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2005.07.23 18:04

나마스테 조회 수:192 추천:17

사람이니까.
사람이기에 가끔은 쓸쓸해지고 싶다.

끝이라 했지...
쌍 기억 자로 시작하는, 그 끝이라는 단어를 입 속에서 중얼거려 보았다.
끝.
역시 쓸쓸한 느낌이 드네.  

그 느낌을 설명하기가 쉽고도 어려워 더 공허 한 건 아닐까.
끝이란 말이.

'끝장을 보겠어'
'끝낼 거야'
'이제 끝'

긴 원고를 쓴 후, '끝' 자를 두들겨 넣었을 때 이런 느낌이 들었던가?
화가 정수리 끝까지 치밀어 호기롭게 내 뱉었던 빈 말은 아니었을까.?
한참 상상 속에 빠졌던 영화가 끝나고 화면에 떠오르는 END를 볼 때의 느낌?
바쁜 다리 품을 팔고 하산 했을 때 드는 생각?

때로는 흥분해서,  
때로는 쓸쓸해서,  
때로는 울고 싶어, 끝이란 단어를 셀 수 없이 입에 올렸을 거야.
그러나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지킨 적이 있었던가?  
언제 그런 단호한 표징인 외자 단어 끝에 맞는 결말이 있었던가?  

그리하여 나는, 쉽게 뱉은 끝이란 말에 어울리게 정말 끝까지 고집을 피운 적이 있었던가.

... 제주도 대정읍 송악산 기슭에서 출발하는 마라도 행 배를 탄 후 느낌이 그랬다.
동경 126도 16분 36초, 북위 33도 06분 23초.  
날이 좋으면 빤히 바라다 보인다는, 마라도는 해무 때문인지 바다 끝에 숨어 있었다.  
대한민국 국토 최남단이라는 마라도를 소개하는, 씨줄 날줄의 지정학적 표기보다, 나에겐  그곳이 '끝'이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던 건 사실이었다.  

끝은 마침표다.
글을 끝맺는 데 쓰는 부호이자, 종지부를 말하는 거겠지.  

한국 영토 최남단 섬.
해무 속에 숨어 있던 마라도는 나타났고, 훠이훠이 걸어 마침내 나는 그 끝에 다 달았다.  
첫 인상은 이 작은 섬은 높낮이도 없이, 둥근 마침표를 닮았다.
이제 정말 끝까지 온 건가?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지만 남쪽이라는 걸 증명하듯 초록 잔디로 덮힌 모습도, 군더더기 필요 없는 단호한 마침표 닮았다.
끝이라...

산을 다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산정은 높고, 그러므로 그것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또 다른 땅 끝이다.
거기서 나는 무얼 보았던가?
늘 비어 있던 산정 끝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글 쓰기 역시 그러한 게 아닐까.

마침표는 점이다.
점은 부피도, 넓이도, 연속성도 없다.  
곁에 있는 도반이 아주 난해한 철학적 은유를 말한다.
점이 이어가면 선이 되는 거야. 그것을 더 이어가 원을 그리던, 사각을 그리면 그때서야 사람이 인식 할 수 있는 면이 되는 거야. 이차원적 형상이지. 거기서 더 선을 이어가면 무엇이 될 까? ''체'가 되는 거야. 구체적이고 입체적 삼차원이다. 부피와 면적과 크기를 가늠 할 수 있는.  

태평양은 눈앞에 질펀하게 펼쳐 저 있고  바람은 바다에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마침표 닮은 생경한 섬을 걸으며 문득 한 생각 떠오른다.
이 마라도가 점이라 생각했는데 도반 말대로 그런 느낌은 일차원 생각일 수도 있다.

마라도, 아니 정확히 행정구역으로 남제주군 대정읍 마라리.
그러나 나를 태운 배가 선을 그리며 먼 항해 끝에 나타난 이곳은 도반 말대로 일차원적 현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아니, 그것도 틀렸다.

이 섬은 시작도 되고 끝도 된다.
뫼비우스 띠처럼 시작과 끝이 한군데 존재하는 곳이다.
선을 그리는 단순한 일차원이 아니고 면을 만드는 이차원도 아니며, 입체를 나타내는 삼차원도 아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시작도 끝도 모호한.

불교적 해석이 아니다.
시작과 끝은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눈 높이 사람의 느낌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이 섬은 존재했고
내가 가더라도 이 끝 섬은 존재 할 것이며
이곳은 끝인 동시에 대한민국 영토의 시작 점이다.

그런데도 끝이란 단어에 함몰 되어 있는 나는,
모든 사유를 내 생각으로 재단하는 나는,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는 대단히 큰 발견을 한 것처럼 태평양을 향하여 오줌발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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