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2006.12.19 11:02

이윤홍 조회 수:291 추천:24

       잡초



       한동안 꽃 화분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더니 잡풀들이 많이 돋아나 꽃이 잡초에 묻혀
     버렸다. 꽃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며 잡풀들을 하나하나 뽑아내는데 유별
     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풀 같기는 한데 모양이 몹시 야부지다.
      가늘고 길게 반듯하게 솟아나와 끝이 한 쪽으로 살짝 휘어지면서 날카로운 것이 꼭
     조선시대 양가집 여인네들이 치마속에 감추고 다니던 조그만 은장도를 곧추 세워놓은
     것같다. 다른 풀들을 다 뽑아내고 다시보니 그 모양새가 여느 풀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냥 뽑아 버릴까 하다가 무슨 풀인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 잠시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서울 다녀오고 하는 통에 그만 화분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한 두 달이 지난뒤 다시 시간을 갖고 뒤 뜰에 나갔다가 마당 한 곳에 무성한 잡초에 덮혀
      있는 화분을 보았다. 왠 화분인가 싶어 들어 보니 바로 그 꽃화분이 아닌가! 은장도 처럼
      날카로운 풀들이 마구 자라나 화분의 주인인 꽃을 에워싸고는 꽃대신 그 화분의 주인이
      되어있었다. 주인이되어 화분을 온통 점령하고 있었다. 꽃은 잡초속에 파묻혀 자라지도
      못하고 앉은뱅이 상태로 죽어있었다. 어디서 날라왔는지도 모르는, 근본을 알 수없는
      것들이란 싹이 나오기 전에 모두 뽑아버려야 하는것을 그만 그 모양새에 넘어가 호기심
      을 보이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잡초를 뽑으려다가 이왕에 화분 하나 차지한 것, 꽃대신 두고보는 것도 괞찮을 것같
      다는 생각이 들어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리고는 또 바쁜일로 한참동안 화분들을 돌볼
      시간을 갖지못했다. 일에서 돌아와 다시 화분들을 찾아보니 선인장을 빼놓고는 모두
      바싹 말라 죽어있었다. 물론 잡초도 노랗게 말라 있었다.미안한 마음이들어 매일 시간
      나는대로 화분마다 물을 주었으나 한 두주가 지나도  한 번 죽은 꽃들은 감감 무소식이
      였다. 그런데 잡초화분에서 파란싹이, 처음 보았던 그 유별나게 보이는 싹이 하나 보이
      질않는가! 놀랍고 반가와 자세히 들여다보니 말라죽은 잎들 사이사이에 티눈 보다 더  
      작은 싹눈이 가득차 있었다.
        어디에나 흔하디 흔한 잡초. 그러나 나의 뒷뜰, 나의 화분에 있는 잡초는 이미 그런 흔
      한 잡초가 아니다. 그 잡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나와 인연을 맺은 나의 잡초다.
      지금 뒤뜰에는 새로 사다심은 꽃들로 가득찬 화분들이 제 자리를 잡고 질서정연히 앉아
      있다. 그 가운데 잡초화분도 끼어있다. 볼 때마다 꽃들도 꽃이지만 잡초에 더 눈이 간다.
      인연을 맺으면 이렇게 흔한 것도 각별한 것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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