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판소리엔 길이 없다

2008.03.19 02:50

이윤홍 조회 수:964 추천:100


당신의 판소리엔 길이 없다




밤을 걸어와  
멀리서 바라본 조그만 창문
창호지가 밝히는 저 순한 불빛
토담 곁 그 아래로 다가서다 나는 들었다
당신의 판소리를

진양조 중몰이로 흐르는 당신의 판소리는
내 가는 귀로 몰려와 발목을 움켜잡고
추적- 추적- 온 몸 두드리는 밤비의 추임새에
뚝- 뚜둑- 뚝딱- 하!
젖은 가슴 다 쥐어짜는가

세월은 흐를수록 제 모습 상해가고
끝내 그 모습 흐려져도
당신은 이 세상에 흔히 없는 여자
여전히 맑고 앳된 요염한 당신인데
언제 판소리 한 가락에 깊은 상처를 새겼는가

발목타고 빗물 오르고
당신의 숨죽인 중중몰이 새빨간 통증으로 다가설 때
나는 보았다 당신의 발가벗은 알몸을
가장 깊은 그곳으로 암전暗電되어 흐르는 당신을

당신의 뜨거운 숫불에 입술을 씻은 것은
그날이 아니라 오늘  
당신에게 나아갈 길도
당신으로부터 돌아갈 길도 모두 끊긴 바로 이 밤 이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2 구월 이윤홍 2008.08.31 907
221 오늘도 나는 그리움을 그린다 이윤홍 2008.08.13 1153
220 거울 이윤홍 2008.08.11 964
219 봄 개울에다, 나는 아기를 낳고 싶다 이윤홍 2008.03.21 1128
» 당신의 판소리엔 길이 없다 이윤홍 2008.03.19 964
217 살아가는 일도 사랑하는 일만큼이나 이윤홍 2008.03.18 929
216 고요함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윤홍 2008.03.17 960
215 삼월 -2- 이윤홍 2008.02.26 665
214 삼월 -1- 이윤홍 2008.02.26 545
213 야외미사 이윤홍 2008.02.14 581
212 백곰 이윤홍 2008.02.14 612
211 폐광촌 이윤홍 2008.02.14 641
210 네 잎 클로버 이윤홍 2007.12.30 872
209 책의 향기 이윤홍 2007.12.27 734
208 나뭇잎, 그 배면을 보다 이윤홍 2007.11.21 648
207 물방울 하나 이윤홍 2007.11.21 779
206 소리 이윤홍 2007.11.21 628
205 이윤홍 2007.11.21 560
204 할머니의 십자가, 성당 찾아가는 길 이윤홍 2007.03.13 807
203 3월, 한 해의 첫 달 이윤홍 2007.03.13 685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604,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