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집

2006.12.21 04:00

이윤홍 조회 수:481 추천:20

        벌 집


        다우니에 살 때다. 참으로 오래된 작은 집이였는데 먼저 살던 누군가가 집안이 좁
      다고 생각했는지 뒤뜰쪽으로 거실을 만들었다. 바닥은 질이 좋은 나무를 골라 마루
      로 깔고 천장도 아름드리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데다 뒤 뜰로 향한 벽은 거칠은 붉은
      벽돌을 그대로 쌓아올리고 그 한 가운데에다 벽난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꽤나 운치있었을 것 같은데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그 집으로 이사하고
      보니까 거실 구석구석 마다 거미줄이 늘어져있고 실내는 무척 어두웠다. 집을 대청소
      하고 실내등을 더 갖다 달았지만 거실 분위기는 여전히 어두웠다.
        그 해 겨울은 비도 많이오고 몹시 추웠다. 비가 오고있던 어느 날 하루 거실에 나와서
      벽난로에 불을 지필까 어쩔까하고 있는데 그 앞에 깔아논 카펫위로 벌들이 기어다니
      는게 눈에 띄었다. 한 두 마리가 아니였다. 깜짝놀라 휴지통을 들고와 벌들을 주어담기
      시작했는데 자세히보니 벽난로쪽 마루바닥에도 벌들이 힘없이 기어다니고 여기저기
      여러마리가 빈사상태로 쓸어져 있었다. 기겁을 하고는 뒤로 물러서서 벌들을 바라보
      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외출중인것이 다행이다 싶어 부랴부랴 벌들을 치우고난뒤
      벌집을 찾았지만 거실안 어디에도 벌집은 보이지 않았다. 밖에는 비가 줄기차게 내
      리고 있었다.
        한 밤중에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그냥
      나오란다.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가자 레지나가 몸을 잔뜩 움추리고 한 옆에
      서서 거실바닥과 천장을 가르킨다. 거실안은 온통 벌들로 뒤덮여 있었고 천장 여기
      저기에서는 빗물이 뚝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레지나와 아이들이 늦게까지 T.V를
      보다가 그만 벌과 빗물이 새는것을 보고 기겁을 한 것이였다.
        레지나와 아이들은 부엌으로 달려가 큰 냄비 작은 냄비 모두 들고오고 나는 벌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벌들은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 아무리 쓸어담아도 끝이 없었다.
      잠시 손을 놓고 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있자니 벽난로 붉은 벽돌과 벽돌 이음새  
      사이의 벌어진 틈사이에서 기어나오는 것이 눈에 뜨였다.
        레지나가 벽난로 안을 들여다 보다가 기겁을 하고 내 등 뒤로와 숨는다. 아이들도
      으악- 비명을 지르고는 저만치 물러선다. 벽난로 안은 온통 벌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서로 뒤엉키고 뒤엉켜서 마치 커다란 한 물체가 꿈틀대는 것처럼 보였다.
        벌들을 다 치우고 기진한 몸을 쇼파에 앉힐 때 까지도 비는 계속 양철 지붕을 때리고
      지붕위로 스며든 빗방울은 끊임없이 냄비를 두드리며 떨어지고 레지나는 옆에서
      가릉가릉 코를 골고 아이들은 벌써 제 방으로 들어가 잠든지 오래된 한 밤중. 잠이
      다 달아난 나는 위스키 한 잔을 따라 단숨에 들이킨다. 갑자기 목구멍에 불이 일고
      뱃속이 짜르르한게 기분이 좋아진다. 한 옆으로 밀어논 커다란 휴지통속의 벌들을
      바라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이해를 단념하고 냄비속으로 떨어져 다시
      튕겨 나오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새벽을 맞는다.

        벌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휫수가 줄어들더니 어느덧 봄이 되었다. 뒤뜰로 나가
      호스로 잔뒤에 물을 주고 있는데 벌들이 잉-잉- 거리며 날라다닌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벌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더니 거실 벽난로쪽의 바깥벽의 터진 틈새로
      들락거리는것이 눈에 뜨였다. 갑자기 지난 겨울 생각이 떠 올랐다. 아하! 이것들이
      벽틈사이에 다가 집을 지어놓았구나 하는 생각이들자마자 나는 수압을 최대로 올리고
      호스의 물줄기를 한 줄기로잡은뒤 벌집을 향해 마구 물줄기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불시에 물벼락맞은 벌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물살에 벽틈으로 기어나오
      던 벌들이 맥도 못추고 마구 잔뒤로 미끄러져 흘려내렸다.  마당 한 가운데 서서 신이난
      나는 허둥대며 날고 있는 벌들을 향해 쉴새없이 물을 쏘아댔다.  그 많던 벌들이 물벼락
      에 거의 다 흩어지고 서너마리만이 자기네 집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저것들마져 쫒아버려야지" 생각을하며 그들을 향해 물줄기를 돌리는 순간 한 녀석이
      아주 낮게 저공비행을 하더니 곧바로 나를향해 날라오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호스의 주둥이를 비틀어 물줄기가 넓게 퍼져나가도록 했다. 그러나 벌은 이미 나의
      방어망을 뚫고 양미간을 향해 정확하게 날라들었고 모년 모월 모시의 봄날 나의 정수리
      한 복판에는 성난 벌침이 깊이 꽂히고 말았다. 아악-.  손을 놓아버린 호스가 제 멋대로
      몸을 돌려치며 내가 잔뒤밭위로 나뒹굴 때까지 나에게 물벼락을 안겨 주었다.
        정수리가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머리 전체가 따갑고 간지럽고 견딜 수가 없다. 며칠이
      지나자 독 기운이 이마쪽으로 쏠리면서 얼굴모양을 완전히 변화시켜 놓는다. 꼭 영화
      속의 프랑케슈타인 같아진다. 일도 못나가고 체면이 말이 아니다. 레지나와 아이들은
      볼 때마다 낄낄댄다. 이마와 눈두더이에 몰려있던 독이 이제는 더 아래로 몰리면서
      콧구멍 양쪽 살이 시커멓게 처지면서 썩는냄새가 몹시 풍긴다. 이웃 백인 할아버지가
      보시더니 이제 독이 빠져나가고 있다고하며 웃으신다.
        정원에 나가보니 벌들은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듯이 벽돌속 집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다가올 겨울일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마음이 안놓여 살충제를 사다 뿌리고 벽틈새를
      시멘트로 막기로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다시 벌들을 바라보니 참 안됐다.
      하필이면 그 곳에 집을지어 서로 마음 아프게하다니. 벌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좋겠구만, 나보다 더 오래 이곳에 살았을 그들이 순순히 제 집을 포기할리는 없겠고,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나가보니 이웃집 할아버지다.
      집을 팔지않겠느냐고, 아들이 새로 장가들어 이곳 켈리포니아로 오는데 당분간 곁에
      두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신다. 우리들만 그런줄 알았더니 서양사람들도 자식 특히
      아들은 오래오래 곁에두고 싶은 모양이다. 레지나와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쌍수를
      들어 좋다고한다. 할아버지도 벌집이야기는 벌써 들어서 알고 계시니 문제될 것이없었
      다.
        이사가는 날 나는 뒤뜰로 나가 벌집을 바라보았다.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듯이
      벌들은 벽돌 사이 집을 한가로이 드나들고 있다. 저것들도 생명인데 생각없이 물줄기를
      들이 댄 일이 미안하다. 덕분에 벌침 한 번 톡톡히 맞 보지 않았는가.
        할아버지가 현명하신 분이니 벌들을 다치지않고 멀리 보내리라 생각하며 차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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