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담그기

2007.02.01 03:32

이윤홍 조회 수:639 추천:30

              김치 담그기






              가까이 지내고 있는 이웃들중에 성당에 나가고 계신 자매님 한 분이 계신데요,
            하루는 저녘늦게 전화를 걸어서는 혹시 빈 김치병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빈 김치병이 열개나 있다고 하니까 몹시 기뻐하면서 내일 아침 가게 나가는 길에
            자기네 집에들러 김치병을 내려놓으라는거 였습니다. 깜짝 놀라서 김장 담그냐고
            물었더니 언제나 남자의 마음을 파김치로 만드는 소금기 가득담긴 웃음으로 깔깔
            웃더니 비밀, 비밀이라는 거였습니다.
              비밀이라는 말에 그만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중년 여인의
            비밀이란것은 샤록홈즈가 아니드라도 손쉽게 추리해낼 수있는 것으로 요사이 못
            된 유행병처럼 은밀히 갑자기 남편몰래 비밀애인이 생기는 것이지요.
            아니, 그럼 비밀애인에게 김치를 만들어 줄려고 하는구나. 그런데 한 두병도
            아니고 열병씩이나, 누굴까? 혹시?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빈 병을 챙기고 있으려니까 아직도 잠이 덜
            깬 레지나가 강시처럼 부엌으로 오더니 " 빈 병이 많으니까 막김치. 통김치. 파김
            치. 나막김치. 열무김치. 궁중김치 그리고 깍두기 한 병하고 사오세요. " 하고는
            다시 꿈꾸는 강시처럼 방안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였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레지나를 번쩍안아 방으로 고이 모셨겠지만 오늘은 어서 빨
            리 자매님을 만나야한다는 생각에 솟구치는 열불을 꾸욱 누르며 빈 김치병을 차
            에 실었습니다.
              저도 우리성당 10년 다니면서 신부님한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은 " 사랑
            은 참는 것"이라는 말씀인데요, 그래서 무엇보다 사랑 하나만은 잘 참는 덕분에
            아직까지 자식하나없이 레지나와 단 둘이서 오손도손 성가정을 이루고 있지요.
              자매님 댁에 도착해서 빈 김치병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온통 버무리다
            만 김치그릇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김치병을 내려놓을 곳을 찾으며 두리번 거리
           고 있으려니 아, 글쎄 자매님이 부엌에서 나오는데 그 예쁜입술은 부르터서 커다란
           물집이 잡혀있고 두 눈에는 조름이 하나 가득하여 금방이라도 내 품에 쓸어져 잠들
           것같은 모습이였습니다. 큰일났다 싶어 아무데나 빈병을 내려놓고 양팔을   벌렸더
           니 자매님이 웃으면서 커피를 내밀었습니다.   어쩌면, 잠도 안자고  밤새도록 김치
           를 담그다니, 그순간 나는 너무도 찐한 감동을 먹었습니다. 아, 얼마나 피곤할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피곤한 모습속에서 알 수없는 즐거움과 기쁨이 자매
           님의 주위를 커피향보더도 더 짙게 감싸고 있는 것이였습니다.
           " 비밀애인을 보니까 피로가 풀리지요? " 내가 웃으며 말하자 자매님은 고개를 끄떡
           끄떡거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였습니다.
             몆달전에 자매님이 다니는 성당에 새 신자분이 오셨는데 남편은 불의의 교통사고
           로 돌아가고 어린 두 아들만 데리고 생활하는 모습이 너무 딱하고 가슴아파 수녀님
           과 전 신자들이 발벗고 나서서 이 분을 돕기로 했다는 것이였습니다.
           나의 사랑 자매님도 무엇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자신이 제일 잘하고
           자신있는 김치를 만들어 팔기로하고 남편의 양해를 얻어 벌써 한 달가까이 김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나는 깜짝놀라서 주일 미사시간에 돈을 걷어서주지 왜 사서 고생들을 하느냐고 했
           더니 수녀님과 성당 모든이들이 그런것보다는 각자의 시간과 노동을 나누어 주는
           것이 더 보람있고 주는이들이나 받는이도 나눔의 사랑을 더 깊이 깨우칠 수있을
           것같아 힘들더라도 이러한 방법으로 도움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였습니다.
           나의 사랑 자매님은 마켓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김치를 담가야하는지라 무척 힘
           들지만 주님의 품안에 있는 공동체의 한 식구를 도우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
           하니 힘든줄을 모르겠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까지 김치를 담글 것이냐고 물었더니 교회에서 그 분의 일자리를
           찾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꺼라고하며 자매님이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
           는 것이였습니다.
              자매님의 말을 듣고있는 동안 왠지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또 갑자기 사랑하는
           자매님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습니다. " 좀 쉬세요. 마무리는 내
           가 하지요."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서자 자매님은 졸음이 가득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더니 " 아, 그래주시겠어요. 그러면 잠깐 눈을 붙일 수있을 꺼예요. 하고는
           막 내 입에서 나오려던 다음 말은 듣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거 였습니다.
           아, 레지나가 여기도 있구나.
             그날 나는 가게도 못나가고(이러이러하고 있다고 했더니 레지나가 가게일은 자
           기가 알아서 할터이니 걱정말고 수고하라고 하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하루
           종일, 왠종일 김치를 담그고 그릇닦고 행구고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밤 늦게 집으
           로 돌아오는 길에  싫다고 손사래쳐도 막무가내 안겨주는 김치 한 병을 억지로 받
           아들었고 다시 집 앞에 있는 마켓에 들려 레지나가 사오라고 했던 김치중 파김치와
           막김치는 빼고 나머지를 사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며칠뒤 저녘늦게 전화벨이 울리고 레지나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뭐가 좋은지 전
           화통을 껴안고 한 시간을 수다떨던 레지나가 싱긋 웃으며 전화를 나에게 넘겨 주
           었습니다.
            " 내일 좀 와주시겠어요. 손맛이 이렇게 좋은 남자분은 모두다 처음이래요. 김치
           맛이 그만이래요. 꼭 오셔야해요. 레지나도 O.K.했어요. 빈김치병 있으면 다 들고
           오세요. 우리 수녀님이 꼭 뵙고 인사드리고 싶으시데요.'
           그날 나는 통김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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