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아이 마음 어른 마음)

2008.12.06 15:57

이용우 조회 수:2140 추천:262

오늘은 미국의 44 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 날이다. 대통령뿐 아니라 미 대륙 50개 주의 상하원 의원과 임기 만료 된 각 주와 시의 의원들과 시장, 그리고 각종 주민발의안까지 상정 되어 있어서 몹시 중요한 선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선거를 앞두고 벌써 여러 날 째 나는  그린이에게 들볶이고 있다. 마지막까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대통령후보 선택과 주민발의안 8 번 때문이다. 학교에서 벌어진 토론에서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그린은 틈만 나면 나를 졸랐다.

"아빠, 프레지던트는 오바마, 프로포지션 에잇은 노! 알았지?"

우리 어릴 때는 어린 것들이 무얼 아느냐며 동네반장 얘기도 못하게 했는데,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는 대통령은 물론이요 이슈가 되는 온갖 문제들을 의논하고 토론 한다. 그린이 3학년이 지나면서부터는 LA타임스를 읽고 올여름 전력 사정이나 환경문제가 어떤지, 또는 백악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대통령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라는 숙제를 심심찮게 들고 올 정도이다.

이번 선거를 놓고 그린이 반의 토론에서 내린 결론은 대통령은 '버럭 오바마', 동성결혼 허용법안 폐기 주민발의안 8 은 '노' 가 된 모양이었다.

"아빠, 죤 메케인이 올드맨이어서 메이비 죽으면 세라 페일린이 프레지던트가 되잖아, 그러면 무섭지 않아? 익스피어렌도 없는 영 레이디가 우리 대통령 잘할 수 있어? 그리구우~ 프로포지숀 에잇 있잖아, 그거 아빠 노, 할 거지?"

클라스 메이트들 과의 토론을 바탕으로 한 그린의 설득에는 제법 조리가 있었다. 생각만나면 똑같은 질문으로 아빠의 선거권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그린의 공격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글세, 아빠도 아직 대통령은 정하지 못했어. 그런데 프로포지숀 에잇은 예스야!"

그러면 그린은 즉각 어깨를 뒤흔들며 반발을 한다.

"어~어! 그거 정말 베드야. 사람들이 왜 메어리를 맘대로 못해, 유나이티드 스테이트는 후리덤컨츄리 잖아?"

"그래, 미국은 자유의 나라야, 그렇지만 여자하고 여자, 그리고 남자와 남자끼리 어떻게 결혼을 하니? 애기도 못 낳아, 너도 엄마와 아빠가 결혼해서 낳은 거야. 아빠가 남자하고 결혼했으면 너를 낳을 수 있었겠니?"

"알아, 그렇지만 베이비는 어답터 하면 되잖아, 우리 프라블럼 아니야. 아빠, 그 사람들 메어리 하게 노, 해."

"안돼, 하나님이 동성 결혼하는 거 죄악이라고 했어. 우리 크리스챤이잖아, 절대로 아빠는 노~오 야."

"치이, 가드가 어디 있어? 보여 봐, 렛미 씨이."

"어~어, 야, 크리스티나, 너 세례도 받고 영성체도 하는 크리스챤이 그렇게 말해?"

우리 부녀는 이렇게 서로의 주장을 세우며 실랑이를 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선거일이다. 아침 일찍 선거를 하려고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7시 30분경에 집근처 투표장으로 갔더니 출입문 앞에 투표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투표를 하고 그린이 등교와 회사 출근을 하기에는 그 줄 끝에 서는 게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 투표를 퇴근 후로 미뤘다.

썸머타임이 해제된 저녁 6시의 투표장은 섬뜩하게 추웠다. 아침처럼 건물 밖까지 길게 늘어 선 행렬의 맨 뒤쪽에 그린이와 함께 줄을 섰다. 건물을 휘어드는 가을 밤바람도 몹시 찼다. 그렇게 한 시간을 떨고서야 온기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투표를 할 수 있었다.

빌클링턴 전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던 엘고어와 현 죠지 부시 대통령이 맞붙었던 2000년 선거 때부터 나는 투표장에 세 살짜리 그린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참정권에 대한 인식을 올바로 갖게 하기 위한 내 나름의 배려였는데, 그린이도 아빠가 가리키는 칸에 기표하는 것을 즐겨 해서 투표하러 가자, 하면 두 말 않고 따라 나선다.

"자, 버럭 오바마가 어디 있지? 잘 보고 그 칸에 마크를 해."

그린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맨 윗줄에 있는 오바마의 이름을 찾아 기표를 하고는 히이, 하고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스테이트 레프리센트티브는 다이앤 왓슨, 스테이트 어셈브리는 카렌베스, 슈피리얼코트 판사들은 아빠가 잘 모르니까 멋진 이름으로 골라서 찍어. 퍼스트 레이디 알지? 여자 이름 있으면 팍 찍어. 그리고... 카운티 슈퍼바이져는 버나드 팍스."

그렇게 일사천리로 기표를 해 나가다 드디어 주민발의안 8에서 일시 투표가 중단 되었다.

"예스 라인에 찍어."

그린이 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도 빨리 찍어, 하는 눈으로 그린을 째렸다. 그렇게 서로 눈싸움을 하다가 나는 얼른 마크펜을 빼앗아 YES 칸에 꾹, 눌렀다. 그린이 헹, 하고 눈을 흘겼다.

제 44대 미국 대통령에 '버럭 오바마' 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은 투표당일 밤 9시 경이었고, 동성결혼폐지 법안이 통과된 소식은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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