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노래

2005.01.07 11:17

나마스테 조회 수:195 추천:21

부용산 오릿 길에......        

아는 선배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인간들은 모두 눈물을 글썽였다.

경주 봉길리 하고도 감은사가 지척인 대왕암 부근 횟집에서였다.
낮게 깔린 구름하며 거센 바람에 바다가 하얗게 뒤집어지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적의를 들어내듯, 바다는 허연 이빨 닮은 파도를  앞세
워 끝없이 우리를 향해 으르렁대고 있었다.
  
말간 소주와 동해에서 갓 건져 올린 횟감에 적당히  취해 있었던 감상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도 아니면 가슴까지 내려앉은 잿빛 암울한 하늘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부용산 오릿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단조로우면서도 고음이 올라가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애상 짙은 노래에 왠지 마음을 흔들었었다.
그 노래를 부른 선배가 그 당시 여러 정치적 상황에 어려웠을 때였고 그래서 설득력이 더 했을 수도 있다.

그 후 나는 그 '부용산'을 즐겨 부른다.
물론 연전에 있었던 라카나다 송년회에서도 불렀다.
이곳에서도 산행을 끝마치거나 분위기가 요상한 모임이면 사람들 그 노래를 내게 시키고, 나는 기꺼이 악을 쓴다. 다만 내가 부르는 음률이 정확한 곡조라고는 말 할 수 없다.  

                  너는 가고 말았구나

닮은 꼴 도반들 중에 몇몇 요상한 잉간들이 있어, 우리끼리 아는 험한 노래인 '네팔가'와 함께 이 노래는 내게 애창곡이 되었다.

그런데 드디어 '부용산'이란  제목으로 나온 소설을 발견했다.

책을 읽기전 우리는 막연히 지리산 빨치산들이 부른 노래인 줄 알고 있었다.
전라도에 벌교에 있는 부용산.
남부군이 가장 치열하게 저항했던 그 호남의 산들.
산언저리, 솔밭 사이사이로 온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 동료.
그리고  핏빛으로 피어난 장미...
아아 그래도 하늘은 이렇게, 환장하게, 눈물나게 푸르러푸르러.

하여, 남부군 맹쿠로 눈 덮힌  지리산에서 헤메다가 연산홍 붉게
피는 봄날, 총 맞아 죽어 간 동료를 그린 것으로 지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애틋하지만 진부한 사랑이 배경으로 깔린 노래였다.

우리만 틀린 것이 아니다.
서슬퍼런 군부독재도 같은 착각으로 금지곡으로 만들었다.
또 틀린 곳이 있는데
군부 정권이 하지 말라면 더 악착스레 했던 소위 운동권에서 열심히 불렀다는 것이다.

상상은 이렇게 진보하고 발전하며, 그 끝에서 본 뜻이 바뀔 수도 있다.
다만 맞는 것은 부용산이 전라도에 벌교 근처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다시... 부용산 오릿 길에

오늘, 금강산... 아니 틀렸다.
겨울에는 금강산을 개골산으로 부르니까.
그 개골산 가는 도반 몇몇이 한 잔 했다.

으레 그렇듯이 술 한잔에, 울대를 세워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연
히도 나는 부용산을 불렀다.
개구리 맹쿠로...
어쩌면 개골산행을 앞두고 그 부용산 노래가 생각난지도 모른다.
그 노래를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는 건 이미 문제가 아니다.
  
기실 따지고 보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서울서 기차를 타면 1시간 40분이면  다달을 수 있는 금강산인데,
1박 2일을 가야 한다는 것이...
말이 통하고 욕이 통하며, 나 같이 얼굴 누런 민족이 살고 있는 내 땅을, 미국에서도 이제 내게 요구하지 않는 비자 받아 출 입국해야 한다는 사실이.

금강산... 아니 개골산에 가면, 정말 개구리처럼 부용산을 부를 참이다. 이데올로기라는 잘난 인간들이 만든 벽이, 허옇게  얼어붙
은 구룡폭포보다 더 아득해도, 나는 하산 길에 개구리처럼 부용산을 부를 참이다.

이산 가족을 만든, 생이별을  강요한, 혈육의 애틋한 감정을 깡그리 뭉갠 거창한 이념 따위는 모른다.
다만 '업어지면 코 닿을 수 있는' 거리를, 에돌아가는 게 억울타.

이 부용산은 '향수'를 부른 이동원씨가, 악보를 입수하여 음반 작업을 했고 원본보다 더 근사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나는 내 스타일로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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