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에서의 비밀스런 데이트

2007.02.02 09:54

이윤홍 조회 수:319 추천:29



     마켓에서의 비밀스런 데이트




     오후 3시가 가까워오면서 학생들이 하나 둘 마켓앞을 지나가는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그들을 기다린다.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밖으로나와 아이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고 "하이"를 하며 오늘 하루 학교생활이 어땠는지를 묻는다. 그럴때면 아이들은
    혼자 혹은 삼삼오오 짝을지어 먼 길을 걸어오느라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활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한다. 물론 마켓 바로 옆집에사는 새침때기, 이제 겨우 12살인
    데도 18세 처녀처럼 성숙한 미쉘처럼 눈도 안맞추고 손만 살짝 들어보이고는 바람처람
    달아나 버리는 아이들도 있긴하지만, 그래도 지루한 마켓안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와
    활기차고 명랑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마켓일에 활력을주는 작은 기쁨
    중의 하나다. 보도를 가득 메우며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면서 지나가는 아이들에게서
    나는 생(生)이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는 것을 보곤한다.  
     마켓을 들락거리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나면 나는 다시한번 밖으로나와
    거리저쪽을 바라본다. 내가 기다리는 두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지만 나는
    오늘도 그들이 내 마켓을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있다. 벌써 2년도 넘게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내 마켓을 찾아오고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 둘이 마켓에 들어와 한 시간 이상 마켓안을 돌고돌고 또 도는 모습을 처음 보았
    을 때 나는 은근히 신경질도 나고 마음이 쓰였으나 오후의 한가한 때라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둘은 마켓 구석에서 서로 꼭 껴안기도하고 내가 자기네를 보고있는지 어쩐지를
    곁눈질해가면서 슬쩍슬쩍 입을 맞추기도하는거 였다. 그 아이 둘이 반나절이나
    있다가 겨우 군것질 몆개를 집어들고 왔을 때 나는 속으로 참으로 할 일이 되게도 없는
    한심한 애들이구나하고 생각했었다. 그걸 집기위해 마켓안에서 하루 시간을 다 써버리
    다니. 쯧! 쯧!
      그날부터 두 아이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않고 내 마켓을 찾아왔다. 언제나 여자애가
    먼저 들어오고 조금있다가 얼굴에 여드름이 듬성듬성나고, 벌써 어깨가 조금 구부러진
    녀석이 나를 아는체하며 들어와서는 초콜렛 앞에서 서성이고있는 여자아이의 손을 꼭
    잡으면 드디어 장시간에 걸친 마켓투어가 시작된다.
      마켓안을 도는동안 두 아이는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보인다. 여자아이는 녀석
    에게 착 달라붙어서는 고개를 바짝 쳐들어 연신 녀석을 올려다보면서 쉴새없이 무엇인
    가를 재잘거리고 녀석은 아주 흐믓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 보는거였다.
    그 둘이 지금 연애를 하고 있고 내 마켓을 그들의 연애장소로 삼았다는것이 분명해졌을
    즈음, 나는 그들의 비밀스런 만남을 비밀스레 지켜보는 비밀스런 공범자가 된것을
    알았다. 그들도 그것을 눈치챈 모양이였다. 그러니까 서로 말은 안하지만 몸짓과
    눈빚만으로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었고 아이들도 나의 마음을 읽은것이 분명했다.
    이제 둘은 내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서로 포옹하고 입맞춤도 한다.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둘의 사랑 표현이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두 아이가 서로 껴안으며
    좋아 못견디겠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군거리고 목구멍이
    말라오는것을 느끼곤했다. 고백컨데, 나도 이 아이들과 똑같은 한 때가 있지않았던가.
     아이들은 마켓을 도는동안 손님들이 흐트려놓은 선반위의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
    기도하고 통로에 나와있는 물건들을 제자리로 갖다놓기도 한다. 그리고는 물건 하나
    하나를 집어들고 상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기도하고 이해가 안되는것은 들고와
    나에게 물어보기도한다. 나는 그런 그들이 기특하다. 이다음에  둘이 결혼해서 마켓을
    차리면 나보다 훨씬 더 마켓운영을 잘 할것이다.
     오늘 나는 두 아이를 위해 두 가지 선물을 준비 했다. 하나는 플라스틱 우유박스다.
    이 우유박스를 나는 마켓 한편 구석, 손님들이 지나다녀도 방해가 안되는 한갓진
    곳에 갖다놓았다.  물론 벽 한면에 붙어있는 둥근거울과 사무실 안에있는 티비스크린으로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하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좀 이르긴하지만 재작년 오늘이
    둘이 만난 날이라고한다. 마켓주인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으면 아이들은 얼마나
    기뻐할까, 그 생각만으로도 내가 더 즐거워지는것 같다. 서로를 못견디게 좋아하고 사랑
    하는 어린연인들을 옆에서 일년넘게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의 사랑맛에 물들었나 보다.
    물들었기에 요즈음 나는 다시 나로 살아나는 느낌이다. 언어로 쓰여진 그 어떤 사랑의
    말보다 더 내 삶을 되 살리는 것이 바로 곁에 있어 나의 가물해져 가는 사랑은 쇠락의
    일보 직전에서 쨍-한 열기를 받으며 되 살아나고 있다.
    나는 두 아이의 사랑이 내 마켓안에서 무르익어 언젠가는 내 마켓안에서 결혼식이
    올려지는 것을 상상하고있다. 내가 그들의 주례를 서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걱정꺼리, 정말 나만의 걱정꺼리가, 하나 생겼다. 지금 십학년인 쥴리엣이
    너무 성장속도가 빨라 올해 졸업반인 로미오의 키를 웃돌기 시작한 것이다. 둘이는
    그런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관심조차 두고있지 않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괜한
    걱정으로 그들을 볼 때마다 어쩌나저쩌나 가슴을 조이고 있다. 아무래도 로미오를
    위하여, 아니 나를 위하여, 로미오에게 한국의 유명한 성장탕 한 봉지를 사 먹여야 될 것
    같다. 오늘 나는 마켓문을 더 활짝 열어놓고 그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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