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촌
2008.02.14 09:22
폐광 촌廢鑛村
이른 새벽보다 더 고요한 문들이 열리고
바람조차 지나가기 힘든 골목을 지나
일없는 사람들이 일없는 일터로 그림자처럼 걸어갔다
골목보다 더 좁은 허공으론 새들이 없는 길 만들며
날아갔다
그도 하늘을 날고 싶었을까
전신주에 걸린 신발이 밤마다 골목을 달리고
저 끝에서 비상하는 꿈을 꾸었지만 아침이면 언제나
그 자리 그곳이었다
폐광마다 어둠을 쏟아 붓던 덤프트럭이
선인장 가시보다 더 날카로운 한 낮을 냅다 치고 사라지면
부서지는 햇살에 눈먼 노파가 이층 다락방 문설주에 기대서서
쥐 죽은 듯 고요한 마을을 눈 빠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고일어나면하나둘씩늘어가는빈집에도꿈쩍않던사람들도
어젯밤의사가떠났다는소문에는덜컥넋을놓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적막한 마을을 기웃거리는
바람맞은 바람들의 바람소리
마지막 구멍가게 불이 꺼지고 불안스레 마을을 떠돌던
소문들도 전해줄 소식조차 없는 밤
뉘 집 앞마당 빨래 줄에 걸려있는 구멍 뚫린 셔쓰가
받아줄 이도 없는 밤하늘을 향해 밤새도록 백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2 | 네 잎 클로버 | 이윤홍 | 2007.12.30 | 872 |
221 | 물방울 하나 | 이윤홍 | 2007.11.21 | 779 |
220 | 삼월 -2- | 이윤홍 | 2008.02.26 | 665 |
219 | 할머니의 십자가, 성당 찾아가는 길 | 이윤홍 | 2007.03.13 | 807 |
218 | 3월, 한 해의 첫 달 | 이윤홍 | 2007.03.13 | 685 |
217 | 그리움의 문제 | 이윤홍 | 2007.02.25 | 549 |
216 | 고요함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 이윤홍 | 2008.03.17 | 960 |
215 | 야외미사 | 이윤홍 | 2008.02.14 | 581 |
214 | 나의 사제, 부르노 | 이윤홍 | 2007.02.14 | 470 |
» | 폐광촌 | 이윤홍 | 2008.02.14 | 641 |
212 | 꽃밭에서 | 이윤홍 | 2007.02.10 | 563 |
211 | 2월, 짧아서 더 소중한 | 이윤홍 | 2007.02.10 | 459 |
210 | 그냥 사랑이면 어때 | 이윤홍 | 2007.02.09 | 287 |
209 | 사제司祭의 방 | 이윤홍 | 2007.02.09 | 293 |
208 | 생명 | 이윤홍 | 2007.02.03 | 305 |
207 | 새해 | 이윤홍 | 2007.02.03 | 264 |
206 | 잡초 | 이윤홍 | 2007.02.03 | 217 |
205 | 희망 | 이윤홍 | 2007.02.03 | 198 |
204 | 흔적 | 이윤홍 | 2007.02.03 | 173 |
203 | 흔들리는 것이 어디 나뭇잎들 뿐이랴 | 이윤홍 | 2007.02.03 | 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