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라면

2008.12.06 15:01

이용우 조회 수:569 추천:109

신문을 뒤적이며 라면을 먹는다.
그는 저녁으로 라면 두 개를 삶아 아이와 먹는다. 아이는 전자렌지위에 놓인 TV를, 그는  <내 문학은 잡식성, 누구나 즐길 수 있어>
문화면 첫머리에 찍힌 굵직한 제목이 시선을 잡는다. 그는 젓가락에 걸쳐진 라면발을 후루룩 빨아 넘기고는 얼굴을 신문지위로 바싹 내린다.
<제4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자 김영하>
그의 손에서 젓가락 한 개가 상에 떨어지며 띠룩 구른다.  
“아빠, 라면이 너무 매워.”
눈을 찡그린 아이가 신문에 떨어진 그의 정수리에 대고 말한다. 아이의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의 정수리는 들리질 않는다.
<2004년은 만 서른여섯 살의 젊은 소설가 김영하 씨에게 최고의 한 해로 기억될 게 틀림없다. 단편소설 ‘보물선’은 말하자면 결정타, ‘보물선’이 들어 있는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는 지난 8월 아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아빠, 라면이 매워!”
그의 정수리가 들렸다. 허지만 아이의 찡그린 얼굴은 본체도 않고 라면그릇을 들더니 활활, 국물을 들이킨다. 사래가 들렸는지 갑자기 컥컥컥, 다급한 기침을 쏟아낸다. 그러고서야 아이를 건너다본다. 눈알은 물론 얼굴이 온통 벌겋게 달았다.  
“뭐라구?”
“맵다구, 라면이 맵다니까.”        
“매워? 그럼 물마시면 되잖아, 어서 물마셔라.”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신문위로 얼굴을 내린다. 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제 아빠의 정수리를 노려본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단편 ‘오빠가 돌아왔다’는 영화로도 팔려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김씨는 이달 초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의 전임강사 채용 사실도 통보받았다. 2학기부터 강의한다.>
“물이 없잖아, 매워, 물 줘!”
화가 난 아이는 볼맨 소리를 하며 작은 손으로 신문을 밀쳐냈다. 그 바람에,
<수상 사실을 통보받고 ‘보물선’을 다시 읽어봤더니 역시 재미있더라. 한국독자들은 이런 소설을 읽을 권리가 있다. 내가 소설을 쓰기... >까지 읽던 그는 그만 머리를 들어야했다.
그가 아이를 노려본다. 아이는 무춤하며 어깨를 움추렸지만 비어져 나온 입과 원망의 눈길은 대항하듯 마주 쏘아온다. 잠시 그들은 화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한 차래 심호흡을 길게 내쉰 그가 펼쳐졌던 신문을 둘둘 말아 쓰레기통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 냉장고 속에서 물통을 꺼내 바비인형이 그려진 아이의 컵에 천천히 물을 따랐다. 그는 아이에게 컵을 건네며 씨익 웃었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아이도 얼굴을 펴며 쌔액 웃는다.
그는 라면그릇을 들어올려 후룩, 국물을 들이켰다. 라면이 조금 식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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