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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8.05.07 15:05

회색지대

조회 수 601 추천 수 9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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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지대



이월란 (07/02/20)




정기검진을 받은 후 재검사 요청을 받고 종합병원에 갔다. 이스터(부활절)가 지난 지 2주일이 되었는데도 접수창구가 있는 입구엔 아직도 그때의 꾸밈새들이 화려하기만하다. 연분홍, 연보라, 병아리색, 하늘색, 연두색... 모두 파스텔조의 사잇빛 일색이다.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들이 주는 분위기와는 무엇인가가 완전히 다르다. 그렇듯 은은하게 어진 색조들 사이에서 돗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초점이 흐려지고, 흰색과 검정이 두 손 들고 도망가버린 후 회색지대에 그대로 버려져 있는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아기분 냄새가 나는듯한 그 아늑한 색들을 난 좋아했었는데.... 청교도인들의 후예답게 이스터는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 못지 않게 비중있는 할러데이 중의 하나이다. 골목마다 적당하게 화려한 그 색조들로 채색된 이스터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계집애들이 팔랑거리며 뛰어다닌다. 각종 절기 때가 되면  집집마다 행해지는 가족행사에 목숨 걸고 사는 듯한 이 곳 사람들... "해피 이스터!!" 이산가족 상봉장면의 포옹보다 더 따뜻한 포즈로 부활절의 기쁨을 나누는 이 곳 사람들은 어디서 저렇게 끊임없는 감동과 스킨쉽의 욕구가 흘러나오는 것일까.

내 딸아이에게도 꼬박꼬박 이스터드레스를 챙겨 입혔다. 옆집 백인아이보다도 훨씬 화려해 보이는 디자인으로 과감히 지출을 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첫 해엔 이렇게 말했지 싶다. 원래 드레스는 조금 길어서 끌리는 맛이 있어야 더 우아한거야. 다음해엔 이렇게, 정확히 발목까지 오는구나. 작년것인데도 완전 맞춤이구나. 그리고 그 다음해엔 이렇게, 요즘은 종아리까지 오는 드레스가 유행이야. 너무 깜찍하다. 그리고 백화점 몰에 걸려있는 드레스들이 미디기장 일색인걸 우연히 확인한 후, 3년간 본전을 빼고도 남은 아이의 드레스를 볼 때마다 환희의 웃음을 짓곤 했었다.
돈의 가치는 물건을 고를 때 가장 절실히 느끼게 된다. 1불, 2불이 내려갈 때마다 조악함과 조잡함이 정확히 반비례해서 높아진다는 사실.....

기장을 줄였다 늘였다 할 수는 없기에 새로 살 수 밖에 없었던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만을 위안삼아 나폴거리는 호핑스텝으로 차고문을 나서던 아이는 이제 세번째 차고문이 열리면 자기차를 몰고 미끄러지듯이 들어온다. 악세서리나 신발이 매치가 되지 않으면 퇴학이라도 당할 것처럼 철저히 맞춰입은 그녀가 가방을 뱅글뱅글 돌리며 들어온다. <아~~ 오늘은 이유없이 행복한 날이에요.> 난 속으로 그랬을것이다. <난 이유없이 짜증나는 날이야....> 아랑곳 없이 이어지던, 지금도 날 주눅들게 만드는 그녀의 본토발음.. <난 인생이 즐거워요.> <그래, 즐겁기도 하겠구나....>

그녀는 요즘 인조속눈썹까지 달고 다닌다. 엘모인형같은 서양아이들의 긴 속눈썹이 만들어 내는 짙은 그늘이 부러워 매일 소화가 안되는 눈치다. 귓불에 달려있어야 할 귀고리는 배꼽에 달려 달랑거리고 있다. 많이 웃을 때 배꼽이 달아날까봐 자물쇠를 채워 놓은 것 같아 난 그게 보일 때마다 유심히 째려보게 된다.

하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하얀 아이들과 하얗게 생각하고, 하얗게 놀다가 집에 온 아이는 노란 안경을 끼고 노랗게 말하는 엄마 앞에서 내가 파스텔 색조들 앞에 설 때면 느껴야만 했던 무소속의 그 회색지대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곤 나름대로 세워놓은 바나나 인생(겉은 황인종, 속은 백인종)의 정체감을 이렇게 피력하곤 했다.
<공부란 우열로 가릴만한 것이 전혀 아니에요. 우회전이냐 좌회전이냐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거죠. 공부를 잘해야만 인정받고, 출세하고, 행복해질 가능성이 많은 한국이 아니에요 여긴...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데이지처럼 나도 나의 한계가 있다구요. 엄마의 문제는 간단해요. 중간지대가 있다는걸 용납하기 힘드신거죠. 최고가 아니면 최저로 치부해버리시는건 독선이에요. 나름대로 한계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한 사람들도 그 중간지대에서 얼마든지 행복하다는 걸 엄만 모르세요.>

<위대한 게츠비>? 요즘 영문학 교재로 읽고 있는 책이었다. 재력과 박력의 주인공으로, 대공항(Great Depression)이 찾아오기전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 미국 동부에서 신화적인 부호로 등장한 그 개츠비의 맹목적인 집념과 사랑의 대상인 바로 그 데이지의 한계? 속물근성을 토대로 외향적인 데이지는 외모의 매력과 우아함, 재력, 귀족의 신분 등 개츠비가 꿈꾸어오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던, 개츠비에겐 말그대로 지고지순(至高至順)의 상징이었다.
아름답지만 사람을 망치고 돈 뒤에 숨어버리는, 천박하고 변덕스럽고 냉소적인 그 데이지의 한계가 지금 너의 한계란 말이지? 불행한 결혼생활을 안락함과 물질적인 사치로 지탱하다 누명을 쓰고 죽어버린 개츠비의 장례식날 부(富)의 상징인 남편과 여행을 떠나버리는 그 데이지의 모습과 개츠비의 몰락은 미국의 강력한 낙관주의, 활력, 개인주의, 맹목적인 부(富)의 추구로 인한 도덕성의 상실에서 온 파멸의 모습으로 피츠제럴드가 1920년대 동부귀족계층의 도덕관념을 비판한 책의 내용이었다.
<판단을 유보하면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된다>는, 다분히 현실도피적이며 미래환상적인 그 책속의 문장이 보여주는 것처럼 지금 내 딸아이는 목을 죄어오는 엄마의 다그침을 그런식의  애매모호한 도피행각으로 몸을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 너의 인생이구나. 나의 보상심리였어. 놀이기구라곤 타 본 적도 없고 미끄럼틀이나 그네를 탈 때조차 현기증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하는 난 그 때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했지 싶다. 각종 클럽활동, 두 달이 멀다하고 벌어지는 교내 쌍쌍파티, 각종 컴뮤니티 서비스, 그리고 부정적인 면에서의 이곳 아이들의 조숙함까지, 여기 아이들의 고등학교 생활은 내가 한국에서 겪었던 대학생활보다도 훨씬 더 자유롭다. 그러면서도 대학원서에 단 한줄의 경력을 더하기 위해선 몇 년간의 인내와 물질적인 뒷받침이 필요할 만큼 은근히 숨통을 조이기도 한다. 주류사회의 혈통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뚫는다는 것은 <주변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이민자들에겐 처음부터 힘에 부친 싸움이다. 아이의 특출함이 부모를 부추기지 않는 한......

지난 2년간 많이 힘들었다. 나 나름대로 세워놓은 꿈(?)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난 내 딸이 미웠다. 우리 둘은 해가 바뀌어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칼자루도, 마지막 카드도 모두 그아이의 손에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고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을 나의 욕심으로 인해 몇 번쯤 겪은 후, 완전히 두 손 들고 난 후, 어느 날 부터인가 난 그 아이를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하고, 더 많이 칭찬해주지 못한 것이 하나 둘 후회되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딸아인 운전을 시작했다. 난 여유롭게 삶의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시도 때도 없이 행선지를 바꾸게 했고, 추월을 하라고 부추겼고, 다그쳤던 어미였다. 모든 것이 나의 아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언제든 너무 늦었다고 느낄 수 있다는건 충분히 일찍 깨달았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고 자위했다.

우린 요즘 핑퐁을 친다. 지하실 두번째 침실 안에 핑퐁테이블이 놓여져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여름철 7~8월엔 냉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지하실에 가서 산다. 반지하로 낮에도 불을 켜야하는 지하실은 내겐 말 그대로 회색지대였다. 여름이 아니면 잘 내려가지도 않았다.
어느 날,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멀어지기 전에 아이를 끌어당겨야 한다는 절박감에 시작한 딸과의 핑퐁게임은 정말 재미가 났다. 처음 시작했을 땐 이 게임의 이름이 핑퐁이란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핑! 퐁! 하고 떨어져버리기 일쑤였던 작은 공이 지금은 15번의 라운드 트립을 거뜬히 감당해낸다. 우리 둘 다 초보수준이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주머니 없는 옷을 입었을 땐 공 8개를 속옷에 쑤셔놓곤 자기가 잘못 날려버린 공을 줍느라 눈을 흘기는 엄마를 보며,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거리며 옆에 놓인 침대에 몸을 날리고 웃어재끼는 그 아이를 보는 건 정말 행복이었다. 5살도 채 되지 못한 아이를 매일 피아노 앞에 앉혀놓고 두 시간씩 울렸던게 바로 <엄마>라는 나의 모습이었으니까.

내가 발길조차 들여놓기 싫어했던 그 회색지대에 그런 행복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린 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싸우길 좋아한다. 숫자놀이를 즐긴다. 점수, 등수, 연봉 등......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행복을 무시해버리고 산다. 멀리 있는 것들이 더 행복한 것이라고 누구한테 배우면서 살아온 것인가.

  LA를 방문한 한국사람들이 LA교민들을 꼬집었단다. 한국사람이기를 거부하고도 미국사람이 될만한 능력도 없는, 이민온 1980년대쯤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시멘트처럼 굳어버린, 상종못할, 앞뒤가 꽉 막힌 사람들이라고. 감정이 격해졌을 때의 부정적인 시각만 제한다면 난 그 말을 인정한다. 나 자신이 자주 그렇게 느껴왔기에......
몇 걸음 못가서 벽에 부딪히고 마는 타인의 언어가 발 닿는 곳마다 구석구석 그어주는 선명한 한계의 선을, 경계인으로 못박혀짐에 따라 쌓여만가는 자격지심을, 난 아이를 통해 산산히 부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내 인생을 그 아이를 통해 보란 듯이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부모들에게는 <교육열>이라는 특출한 인자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단다. 나자신, 그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내 수입의 49%를 교육비로 지출을 하며 그만큼의 비젼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국의 정서를 그대로 도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자식을 대상으로, 귀족정치를 실행하여 본토인을 노예화하고, 자국민에게 군국주의식 의식교육을 베풀며 그리스의 패권을 잡기도 했지만 점차 쇠퇴하여 로마에게 망했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스파르타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선이 “행복”이라고 했던가. 누구를 위한 행복의 추구였던가.

손금하나 그어준 적 없고 머리카락 하나 심어준 적 없었으면서 신비로 이어진 탯줄 하나로 허기진 어린배 채워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난 그 아이가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분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것인 줄 알았다. 그녀는 네모난 아이였는데 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그녀의 각진 개성과 성격을 나의 무지와 독선의 톱으로 잘라내었고 그녀의 돌진하는 젊음과 영글어가는 그녀만의 꿈을 나의 아망스런 고집과 오기로 똑똑 부러뜨리고, 굽히고 또 굽혀 나 자신을 위한 원을 그려가고 있었다. 척박하고도 황폐한 이민생활에 대한 보상을 그녀를 위해 한꺼번에 모조리 보상받고 싶었던 어리석은 나에게 그녀는 가장 높은 산이었고 가장 거친 파도였다. 내 인생의 후회의 지점에 그녀를 똑같이 가져다 놓고 싶진 않았으니까.
엄마의 따끈따끈한 온실보다 차가운 세상이 더 좋다고, 엄마의 뜨거운 햇살보다 찬바람 부는 길바닥이 더 좋다고,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열심히 대사를 외우게 했던 그녀는 무대 위를 박차고 나갔다. 무대 위의 화려한 주인공보다, 심지어 조역들 보다, 차라리 관객이고 싶다고......  넘어져 깨어지고라고 피가 빨갛다는 걸 직접 보고 싶다고.......

아이를 다그쳤던 나의 성대(聲帶)는 이제 핑퐁을 치러가자고 조르며 울대를 진동시키기에 바쁘다. 핑퐁을 혼자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아이와 같이 칠 수 있다는건, 같이 웃을 수 있다는건 지금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며 행복이다. 모국과 타국의 경계인 바로 그 회색지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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