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하여~

2004.03.13 13:19

조은일 조회 수:208 추천:9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직후부터 이에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어제 저녁에는 전국적으로 10만 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거리에 나왔다.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종각까지 이르는 대로에는 7만의 인파가 모여 촛불을 치켜들고 탄핵반대와 민주수호를 외쳤다. 수백미터에 달하는 촛불의 바다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각쪽으로 출렁거리며 마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 나가듯 장관을 연출했다. 분노의 물결이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렇듯 분노하는 것일까? 이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몇 가지로 정리하여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첫째, 국회의 탄핵의결이 본질적으로 역사 진보에 저항하는 수구세력의 반동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회의원들은 4년 전 김대중 대통령 시절 돈 정치와 지역감정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대다수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그 당시의 정치현실이었다. 그 원죄의 자식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차떼기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엄청난 부정을 저질렀고, 이제 그들은 검찰에 의해 기소되거나 이번 총선거에서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을 피고들이었다.

그런데 역사의 심판 받아야 할 피고들이 법정에서 마지막 난동을 부린 것이고, 그것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돌출행동을 낳은 것이다. 역사진보에 의해 사라져야 할 수구세력들이 순순히 사라져 준 예는 없었고 이번에도 그들이 이를 증명했다. 이것은 전형적인 수구들의 반동(reaction)이었고, 역사진보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분노가 여기에서 일거에 폭발한 것이다.

둘째, 경제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의 인내가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지금의 경제난은 우리 경제개발 과정의 피로가 축적되어 나타나는 구조적 성격이 강하다. 겉으로는 그 탓을 정부에 돌리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국민들이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만원 짜리 한 장을 쓰려 해도 몇 번이나 망설이는 서민들로서는, 검찰에 의해 밝혀진 대선자금 차떼기의 실상 앞에서 경악하고 말았다. 그건 완전히 다른 세계였고 저마다 눈을 의심했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마냥 지하실에서 돈을 실은 트럭을 통째로 넘겨주는 이런 현실 앞에 국민들은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원래 이해심이 많고 마음이 약했다. 국민들은 그런 일들마저 수십 년간 청산하지 못한 구태정치의 마지막 유산 정도로 생각하고, 그 일단의 책임이 국민들에게도 있음을 자책하면서, 이 모두를 이번 총선에서 한꺼번에 심판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국회에서 그 주범들이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다. 이에 국민들의 인내심이 한계를 보이며 폭발한 것이며, 이런 분노 앞에 주의나 이념 같은 것들은 끼어 들 여지가 없다. 오로지 분노만 솟구칠 뿐이며 분노가 행동을 결정한다.

세째, 정치인들의 편협한 불복문화에 한 번 응징을 가해야 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권에는 정당한 절차에 따른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못된 풍조가 자리잡았고, 이 물이 아래까지 흘러 일반 사회에도 만연되기 시작했다. 이인제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했던 두 번의 불복은 이후 각종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위한 경선이나 각종 자치단체장 경선 등에서 툭하면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전범(典範)을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는 일반 사조직의 의사결정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쳐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사회경제적으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케 하고 있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야당은 단 한번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연설을 위해 국회에 입장하는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들의 심사가 여실히 드러났다. 분명 불복이었고, 이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정치귀족으로서의 오만함으로 비롯된 상고 출신 천출의 대통령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심리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대통령의 대화의지 부족이나 포용력 부족은 다 겉으로 드러난 핑계에 부족하다. 정치귀족들, 그들의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데 몸이 따라 갈 수 없다. 지난 일 년 동안 수구 언론과 야당들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 사회가 지역갈등 못지않게 계층구조가 얼마나 골 깊게 패여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국민들은 서민 출신의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와 언론 귀족들을 착잡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정치귀족들은 결국 대통령을 탄핵으로 밀어 부쳐버렸다. 드디어 불복문화의 결정판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그들은 이 결과가 국정에 미칠 혼란이나 국민들의 심리적 공황 같은 것은 염두에 없었다. 세상사 모든 게 마찬가지지만 눈에 한 번 뭔가 씌이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200명에 가까운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들이 한 짓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우매한 짓을 해 버린 것이다. 대통령 몰아내기 작전에서만큼은 정치귀족들은 지역주의를 뛰어 넘었다.

이것은 분명히 반정(反正)이며 쿠데타였다. 설사 백번을 양보해서 대통령에게 탄핵사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임기 30일 남은 국회가 임기 4년 남은 대통령을 탄핵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탄핵을 해도 차기 선거에서 구성한 국회가 하는 것이 순리였다. 탄핵안이 발의되고 나서 국민의 70%가 옳지 않다는 여론을 형성했음에도 그들은 이것 마저 무시해 버렸다. 국민들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귀족들의 오만함이다. 국민들은 여기에 분노한 것이다. 이제는 대통령은 물론 국민들의 여론 마저 인정치 않는 이 괴물 같은 불복문화를 철저하게 응징할 필요가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구호가 터져 나온 것이며, 여기에는 친노와 반노의 구분이 있을 수 없었다.

그 이외에도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두 정치 세력이 불륜행위라 일컬어질 정도로 권력투쟁과 총선전략 앞에서 일사불란하게 결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든지, 국회의원들의 기회적 태도 같은 것들을 원인으로 들 수 있겠으나, 크게 보아서는 위의 세가지 범주에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건대 기득권 세력은 언제나 개혁에 저항한다. 그리고 한 번 기득권을 잡은 사람들은 끝 없이 국민들을 순치시키려 한다. 도올 김용옥이 조선시대 개국공신이자 풍운아였던 삼봉 정도전을 재평가하고 있다. 맹자의 혁명사상을 이론적 바탕으로 하여 고려의 종식을 정당화했고,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하여 조선을 개국하는데 일등 공신이었던 정도전은 결국 야심가인 태종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군주의 도덕성과 왕권과의 조화를 통한 신권정치가 실현되는 유교적 이상국가를 꿈꾸던 그의 정치이념이 왕권이라는 절대적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전주이씨 왕족에게는 걸림돌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조선시대의 왕들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왕으로 만들어 준 정도전을 금기시하고 할아버지의 정적이었던 포은 정몽주를 더 높이 치켜세우는 모순을 저지르고 만다. 그들의 왕권 유지를 위해서는 정도전의 유교적 이상국가론 보다 정몽주의 일편단심가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조상 떠받들기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들이 사적 은혜를 저버린 것이다. 그리고 왕권에 빌붙어 기득권을 함께 나누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철저히 외면하고 그들만의 권력투쟁에 오백년을 허비하고 만다. 조선시대 양반의 서슬이 아직도 시퍼런 지금에 삼봉 정도전의 위민사상을 목에 침을 튀겨가며 재평가하는 도올 김용옥의 학자적 양심은 그래서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이틀 전, 우리는 국민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결국 쫓아내고 이를 권력의 음모에 이용하려는 정치귀족들의 쿠데타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광화문을 뒤 덮은 촛불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았다. 불의 앞에 분노하지 않는 국민은 역사를 말할 자격이 없다. 사적 감정은 이제 버려야 한다. 위대한 우리 국민들은 기어이 우리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낼 것이다.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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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Re..! 이용우 2004.03.06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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