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주 담그기

2006.11.28 08:27

이윤홍 조회 수:1051 추천:18

마늘주 담그기


         아내가 사온 마늘을 보니 톨이 굵은 대산(大蒜) 육쪽 마늘이다. 하나를 집어 껍질을
       벗기니 하얀 속살이 수즙게 드러난다. 몸에 착- 달라붙은 얇고 투명한 마지막 한 겹
       속옷이 벗겨지질 않는다. 벌건 대낮에 알몸 드러내기가 몹시 부끄러운 모양이다.
       꼭 아낼 닮았다. 훤한데서 알몸좀 보자고 덤비면 어느틈에 손을 빠져나가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는 아내.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아내의 알몸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러나 마늘만큼은 경우가 틀리다. 그녀의 어느 한 군데라도 상처가 나지않게 조심
        조심하면서 속옷마져 벗기고 나면 뽀얗게 드러나는 알 몸. 통통한 몸매가 만질 수록
        손끝에 와 감긴다. 둥근 어깨선하며 원만한 허리곡선이 아들 딸 열 낳아도 조금도
        변치않을  몸매다.
           전에는 소주값이 비싸서 보드카로 마늘주를 담그곤 했는데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술의 독한 맛이 그대로 남아있어 영- 제 맛이 나질 않았었다. 마늘도 삭고 술도
        삭아야 하는데 보드카는 아무리 두어도 삭질않아 제 맛이 나질 않았다.
           오늘은 아내가 서울에서 갖어온 소주로 마늘주를 담근다. 늘 마늘주를 담그던
        유리 항아리를 꺼내 깨끗이 씻어 말리고 술을 따라넣는다. 술병을 거꾸로 치켜드니
        꼴-꼴-꼴- 거리며 훌러내려가는 소주소리가 귀에 맑다.
           술이 어느정도 차오르면 이번에는 발가벗어 부끄러운 마늘을 하나씩 하나씩
        술 속으로 떨어뜨린다. 퐁당-퐁당- 술방울을 튕기면서 잘도 뛰어든다. 어떤것은
        성급히 그대로 가라앉고 어떤것은 천천히 부유하다가 가라앉는다. 술이 점차로
        병목까지 차오른다. 술 속에 겹겹이 포개 누워있는 마늘을 바라보니 저절로 흥이
        난다.
           한 달 정도 지나 유리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술이 엷은 노란색으로 변하고
        엿기름같은 엑기스가 술 속을 감돌고 있다. 술병을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가서
        한 옆으로 기울이면 엑기스가 술 속을 감돌며 퍼지는것이 뚜렷이 보인다.
        술병을 가만히 흔들면 마늘에서 나와 밑바닥에 쌓여있던 흰 분말이 뜨면서
        술빛이 뿌-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곧 술은 다시 제 색깔을 찾고 엑기스만이
        보일듯 말듯 움직인다.
           잘 익어가는 마늘주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마늘을 먹고 삼칠일(三七日)을
        견디어 여자가된 곰, 웅녀(熊女)가 떠오른다. 아내에게 환웅(桓熊)이 그녀와의
        사이에서 단군을 얻었다고 이야기해주면서 다가가면 아내는 질색을하고 십리
        밖으로 달아난다.
           불교에서는 마늘을 먹으면 발음(發淫)하고 마음속에 화가 생긴다하여 오훈채
        (五暈菜)의 하나인 마늘을 수도(修道)과정에서는 금하고 있다. 마늘을 먹으면
        성(性)이 강화되어 수도에 방해가 된다고 보기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마늘주를
        마신 날은 온 몸의 기운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것을 느끼는데 그 힘이 능히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 속세에 머물러있는 내가 때때로 누항(陋巷)을 떠나
        사막 한 가운데의 어느 인디언의 허물어진 빈 집터에다 텐드를 치고 바람과 함께
        나 홀로 피정(避靜)에 든다해도 수통에 담아 온 마늘주를 어찌 즐기지 않을소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인삼주를 마실 때보다는 마늘주가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느끼곤한다. 그래서그런지 술을 즐기는 손님이 찾아 올
        때면 잘익은 마늘주 두 세잔은 들어보도록 권한다. 석 잔 이상을 마시면 몸에 득
        (得)보다는 해(害)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다보면 대여섯잔은 예사로
        마시게된다.
           한 번은 친구 서너명이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집을 쳐들어왔다. 들고 온 소주를
        다 마시고도 성이 차지않자 술을 사오겠다고 벌떡 일어서서 술상을 나선  친구가
        응접실 한 구석에 있던 마늘주를 보고는 "아니, 이렇게 좋은 술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이럴 수가있나." 하면서 병 채로 들고와서는 주거니 받거니하면서 몽땅
        마셔버렸다.
           친구들은 한 명도 집엘가지 못하고 모두 대취하여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날 일어나서 바라보니 이것이 바로 배반낭자(杯盤狼藉)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친구들은 마늘주 덕분에 부부금실이 좋아졌다고하면서 서너 병
        담가 놓으라고 만날 때마다 말을 꺼내곤 한다.
           요사이는 마늘냄새가 싫은 아내를 위해 월계수 잎 대여섯장을 마늘주에 띄어
        놓는다. 그러면 참으로 신기하게도 마늘냄새가 살아지고 마신후 입에서도 전혀
        냄새가 나지않는다.
            아내가 마늘을 사왔다. 먼저 것 보다 더 알이 크고 살이 뽀-한게 정말 잘 생겼다.
         그냥 콱 깨물어주고 싶다. 아내가 마늘주는 싫다고 하면서도 나보다 먼저 마늘을
         챙기는것이 무척이나 고맙고 흐믓하다.

            마늘주가 잘 익어가고 있다.
            기력없는 자네, 와서 한 잔 하시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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