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1 17:15
무말랭이 - 이만구(李滿九)
어릴 적, 몸이 아파 방에 누우면
입맛이 소태맛이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천장의 벽지 무늬 행렬뿐
어지럼증 내려와 코끝이 시큰했다
내 아픈 기운 잡게 한 것은
고기맛의 쫄깃한 무말랭이 한 접시였다
그 후, 어머니는 더운 여름철에도
콩밭 고랑에 난 생무 뽑아
채 썰어 양지바른 곳에 말리곤 하셨다
열병 얻어 앓던 어린 맏형 여의고
가난한 어머니의 놀란 심정이었을까
오늘은 이국의 정월 보름날 저녁
아내가 차려준 무말랭이 무침 먹으며
고향집 토방에 비친 따스한 햇볕과
그리운 어머니의 옛사랑이
다시 내 안에 들어와 몹시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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