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이발사

2004.05.16 06:50

조은일 조회 수:347 추천:9

용우님 목로주점에 영화평 하나 올립니다.
60년대 영화여서 우리에게 - 특히 여러분(동포)께 - 깊은 향수가
되는 작품이기도 해서요 ~

* * *


한국영화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평에 힘입어 그냥 괜찮은 영화가 또 한편 개봉했으려니 하고,

하마터면 안 봤을 뻔 했다. 아마 그런 분은 크게 후회할지 모른다.

기대보다도 훨씬 좋았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를 너무 뻔하게 다룬, 그리고 너무 무겁고 적나라하게 다룬, 여타 영화보다도 더욱 좋았다.

전쟁이나 정치만을 다루었다고 역사나 이념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슬퍼 죽겠는데 계속 웃어야 한다.
너무 슬픈데도 너무 우습다. 그러한 설정을 상상해 보시라. 그렇다면 인간은
미치고 말 것 아닌가? 미쳐도 과언이 아닌 영화.


그러나 시종 가볍게,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한 소시민을 통해 지렁이보다

무력한 민중의 삶이 얼마나 어이없게 당하는가 보여준다.




거기에 어떤 거창한 메시지나 선동적 계몽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상당히 완벽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또한 몇 십억을 쏟아 부었다는 영화 못지않게 이 영화도 치밀한 세트 내지 몇몇

장면 (4.19 에 동원된 인파나 박정희 장례식 재현 등)은 적지 않은 제작비가

들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60년대의 재현 또한 성실할 만큼 치밀했다. 그 시대의 이발소는 물론이지만

경찰서, 관공소 등등의 모든 디테일은 완벽할 만큼 리얼하다.




아주 작은 단위의 소시민, 효자동 이발소는 시대를 거쳐온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청와대 바로 곁에 있다는 필연적 장치는 치밀한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일종의 상징성이랄까? 청와대와 소시민 말이다.


아주 작은 단위인 소시민과 청와대의 구도.

이 나라의 정치역사는 차라리 코미디라 해도, 그래서 차라리 웃어버리려 해도

정작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개인의 생존문제.




이발사의 아들, 열두 살짜리가 단지 설사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간첩과 교접을 했기 때문에 걸린 전염병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코미디로,

쥐도 새도 모르는 곳에 들어가 고문을 받고 집 앞에 버려진다.

그 후 아들은 일어서지 못하는 장애아가 된다.
열두살 아이가 전기 고문을 받는 장면은 매우 탁월한 기법이다.
흔히, 견딜 수 없는 고문 그 자체를 관객에게 요구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의 전기고문 장면은 매우 수준높은 일종의 패러디라고
보여진다. 마치 전기의 축제처럼 어린아이와 모잘란 어른 (고문
담당자를 아예 모자란 인간으로 설정 해 놓고.....
고문을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것이다. 이 장면은 잘 처리되어
매우 인상적이다.


아들을 들쳐 업고 산 넘고 강 건너 용하다는 한의사, 점쟁이,
침술을 찾아 다니는 장면의 서정성은 압권이다.
(나는 일단 국산영화를 보면 당연하게도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는 버릇이 있다.

그건 나만의 자동적인 애국심일지 모르겠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아니라, 티내지 않는 <우리 강산 보여주기>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구성상 억지 스럽지도 않다. 그렇고 말고 !

심산유곡 안개 낀 명산을 끼고 버스가 기어가고, 겨울 강물을
건너는 아버지의 [부성애] 는 분노마저 얼어붙은 것이다.




산중 도사의 가옥이나 한의사의 방안 풍경도 그런 대로 일품이다.

그러니까 큰 것 가운데 아주 작은 디테일이 완벽하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을 권력 주변부의 거대한 힘이 지배해 버린
우리의 근대사에 아무런 덧칠을 하지 않고 그려 낸 것이다.




배우 송광호의 연기에는 오버가 없었으며, 그것이 관객을 더욱
슬프게 한다. 아니 슬퍼 죽겠는데 웃어야 한다.




끝으로 ~

매우 개인적인 나의 독특한 시각에 의하면,

이 영화는 더욱 완벽하다.

산중 도사의 황당한 지껄임에 관해서다.

' @#$% 용의 눈알을 빼서 국화꽃에 다려 먹이면 낫는다. '




하여튼 그 황당무계한 처방은 그 자체로서 황당무계로 치자.

작중의 주인공 역시, 실소와 자조를 뱉으며, 아들을 업고, 그곳을 나왔으나

결국 지성으로 아들을 보살핀다.




그 지성의 끝이 무엇이었나. 결국 도사의 예언(?)을 받들어 황당한 일을 저지르고,

아내와 앉아 하염없이 약탕관을 지킨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묘한 내기를 했다.

이 영화에서 아들은 낫게 되어야 한다는 나 홀로 내기였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어느덧, 청년이 된 아들.

어느 날, 어렵게, 어렵게, 기적(!)이 이루어진다.




일종의 믿음을 알기에, 이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기립박수다.

혹시 나처럼,

이따금 보여주는 예고편이나 광고에 식상해서 이 영화를 놓치는 분이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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