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십자가, 성당 찾아가는 길

2007.03.13 02:38

이윤홍 조회 수:807 추천:64


할머니의 십자가, 성당 찾아가는 길





레지나는 성당을 찾아가고 싶었다.
레지나의 마음속의 길은 언제나 곧바르게 성당으로 나 있었으나 문만 나서면
그녀는 길을 잃었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할지를 몰랐다. 주위에는 성당으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도 없었고 물어 볼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아파트 앞에 서서 어둠속에서
서서히 지워지는 길을 바라보며 마음만 애태우고 있었다.
집들마다 하나 둘씩 불이 켜지고 도시의 야경이 더 밝아지면 그이는 돌아오
리라.
하루의 수고와 노동의 대가는 땀에 절은 육체와 일용할 한 끼의 식대뿐인데도
그이는 늘 희망에 가득 차있고 삶의 확신과 자신감으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거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속 한 구석은 늘 허전하고 그이의
사랑으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낀다.
그녀는 목에 걸린 십자가를 들어 올려 바라본다.
십자가.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갖고 와 평생을 지니고 계셨다는 십자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학교에 갔다 온 그녀가 방문을 열고 “ 할머니, 저 다녀
왔어요.‘하고 인사드릴 때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 묵주신공을 드리고 계시던
할머니가 가만히 손짓하셨지.
들어오라고. 어서 들어오라고. 그녀가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며 어리광 섞인 목소
리로 “왜요, 할머니.“하고 묻자 할머니는 당신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벗어 그녀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씀하셨다. “자, 받아라. 이제부터는 너가 이 십자가를 지니
도록 하거라.“하시고는 그녀의 손을 오므리며 손등을 두드려 주셨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싫어요, 할머니. 이건 할머니꺼예요.
할머니가 간직 하셔야해요.“ ”싫다고 하지 말아라. 아가야. 주님이 이것을 너
주라고 그려셨어. 그러니 지금부터는 너가 이 십자가를 잘 간직하도록 하거라.
알겠지, 아가야. “
그녀는 십자가를 받아들고 약간 멍한 상태로 할머니 방을 나와 그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그대로 서서 할머니가 건네준 십자가를 들여다
보았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큰 오빠 둘 째 오빠와 그녀 그리고 두 남동생과 여동생.
이렇게 대식구였으나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집안 어느 누구도 성당엘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일요일이면 식구들이 번갈아 가며 할머니를 성당으로
모셨고 미사가 끝 날 때쯤이면 다시 성당으로 가서 할머니를 모셔왔다.
할머니는 몸가짐이 지나치게 엄격하리만치 반듯하고 단정하셨다. 팔순이 다
지나 구순이 가까워져서 더 이상 성당엘 못 나가도 식구들 가운데서 언제나
제일먼저 일어나 참빗으로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곱게 머리를 빗어 넘기고
한 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뒤 성경을 펼쳤다. 시력이 약해져 성경 한글자도
읽을 수 없었으나 늘 성경을 펴놓고 묵주를 들고 계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당신의 날을 예감하셨는지 손자 손녀를 볼 때마다 하나씩
방으로 불려들어 평생 지니고 있던 것들을 나누어 주셨다.
그녀는 한참동안 손에 든 십자가를 바라보다가 목에 걸었다. 십자가가 달랑
목에 걸리는 순간 그녀는 알 수없는 따스한 기운이 그녀의 전신을 포근히
감싸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십자를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할머니를 불러
보았다. “ 할머니. 잘 간직할께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있어 큰 오빠와 작은 오빠는 분가해 나가고
그녀 또한 충청도 당진에 있는 시골 어느 작은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 때까지 그녀는 성당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성당을 찾아갈 생각도 없었으나  
할머니의 십자가만은 언제나 그녀의 목에 걸려 있었다.
학교에서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났다. 영어담당 선생님이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이 학교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신출내기 선생님이었다. 집이 서울인지라 주말이면
같이 서울을 오가며 버스 안에서 객지의 외로움을 서로 나누었다. 고속버스 속
사랑 이였는지도 몰라. 그녀는 2년간의 학교생활을 마감하고 인천에다 신혼살림
을 차렸다.
빈손인 남자와 함께 세상일을 꾸려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둘이 악착
같이 벌어 쪼개고 쪼개도 살림은 여전했고 사는 일에 시간은 늘 부족했다.  
어느 날 일요일 오전에 잠깐 회사에 다녀온 그이가 함께 외출준비를 하다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보, 그 목거리말야. 할머니의 선물인 것은 아는데,
좀 다른 것으로 하면 안될까? “
그녀는 순간 당황했으나 곧 바로 십자가를 벗어 경대위에 내려놓고는 그이가
사온 다른 목걸이를 걸었다. 그이가 미안한 웃음인지 좋다는 웃음인지 뭔가모를
어색한 미소를 쓰윽 지어보였다.
함께 밖으로 걸어 나와 택시를 기다릴 때 그녀는 바로 앞 건너편에 있는 성당과
그 첨탑위의 십자가를 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매일 바라본 성당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지금 이 순간  
그녀를 놀래기위해 신령한 힘으로 일순간에 지어놓은 마법의 성 같았다.
그녀는 넋나간 사람처럼 성당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에 성당이 있었던가?

성당을 처음 찾아오는 이들의 설레임을 당신은 아는지?
미사직전의 성당안 분위기는 엄숙하고 자못 숙연하기만하다. 신자들은 모두
경건한 모습으로 바르고 단정하게 앉아있기도 하고 눈을 깊이 내리감고 기도와
묵상에 잠겨있는 이들도 있다.  
이때에 그들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성당 안
분위기에 눌려 조금은 긴장된 모습이다. 그래도 이제 처음으로 미사에 참여
한다는 생각에 마음속의 설래임은 더 커지고 어서 빨리 주님을 맞이하려는  
기대에 기쁨과 흥분이 교차된다.

레지나는 할머니의 십자가를 꼬옥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천천히 사제 앞으로 걸어 나가 성체를 받아 모셨다.
그녀가 친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성당
갔다 왔다.”
“그러니? 누구보다 너가 제일 먼저 성당을 찾을 줄 알았는데, 너가 제일 오래
걸렸구나. 참 잘했다. 할머니가 무척 기뻐하시겠구나.“
“무슨 말이야, 엄마? 내가 제일 오래 걸리다니?”
“아무도 말 안해서 몰랐지? 모두들 너가 스스로 성당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엄마 아빠랑 큰 오빠 작은 오빠네 그리고 정균이 창균이 미숙이
모두 할머니 다니던 성당엘 나가고 있어. 오늘 시간나면 집으로 오너라.
모두 불러 축하파티를 열어야 겠구나.“
  수화기를 들고 서있는 그녀의 손등으로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 내렸다. 그녀는 그렇게 서서 한 참을 울었다. 그 때까지 엄마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자가.
그녀는 다시 목에 걸린 십자가를 들어 바라본다.
종횡이 교차하는 한 가운데 오상(五傷)의 주님이 계신다.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세상의 모든 길이 십자가로 모여들고 하나로
통일된 길이, 오직 하나의 밝은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이 다다르는 곳에 주님의 교회가 보인다.
그녀는 결심한다. 내일은 꼭 성당을 찾아 가야지. 그이가 같이 가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찾아가야지. 그까짓 영어모르면 어때. 손짓 발짓으로도 물어서
찾아갈 거야.

“같이 갈래요? ”
“어디 있는지는 알았어?”
“네. 파라마운트 길로 쭉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성당이 하나 있대요.
가봐요. “
“그러지 뭐.”
그녀는 이런 그이가 좋았다. 없는 시간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
자기는 아무 신앙도 없는 빈털터리 사람이면서도 성당의 성문 앞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면서도 아내를 위해 함께 따라나서는 사람.
돈 버는 재주는 메주가 되어놔서 혼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바빠하면서도
늘 맨손아닌 맨손에 붕어빵 하나는 꼭 잊지 않고 사들고 들어오는 사람.
때때로 돈에 쪼들릴 때면 막무가내 그이가 미워지기도 했지만 그이를
싫어하고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녁 미사가 있기는 있는거야?”
“있데요. 지금 가면 알맞은 시간이 될꺼예요.”
그녀는 남편의 오른팔을 꼭 잡고 길을 따라 내려갔다.
파라마운트 아웃도아 장터를 지나자 바로 성당이 보였다.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저긴가 봐요.”
그녀가 가리키는 성당 앞에 정장을 한 많은 히스페닉 인들이 군데군데 모여 서
있었다.
“한인 성당은 아닌 것 같은데?”
그이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소근 거렸다.
“그런 것 같은데요.”
“그래도 들어가 보겠어?”
그이가 조금 자신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성당에서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니 뭔가 분위기가 어색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성당에 왔다는 생각과 미사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나
강했으므로 그런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팔을 잡아끌었다.
“들어가요.”
성당안은 히스페닉인들로 가득차 있었고 사람들 모두 표정들이 굳어 보였다.
그녀는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 하지않고 자리에 앉자마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미국에 온 이후 몇 달 만에 성당에서 처음 올리는 기도였다.
그녀는 제 자신을 잊어버렸다. 히스페닉인들도 잊어버렸다. 남편도 잊어버렸다.
성당도 잊어 버렸다.
그녀는 기도속에서 그녀에게 내려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고 있었고 할머니를
만나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눈을 뜨고 무릎을 펴자 그이가 그녀의 등을
살짝 두드렸다.
“미사가 이런거야?”
제대 바로 밑에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젊은이 같았다. 곱게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고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손에 꽃을 들고 있었다.
앞줄부터 사람들이 일어나더니 젊은이 앞으로 걸어 나가서는 잠시 고개숙여 서
있다가 그 앞에 꽃을 놓고 돌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몇 여자들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들을 부축했다.
그녀의 차례가 가까워오자 그녀는 남편을 바라보며 일어섰다. 남편이 따라 일
어 섰다.
빈손이었지만 그들은 제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걸어나가 관 속에 누어있는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관 옆에 서 있던 부모 형제들과 성당안 모든 사람들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돌아서서 제 자리로 돌아올 때 그녀는 남편의 팔을 잡아끌었다.  
남편은 난생처음 들어간 성당에서의 장례미사가 너무나 인상적이 였던지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이야기만 하면서 웃었다.
그녀는 남편의 팔에 깊숙이 매달리면서 남편이 조만간 성당을 찾으리
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남편 몰래 목에 걸려있는 할머니의 십자가에다 살짝 입을 맞추었다.
밤바람이 훈훈했다.
모처럼 오랜만에 남편과 같이 길을 따라 걸어오는 밤하늘에는 별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반짝 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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