 오후 학교로 픽업을 갔을 때 그린이는 차에 오르자 마자 집에 있는 새들이 걱정된다며 울상을 지었다.
“수산나와 멕스가 슬리핑 안하고 밥 안먹어서 다이 했을꺼야, 무서워, 죽으면 어떻게 해. 아빠, 수산나가 다이 했으면?”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죽었으면 내다 버리는 거지.”
“흐응, 불쌍해... 아빠 생각에도 죽은 거 같애?”
“몰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 봐야 알지.”
나는 시침 뚝 따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차가 집앞에 주차하고 현관문을 열어주며 들어가라고 했더니 그린이는 내 뒤로 붙어 서며 아빠 먼저 들어 가, 하고 등을 떠 밀었다. 나는 웃음이 나는 것을 감추고 마치 유령의 집을 방문하는 악동처럼 팔과 어깨를 슬로우모션으로 들썩거리며 슬렁슬렁 걸어 들어갔다.                
“아블라 크타블라, 살아나라, 얏!”
방으로 들어 서서 그렇게 주문을 외우며 몸을 확 비틀었다. 그 때까지 등짝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그린이가 눈을 휘둥굴리며 새장을 살피더니 활짝 웃으며 탄성을 질렀다.          
“야, 살았다!”
새장 안을 살펴 보니 오른쪽 바닥의 물통은 그대로 인 것 같았으나 철망의 왼쪽 귀퉁이에 메달린 모이통은 반쯤이나 넘게 줄어 있었다. 모이를 쪼는 반동으로 통속을 튀어 나온 낱알과 껍질들이 새장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우리가 집을 나간 후로 새들이 모이를 먹었다는 것이 확실했다. 그런 정황을 설명 해주었더니 그린이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젠 안심이라는 듯 기쁜 표정을 지었다.
“난 학교에서 버드가 죽었을까 워리해서 공부도 잘 못했어.”
“어이구, 그린이가 새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구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이제는 낯가림을 털었는지 두 마리가 서로 얼굴을 부벼대기도 하고, 가끔 짹짹 울기도 하고, 새장 중간쯤에 걸린 횟대에 올라 긴 꼬리를 까딱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새장 지붕에 메달린 링에 오르거나 내벽에 부착된 장난감 회전 거울을 건들이지는 않았다.
어느 아침이었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한 가운데 두 마리 새들이 번갈아가며 지지 짹짹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 슬립퍼 끄는 소리가 나더니 그린이의 부스스 한 얼굴이 부엌으로 들어 왔다.
“아빠, 버드가 나 깨웠어, 헤헤헤.”
내가 깨우면 항상 칭얼거리고 짜증을 부리던 아이가 오늘 아침은 아주 즐거운 얼굴로 헤헤 웃는다. 눈은 지려 감은 체로 활짝 웃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아빠가 깨우면 안 일어나고 새가 깨우면 일어 나니, 하고 잠시 눈을 흘기다 말았다. 이제 아침 마다 새들이 울어 주기만 하면 아이 깨우기에 머리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났다. 잉꼬 한 쌍 사기를 정말 잘했구나, 하며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했다.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슴프레 날이 밝아오는 아침 여섯 시쯤이면 잉꼬 두 마리는 어김없이 노래를 불렀다. 지지 짹짹, 지지지 짹짹짹. 신기하고 기쁜 얼굴로 잠을 깬 그린이는 두 마리 잉꼬에게 굿모닝, 아침 인사를 한다. 부스스한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띤 그린이 헤헤, 웃으며 말한다.
“아빠, 버드가 또 나 깨웠어.”
        
아침 마다 아이를 깨우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하듯 ‘어서 일어나거라, 해가 중천에 떴다 이녀석들아!’ 하며 이불을 홱 걷어치우면 되겠지만, 이 개명한 세상에 그런 방법을 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아침이면 아니, 때론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아이 깨울 묘안을 짜느라 머리를 굴렸다. 몸이 아니라 정신을 깨우는 것이 완전한 깨움이기에 지능적이지 않으면 당연히 성공률이 높지 않다. 출근과 등교로 시간이 빠듯한 아침에 두 번 세 번 아이를 깨우러 방을 들락거리는 일은 참으로 짜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단참에 깨워야 한다. 그 동안 써먹은 방법들 중 몇 가지를 들춰 보면 이렇다.
어느 아침 아이를 깨우러 들어 갔는데 침대 머리맡의 자명종이 7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번뜻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이 귓가에 나직히 그러나 힘 있게 속삭였다.
“쎄븐 일레븐, 쎄븐 일레븐!”
쎄븐 일레븐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 하는 미니마켓 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린이는 발딱 머리를 들었다. 쎄븐 일레븐 이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일어났는데 아침 이다. 그린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멀뚱거렸다.
“응, 지금 일곱시 십일분이라구. 저기 봐 시계, 쎄븐 일레븐이잖아.”
이잉, 아빠-아! 그린이 그렇게 투정했지만 이미 정신은 말똥하게 깬 후였다.    
어느 아침, 취사가 끝난 밥솥을 열어 보니 물을 너무 많이 부었던지 밥이 질었다. 그린이 진 밥은 질색을 하며 싫어 한다. 아이를 깨우러 들어 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에이, 밥이 질게 되었어.’ 하고 혼자 말을 했다. 그런데 그린이 어느새 듣고는 고개를 발딱 들며 불평을 했다.
“나 진밥 싫어, 안 먹을 거야!”
나는 깜짝 놀랐지만 그 낮으막한 한 마디가 단번에 아이의 잠을 천리밖으로 밀어 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해서 ‘어, 이런 것도 있었네’ 하고 잠깨우는 방법 하나 더 얻은 것에 내심 기뻐했다.
어쩌다 교복을 입지 않고 평상복을 입는 특별한 날이 되면 아이의 잠을 수월하게 깨울 수 있게 된다.  
“오늘 프리드레스 데이 인데 우리 그린이 무얼 입을까, 청바지? 장미꽃 원피스?”
이런 날은 그린이 아주 기분좋은 미소로 일어나는 날이다. 허지만 그린이 다니는 윌셔스쿨의 평상복 입는 날은 대게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의 금요일 밖에는 기회가 없다.  
“그린아, 이거 조이스 헤어벤드 아니야? 토끼 그림 그려진 헤어벤드 조이스 꺼 맞지?”
여러 개의 헤어벤드 중에 그린이가 잘 사용하지 않는 것 하나를 집어들고 그렇게 시침을 떼면 잠 묻은 눈을 찌그려 뜨게 마련이다. 저도 잘 사용하는 것이 아니니까 긴가 민가 한다. 조이스에게 헤어벤드 빌린 일이 없다는 것을 유추해 내고, 저게 내 헤어벤드가 아닐까, 하며 여러 생각이 몇차래 왔다 갔다 한 후에야 ‘노오, 그거 크리스틴 꺼 아니야, 내꺼야.’ 하게 된다. 이미 잠은 저만큼 달아나 버렸다.            
때로는 숙제를 들먹여서 아이의 잠을 달아나게도 한다. 어제 저녁에 다 끝낸 것을 알면서도 짐짓 걱정스런 목소리를 아이의 잠귀에 흘려 넣는 것이다.
“그린아, 일어나서 숙제 해야지.”
그러면 그린은 여지없이 발딱 일어난다.
“아빠, 어제 저녁에 나 홈웤 다 했어.”
“그러니? 아빠가 몰랐구나, 그럼 우리 공주님이 일어나서 밥만 먹으면 되겠네.”
가끔은 아이의 잠을 깨우는 무기로 간단한 숙제 한 가지를 남겨두게도 한다. 노트나 과제물에 답을 적어 넣는 것이 아닌, 읽기나 외우기 같은 가벼운 것들이다. 그런 숙제들을 빌미로 20-30분쯤 일찍 깨우면 일어나는 길로 밥상에 앉히는 것보다 먹기도 잘하고 정신도 더 또렷하게 등교를 하게 된다.
아이 보다 한 시간쯤 일찍 일어나는 내가 식사 준비를 하느라 떨그덕거리면 그런 어간에 그린이도 잠이 반은 깨게 마련이다. 그린 자신도 이제 일어나야 할텐데, 아빠가 깨우러 올텐데 하며 가수면 상태로 늦장을 부릴 터이다. 나름대로 그것도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 인데 그런 아이에게 유쾌한 처방전으로 잠을 깨우는 것이 아빠로서 할수 있는 큰 배려 아닐까.
이 무거운 짐을 우려 반 걱정 반으로 마련한 잉꼬 두 마리가 해결 해 주었다. 이젠 그린을 깨우려 묘수를 짜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슴프레 날이 밝아오는 아침이면 두 마리 잉꼬가 지지지, 짹짹짹 노래를 부른다. 잉꼬가 노래를 시작하면 정확히 3분쯤 후면 그린의 부스스 한 얼굴이 헤헤, 만족한 미소를 띠며 부엌으로 들어 온다.
“아빠, 버드가 나 깨웠어.”

어슴프레 아침이 열리고 잉꼬 두 마리가 지지 짹짹 노래하고 그린이 부스스 한 얼굴로 헤헤, 웃으며 잠을 깨는 날들이 십 여일쯤 지나갔다.
어느 아침 지지지, 짹짹짹 하는 새들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한 후 한참이 지나도 그린의 부스스 한 얼굴이 나타나지 않았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끊임없었지만 그린이 일어나는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그린이 머리위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린아, 수산나와 멕스가 부르잖아, 일어나야지.”
둘러 쓴 이불을 살그머니 졌혔다. 그린이 부스스 한 얼굴에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 버드 소리 헤잇이야, 이제 싫어, 짜증나, 노이지야.”
그린이 머리 위로 이불을 부욱 끌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 모래산 이용우 2008.12.06 2361
29 한국어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2703
28 꿈, 강아지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2466
27 하이꾸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2876
26 아빠 와이프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2204
25 선거 (아이 마음 어른 마음) 이용우 2008.12.06 2141
24 In The Year of 2026 (아이 마음) 이용우 2008.12.06 2383
23 생명보험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1320
22 허깨비 이용우 2008.12.06 1221
» 잉꼬 아침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1373
20 첫영성체 (동심의 세계) 이용우 2008.12.06 1677
19 숙제 (아이 마음 어른 마음) 이용우 2008.12.06 1238
18 달그림자 이용우 2008.12.06 1308
17 엔젤 마미 이용우 2008.12.06 1379
16 제비 이용우 2008.12.06 1639
15 양철지붕 이용우 2008.12.06 1538
14 헤븐 스트릿 이용우 2008.12.06 1949
13 그리운 질투 이용우 2008.12.06 1301
12 아파트 가족 이용우 2008.12.06 1377
11 마음항아리 이용우 2008.12.06 1198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2
전체:
32,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