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9 21:01
풀숲 속 무꽃향기 - 이만구(李滿九)
비탈진 산길 돌아 집으로 내려오는 길
지난봄 장마로 무성해진 덤불숲 속
저만치, 한들거리는 큰 키의 무꽃이 피어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텃밭에 씨받이 무꽃
흰 꽃잎 가장자리에 보라색 물드리고
먼 하늘가 그리움 품고 선
애수의 코스모스 같은 청초한 들꽃 아닌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여름 햇살 기울어
산새 우는 외딴 산길에 피어난
수수한 무꽃 속의 땡벌들...
시원한 무음식, 나물과 탕국의 맛과
오래전, 어머니의 별미 무밥 향기가 스친다
겨울철, 옹기종기 모여 나누었던 식사는
가마솥에 지은 쌀밥 반 무 반 비빔밥
지붕 위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메케한 연기 속의 무향기는 잊을 수 없다
바람결에 가을 추수는 들짐승의 몫일 거라
고개 숙인 이삭들 금빛 물결 출렁이고
길섶에 무꽃향기 피어 내 마음 젖시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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