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를 기다리며

2005.07.02 22:17

리뷰 조회 수:217 추천:19


제      목  :   혈지에서 고수를 기다리다

삼절호보에 오독수단하고
음풍열염에 궁곡변환이니라
천고의오비도 계용망탐하니
친입혈지하면 이화막원할지어다

세 걸음마다 닥치는 다섯 독충을 물리치고, 음풍과 열염의 변화무쌍한 계곡을 지나야 한다. 높고높은 다섯 마왕도 심히 원하고 탐하노니, 혈지에 이르는 자의 영화와 광영은 무궁영원하리로다.

광활한 중원 무림에 어느때부터인지 모를 괴소문 하나가 은밀히 떠돌아다녔다. -혈지도- 그것을 얻으면 삼백년전 강호에서 홀연히 사라진 '적멸존자' 의 절세 무공과 전설로만 내려오는 무림의 삼대 보물을 얻을 수 있다, 하는 전혀 근거도 없는 소문이 그러나 삽시간에 강호 무림을 광풍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말았다.

나는 우선 도입부를 이쯤 잡아놓고 허리를 폈다. 이제 차 한잔 마시고 노트해두었던 골격대로 써나가면 될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서 마악 몸을 일으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검객이 칼을 뽑아들듯 수화기를 들어올려 허공을 한바퀴 휘익, 가른 후 점잖게 '여보세요' 했다. 나는 그때까지 방금전에 쓰고 있던 글의 감정을 그대로 유지한 체 였다. 그런데 수화기 저편으로부터 건너온 한마디 경박한 말소리에 나의 감성은 한 순간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어, 난데!
난데 라니, 서울 사람들이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핸드폰을 받느라 여기저기에서 난데, 난데, 해서 '난데족'이라는 말이 생겼다더니 이젠 엘에이에서까지? 그러나 나는 내색하지 않고 정중하게 되물었다.
누구시온지?
그랬더니 수화기 저쪽으로부터 경박함이 전혀 가시지 않은 목소리가 조금전보다도 더욱 빠르게 튀어나왔다.
나야 나, 성열이.
곤두섰던 나의 신경은 구멍난 풍선의 바람처럼 빠져내렸다. 허지만 나는 문인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의연히 버티었다.
무슨 일이시온지?
어, 타냐한테 전화좀하라구, 자기 싸이트 오픈된걸 모르봐. 사람들이 글을 올려두 반응이 없데.
자기가 하지 왜 나한테... 허지만 나는 그 말을 꿀꺽 삼켰다.그리고 현혜에게 전화를 해서 알려주었다. 헌데.
알어, 그런데 왜 내 방에 안들어오는겨?
나의 인내심은 거기가 한계였다. 당장에 어줍잖은 문인의 체통을 홀랑 벗어던졌다.
뭐라? 왜 안들어오냐고? 들어가기로 들면 니가 들어와야지 내가 들어가나?
나오는 건 없이 들어간다는 말 만 거퍼 하다보니 말이 엉켜서 웃음이 날수도 있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원하지 않은 전화 한통으로 오늘 쓰려던 무협소설은 망쳐버리고 말았다. 치밀한 구성으로 내 집을 방문했던 이들에게 소설적 답신을 하려던 뜻이 날아가버렸다. 특별히 헛기침 한 번없이 남의 집에 들어와서 명문도 아닌 글을 썼다 뺐다 하는 '전구' 아니, '알다마'를 유인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것을 애석해하며 후일을 기약 한다. 아직 내공이 팔갑자에 이르진 못하지만 그 출중한 무예의 자질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 우리 아부지는 언제나 전구알을 사오라고 하실때면 이렇게 말씀 하신다.
' 용우야, 대흥상회에 가서 삼십촉짜리 알다마 하나 사오너라. 전기세 많이 나오니까 삼십촉 넘으면 안된다이. 대흥상회에 없으면 호림상회로 가거라 알았제.'
우리 아부지는 언제나 '전구'를 '알다마' 라고 하신다.

Re..혈지에서 고수를 기다리다

행여 서재를 어지럽 힐것 같아 넓은 게시판으로 모셨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첨단 무기가 없으시다면 전자 계산기라도 차고 오시소서. 출사표를 비장하게 던지고 나니 명운은 하늘 의 뜻!

미야모도 무사시 같은 마음으로 노를 깍으며 기다리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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