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서라, 무신론자야

2007.01.08 10:13

이윤홍 조회 수:251 추천:23

             똑바로 서라, 무신론자야


             어느 한 순간 이 세상 모든 것이 삐뚤어져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레지나도 6도쯤 삐뚤어져 보여 괜한 미움이 일어나고 아이들의 태도와 말
           투도 11도쯤 삐뚜어진 것같아 4도만 더 삐뚤어지지그러니 하면서 혼자 속
           마음을 휘저어 놓습니다. 그럴 때면 교회도 틀림없이 삐뚤어져서 나  자신
           도 3도 가량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들어가 비스듬이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는 약간 거만스런 태도로 교회안을 앞뒤좌우 둘러봅니다.  오늘따
           라 유난히 교회안이 어수선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앞으로 약간   삐져나온
           의자도 못마땅해 보이고 좌우 벽면에 걸린 십자가의 길도   그렇거니와 제
           대위에 놓인 꽃은 왜 또 저 모양이람!
              모든 것이 삐뚤어져 보일 때는 눈감아버리는 것이 최선의 상책임을 압니
           다. 심호흡을 하고 두 손을 깍지끼며 심술과 거만과 분노를 없애려고  노력
           합니다. 마음이 침잠상태로 빠지려는 순간, 또박 또박 교회안을 걸어  들어
           오는 명징한 구두 발자국 소리. 고개를 쳐들고 눈을 뜨는 순간  앞좌석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던 꼬마녀석과 정통으로 눈길이 마주칩니다.
           그래, 적어도 오늘 이 순간 누가뭐래도 나는 무신론자다. 그러라지 뭐, 머리
           끝까지 아드레날이 솟구쳐오르면서 관자놀이가 벌떡이고 세모꼴로 치켜뜬
           눈꼬리가 더 볼쌍사납게 찟어지고 일자로 앙다문 입술이 비장한 각오를 드
           러 냅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 갔는가. 오늘 내 인상에 남은 것은 제대 밑으로   보인
           신부님의 센달코뿐 입니다. 밖으로 나와 6도 기울어진 상태로 서 있을    때
           이상스럽게도 다시 직립원인이된 레지나가 다가와 속삭입니다.
           " 당싱이 그랬죠/ 평인과 성인의 차이는 백짓장 차이라구요. 우리들 마음이
           나 성인들 마음이나 모두 커피잔과 같아서 스픈을 넣고 휘저으면 휘저어지
           기는 마찬가지이나 우리 마음의 커피잔은 제 스스로의 열로 더 빨리 휘어지
           고 성인들의 마음은 제 스스로의 자제와 억제로 휘저어도 휘저어도 안 휘저
           어 진다고요. 그리고 우리 마음의 찻잔은 휘젓기를 멈추어도 오랫동안 맴돌
           아도 성인 마음속의 커피잔은 돌리고 돌려도 그 자리에 멈추어 있다고요.
           자, 그러니 당신 마음속의 커피잔 혼자서 휘젓지말고 어서가서 청소나 하세
           요. "
           엉겹결에 빗자루를 받아들고 멍청히 서있는데 저쪽에 서계신 형제님이 손짓
           을 합니다. 여기에 오늘 진정으로 나를 초대하시는 분이 계셨구나.
             괜스리 다른 형제님들 보다 더 바쁜척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여기도 빗질하
           고 저기도 마구마구 빗질합니다. 정리된 의자도 다시 한번 더 바르게  놓아봅
           니다. 교회안에 아무도 없을 때 슬쩍 제대위로 올라가 눈에 안보이는  먼지도
           닦아내려고 애를 씁니다. 안경을 벗고 눈속으로 흘러드는 땀을 닦고   안경도
           깨끗이 닦고 다시 제대 중앙을 바라봅니다.
           그  주님이 바로 앞에서 내려다 보시며 이렇게 소리치십니다.  " 똑바로 서라.
           이 무신론자야. "
           청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레지나와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 오늘 미사는 정말로 성사적이였어. 신비야, 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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