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3

by 이월란 posted Sep 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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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3

이월란 (2016-8)

 

 

전쟁터에서 열두 달을 살다 오더니

이 남자, 매일 전쟁을 한다

평화롭던 정원엔 플라스틱 펜스가 자랐고

보안 카메라 작동 중이라는 사인이

꽃 대신 피어났다

차고엔 생수병이 쌓이고 지하실엔 통조림이 쌓였다

적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단다

앞 집 강아지는 매일 생사를 넘나들었다

문틈으로 권총을 겨누고 있는, 이 남자

내가 없는 동안 저게 지나가면 소릴 질러

적의 포탄 속에서 전우에게 던지던 급박한 메세지

정당방위야, 저 놈의 개새끼 죽여버리고 말겠어

적의 허점을 노려 배변운동을 하고 가는

저 순진한 강아지는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개를 풀어두는 앞집 여자는 이층 블라인드 사이로

스나이퍼를 주시하고 있다

세상은 살아남는 법만 가르쳤고

전쟁은 죽이는 법만 가르쳤다

세상은 죽이면 가두었고

전쟁은 죽이면 훈장을 달아주었다

쉬이 뒤섞일 습성이 아니었다

적군의 유일한 흔적인 똥을 찾아

정원을 샅샅이 뒤지던 어느 날, 이 남자

뒤뜰 구석에서 파닥이는 새 한 마리를 주웠다

동물보호센터가 전화를 받고 포로처럼 새를 싣고 갔다

며칠 후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낭랑한 여자 목소리

전쟁은 끝났어요!

치료 받은 새가 잘 날아갔단다

옆구리에 찬 권총을 만지작거리던

이 남자, 두 눈에서

젖은 별 하나가 반짝,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