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2007.02.03 09:32

이윤홍 조회 수:305 추천:25

         생명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생각하면 언제나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당시 나는 충청도 당진의 천의라고 하는 시골의 어느 아는 집에
       잠시 머물러 있었는데 그 날따라 모두들 일하러 나가고 넓은 집에 나만 혼자 덩그
       러니 남아 있었다.
       유난히 무덥고 바람 한 점없던, 햇살이 따가운  8월의 한 낮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종마루에 배를 깔고누어서 책을 읽다 졸다 하다가 더위를 참기 어려워, 집 바로 뒤의
       뒷산으로나 오를까하고 무릎으로 엉금엄금 기어 마루 끝의 활짝 열어논 작은 문
       으로 다가갔다.막 상채를 일으켜 세우는데 비스듬이 경사를 이루며 뒷산으로 이어진
       풀밭위 저만치에 상채를 꼿꼿히 세우고 있는 뱀이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뱀을 바라보았다. 뱀은 쉴새없이 혀를 날름거리고 그 앞에는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가 눈만 껌벅 거리며 꼼짝 못하고 부복해 있었다.
         뱀이 천천히 다가 서더니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는 개구리를 삼키기 시작했다.
       개구리의 몸이 점점 뱀 입속으로 빨려들고 뱀이 다시 한 번 입을 크게 벌렸다 닫으
       면서 식도를 따라 개구리가 뱀 몸속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개구리를 다 삼키자
       뱀의 몸뚱아리 중간이 불룩해지고 뱀은 상채를 풀위로 내려놓은채로 잠시 그대로
       있었다.
         나는 잡혀먹힐 때 잡혀먹히드라도 개구리가 재빨리 도망치기를 바라며 속으로
       어서, 어서, 하면서 무엇인가 집어 던질 것을 찾았으나 아무것도 눈에 띄는것이
       없었다. 개구리가 나, 잡아잡슈하며 그대로 뱀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자
       저런, 바보같은 녀석같으니,하며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 때 마루 한 구석에 있는 1m짜리  대자가 눈에 뜨였다. 나는 자를 손에들고 뱀
       가까이 다가갔다. 길이가 60~70cm가량대는 뱀이 였는데 개구릴 삼켜서 그런지
       내가 다가가도 도망갈 생각도 안하고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뱀의 꼬랑지를 발로 밟고는 들고온 대자로 뱀의 몸을 훝기 시작했다.
       몸속에 있던 개구리가 밀려 차츰차츰 식도 위로 올라서자 뱀은 아가리를 벌리
       고는  꾸-억- 개구리를 풀위로 게어냈다.  뱀의 입에서 나온 개구리는 전혀 도망갈
       생각도안하고 그자리에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바라보던 내가 자로 건드리자
       그 때서야 풀쩍풀쩍 뛰더니 풀속으로 살아졌다. 개구리가 시야에서 살아지자 나는
       밟고있던 뱀의 꼬랑지를 놓아 주었다. 뱀 또한 뒤 한 번 돌아보지않고 풀속으로
       스르르 스르르 살아져 갔다.
       나 혼자 서 있는 풀밭 위로 잘 닦아논 창 끝보다 더 날카로운 햇살만이 무수히 내리
       꽂히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비록 개구리이기는 하지만 한 생명을 살려낸 일이 대견하고 흐믓하게
       느껴졌지만 어떤 때는  과연 그 일이 잘 한 일일까하는 의구심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당시 그자리에서 개구리가 뱀과 맞닥드린것도, 뱀이 개구리를 만나것도 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뱀에게 잡아 먹힌 개구리를 구한답시고 그 질서를
       흩트러놓은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이 드는거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어느누구
       라도 바로 눈 앞에서 한 생명이, 속절없이 죽어가는것을 본다면 자연의 질서, 자연의
       법칙을 생각하기 이전에 할 수만 있다면 그 생명을 살려 내려고 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것이 하찮은 미물에 불과할 지라도 말이다. 생명은 큰것이건 작은것이건 다 똑같이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뱀으로서는 무척 억울한 일임에 틀림없겠지만 그 순간 하루 운세가 그런것을 어쩌랴.
       그래도 뱀은 곧바로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섰을테고 어쩌면 더 좋은 먹이를 구했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면 뱀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늘 언제나
       잡아먹는쪽보다 잡아먹히는 쪽에 더 마음을 두는 것은 강자와 마찬가지로 그 약한 것
       들도 제 삶의 법칙에 따라 살면서도 위기의 순간에 제 목숨을 제대로 지켜낼 수있는
       힘을 잃어 버리고 버리듯 생명을 내놓는 그 무기력함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여
       내가 뱀의 아가리로부터 개구리 한 마리를 구해내 생명을 연장시켜준것은  자연의
       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제 삶의 법칙에 따라 주어진 생명을 끝까지 유지할
       수있도록 한 생명을 보호해준 것 뿐이며 또한 그것은 저 높은 곳의 보이지않는 분이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심어주신, 어떤 생명이던간에 위기에 처해있는 생명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의 자연적인 발로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생명에 대한 외경심은 자연의 질서를 어굿나게하는 것이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더 견고히 해준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나는 이따금 동물의 왕국이라든가 곤충의 세계라든가 하는
       다큐멘타리를 볼 때마다 다시 살아난 그 개구리가 제 영역안에서 틀림없이 많은
       자손을 퍼트리어 자칫하면 그로인해 불균형상태가 될뻔한 그 지역 생태계의 먹이
       사슬에 균형을 갖어오는 큰 일을 했으리라는 공상을 혼자서 심심찮게 해보는 것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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